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기업의 성공 바탕엔 도전과 혁신의 創發性 기업가정신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삼성 이건희, 미울 정도로 강하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지난달 25일 타계하자 일본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내놓은 평이다.

변화와 혁신으로 세계 1위 일본 기업들을 하나씩 꺾어나간 이 회장은 2류 전자기업 삼성전자를 세계 최대 기술기업으로 키워낸 입지전적 인물이었다.

그는 26년간 삼성그룹을 이끌면서 과감한 투자와 혁신, 1등 품질주의로 삼성전자를 ‘세계 1위 전자회사’로 이끌었다.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이 회장에 대해 "미래를 내다보는 선견지명(先見之明)과 과감한 투자로 삼성을 세계 대표 기업으로 키웠다"고 평가했다.

특히 일본 언론들은 "일본의 디지털 가전은 시장의 요구를 고려하지 않는 경영 방식으로 삼성에 선두 자리를 빼앗겼다.

일패도지(一敗塗地·싸움에서 져 다시 일어날 수 없는 지경)한 일본 기업은 이건희가 이끄는 삼성에서 배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과거 전자산업 분야 세계 최고를 자랑하던 일본이 후발 한국기업에 추월당한 쓰라린 심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2019년 삼성전자 매출액 230조원이 그해 정부예산 469조원의 절반에 해당하는 현실은 한국 경제에서 삼성전자의 위상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삼성전자의 국외 매출액 규모는 우리나라 수출총액의 20% 안팎이다.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스마트폰, 티브이(TV), 디스플레이, 가전 등 분야에서 20개의 세계 1위 제품을 만드는 한국의 대표기업이다.

소니, 파나소닉, 도시바, 제너럴일렉트릭(GE), 필립스, 모토롤라, 노키아, 텍사스인스트루먼트(TI), 엘피다, 인피니온, 후지쓰, 히다치....후발주자 삼성전자는 숱한 선도 기업들을 따라잡거나 제물로 삼으며 새계 정상으로 질주했다.

그 결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5위 기업으로 우뚝 섰다.

글로벌 브랜드 컨설팅 전문업체인 인터브랜드가 지난 달 20일 발표한 '2020 글로벌 100대 브랜드(Best Global Brands)‘ 순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브랜드 가치 623억달러(약 71조원)로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에 이어 세계 5위에 진입했다.

한국기업이 5위 안에 진입한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7월에는 포브스가 선정한 ‘2020년 세계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8위에 오른 데 이어 최근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최고의 고용주’ 1위를 차지했다.

이번 조사에서도 삼성전자는 ‘아시아기업의 벽(壁)’을 깼다.

종합전자기업으로는 세계 최고이자, 미국 이외 기업으로는 맨 앞자리에 위치,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성장했음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직·간접적으로 삼성 제품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이 드물고 전 세계인은 삼성을 알고 있다.

삼성전자는 외국인 21만명을 고용해 세계 74곳에서 연구센터와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삼성 브랜드 가치가 올라간 만큼 대한민국 브랜드도 상승했다. 이젠 삼성만이 아니다. 현대기아자동차, SK, LG, 포스코 등 많은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일류 반열에 올라서고 있다.

몇 년전 외교부가 세계 17개국 성인 남녀 6,000명을 대상으로 “한국 하면 맨 처음 떠오르는 이미지”를 물었다.

1위가 ‘테크놀로지(technology·기술)‘, 2위가 ’삼성‘ 이었다. 삼성 휴대폰과 가전제품이 ’테크놀로지 강국‘ 이미지 구축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세계 최빈국이 반세기 만에 ’기술(技術) 강국‘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삼성의 공(功)이 절대적이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닐 것이다.

국외매출 비중이 86%에 이르는 삼성전자의 2018년 영업이익 58조원은 그해 국내 무역흑자액 705억달러(약 85조원)의 68%에 해당하는 규모다.

무역수지, 산업경쟁력, 고용, 투자, 국가이미지 등 한국 경제의 상당 부분을 삼성전자가 담당하고 있다.

2019년 62개 삼성 계열사들의 전체 자산에서 삼성전자의 비중이 절반 이하인 것을 감안하면, 국가 경제에서 삼성의 비중은 막대하다.

