민주노총 내년도 최저임금 25.3% 인상 요구는 비현실적
최저임금 오르면 고용한파 더 가속화될 우려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 화합이 우선

유한일 기자.
▲ 유한일 기자.
최저임금은 사용자와 노동자에게 있어 한 해 지출과 소득을 결정짓는 예민한 사안이다.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양 측의 첨예한 샅바싸움이 이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올해는 최저임금위원회가 약 두 달가량 늦게 닺을 올려 일정이 빠듯한 만큼 더욱 불꽃 튀는 대립이 예상된다.
 
그런데 과연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여파로 찾아온 전시(戰時) 경제 상황 속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내년도 최저임금을 시급 기준 1만770원까지 끌어올려야 한다는 입장을 정했다. 인상률은 올해 대비 25.3%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노동계가 최저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권리지만 이번엔 해도 너무하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들다.
 
현 정부 출범 이후 3년간 우리나라 최저임금은 33%나 인상됐다. 2017년 6470원에 불과했던 최저임금은 2018년 7530원으로 16.4% 오르더니 2019년에는 8530원으로 10.9% 인상됐다. 2년 연속 최저임금이 10%대 인상률을 기록한 건 전례 없는 일이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은 부작용을 초래했다. 인건비 상승에 시달리던 자영업자나 소상공인들의 곡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최저임금 인상의 수혜를 볼 것 같았던 저소득층의 일자리는 오히려 감소했다. 그 결과 올해 최저임금 인상률은 2.3%에 그쳤다.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 최저임금 1만원 달성 공약을 지키지 못할 것 같다”며 사과하기도 했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소비가 증대돼 경제성장을 유도한다는 이상적 정책은 물거품된 거나 다름없다.
 
기초체력이 약해진 우리 경제에 올해는 코로나19까지 덮쳤다. 주요 기관들은 올해 우리나라의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22년 만에 역성장 할 것이라는 전망을 쏟아내고 있다. 주요 교역국의 수요 위축에 따른 수출 감소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치명상를 입혔다. 코로나19 전개 양상을 쉽게 예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내년 경제도 불확실성이 매우 큰 상황이다.
 
코로나19 위기 타개를 위한 자구책 마련에 분주한 경영계는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호소한다. 국가 재정 지원과 함께 빚을 내면서까지 코로나19를 버티는 기업들의 암울한 현재 상황은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의 임금 지불능력은 이미 한계점을 넘었다. 신규채용은 엄두조차 못 낸다. 과거와 달리 올해는 이들의 주장을 이기적이라 탓하기 어려운 이유다.
 
노사 화합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비상시국에 민주노총의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 요구는 너무 무책임한 처사다. 25.3%의 인상률에는 도무지 상생의지를 찾아볼 수 없다. 기업들의 줄도산 우려는 안중에 없고 자신들의 주머니만 채우면 된다는 뜻 아닌가.
 
특히 민주노총의 요구안은 인건비 걱정에 시달리는 자영업자나 소상공인을 대상으로는 폭탄을 투하한 꼴이다.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따로 있는데도 경영계에 전쟁을 선포한 걸로 밖에 해석이 안 된다. 코로나19를 버티지 못해 임금을 줘야 할 사업장 자체가 사라진다면 그땐 누구 탓을 할 것인지 묻고 싶다.
 
나라 살림살이가 풍족해지고 기업들의 수익성이 제고된다면 최저임금 인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대통령이 포기한 최저임금 1만원 달성도 불가능한 얘기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은 우리 사회의 고질화된 불평등·양극화 해소를 위한 출발점이라는 민주노총의 주장도 일리 있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 때가 아니다. 코로나19 충격으로 이미 우리 고용시장엔 한파가 몰아쳤다. 지난달 실업자는 역대 최대, 실업률을 21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의 가파른 최저임금 인상이 초래할 결과는 불보듯 뻔하다. 노동계가 가장 먼저 보호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저임금 근로자들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게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지금은 전시 경제 상황이다. 국민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위기 극복에 힘을 합쳐야 할 시기다. 민주노총이 진정 우리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이라면 조금 더 현실적이고 건설적인 요구안을 들고 최저임금위원회에 임하길 바란다. 최저임금 인상 요구의 목적이 저임금 근로자 보호가 아닌 자신들의 기득권 지키기라는 비판을 걷어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