삼성그룹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에 육박할 만큼 국내 산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지난달 25일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의 GDP 대비 규모를 살펴본 결과 2018년 상반기 기준 보고서를 제출한 삼성그룹사 22곳의 개별 재무제표기준 매출 합계액은 143조1,938억 원이었다.

같은 기간 국내 GDP는 793조8,920억원으로 삼성 매출은 GDP의 18.04%. 같은 기간 삼성전자의 매출은 국내 GDP의 15% 119조464억원이다.

삼성이 후발주자로 뛰어들었지만 최고의 자리에 오른 메모리반도체와 스마트폰, 디스플레이의 성공에는 이 회장의 통찰력과 과감한 결단 같은 특유의 리더십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첨단기술과 제품 전환주기가 빨라 신속한 기술개발과 대규모 투자가 필수적인 이 분야에서 ‘이건희 경영’이 주효한 것.

1974년 이 회장이 반도체 사업 진출을 결심했을 당시 삼성 경영진은 “TV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인 반도체를 만든다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라며 반대했지만 이 회장은 결심을 굽히지 않았다.

이 회장은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머리’를 쓰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부가가치가 높은 첨단기술산업에서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본 이 회장의 눈에 띈 사업이 반도체였다.

삼성 관계자는 “이 회장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을 젊은 세대에게 심어주고 싶어 했다”며 “미국 일본이 주도권을 잡고 있는 반도체 산업이야말로 도전해볼 가치가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한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1980년대 초반 선도적인 반도체 투자로 터전을 닦은 삼성전자는 기업의 역량을 집중, 과감한 투자와 공격적인 기술개발을 통해 미국과 일본 등 선진국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위업을 달성했다.

삼성전자는 1992년 세계 최초로 64MB D램을 개발하면서 1위로 올라선 뒤 이후 D램 세계시장에서 40% 넘는 점유율로, 28년째 부동의 1위를 유지하는 절대강자다.

만약 당시에 그 같은 앞날을 내다보는 혜안(慧眼)과 ‘위대한 결단’이 없었더라면 오늘 삼성전자와 한국 산업의 위상은 어떠할까.

지금 미·중을 비롯한 강대국들과 글로벌 기업들이 가히 필사적인 ‘반도체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 반도체 분야 전문가인 황철성 서울대 석좌교수(재료공학부)의 진단이다.

반도체가 ‘산업의 쌀’, ‘무기(武器)의 쌀’을 넘어 인류의 삶 모든 영역을 지배하고 장악하는 핵심 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이미 자동차 제조 비용의 절반 정도는 전장(電裝·전자 장비)이 차지한다.

전기차가 되면 반도체 등의 비중이 70%로 더 높아진다. 인공위성, 드론, 미사일 같은 첨단 무기도 두뇌 역할을 하는 반도체에서 결정적 차이가 난다는 것. “반도체가 국가 우열을 결정짓는 가늠자”라는 설명이다.

그러면 이같은 이건희의 ‘삼성전자 신화(神話)’가 가능했던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요인(要因)은 대체 뭘까.

전문가들 마다 자신들의 시각과 분석틀에 따라 다양한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가장 근원적이고 중요한 바탕은 대한민국의 경제 시스템(체제)이라는 데 이론(異論)이 없을 것이다.

다름 아닌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말이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자유주의’에 힘입은 바 크다. 집단(국가)에 의한 통제보다는 개인의 자발성(自發性)을 우선시하며, 국가와 사회제도는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고 개성을 꽃피우기 위해 존재한다고 보는 것.

한마디로 오늘날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 물질적 풍요는 해방과 건국 후 이 같은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를 받아들여 성공적으로 일구어냈기 때문이다.

이제 시장(市場)보다 강한 정부는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기업의 힘이 특히 세다. 1960~1970년대 산업화 시기와 달리 지금은 경제를 이끄는 힘에서 기업이 정부를 압도한다.

정부 전체 예산 중 경직성 예산을 제외하면 불과 10조원 정도를 탄력적으로 운용할 수 있는데, 이것으로 공익과 복지를 모두 챙긴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것이 현실이다. 그에 비해 한 기업의 분기 영업이익이 10조원이 넘는 곳이 있으니, 정부와 기업의 힘의 균형이 어떠한지 쉽게 짐작하고도 남는다.

특히 저출산·고령화 추세에 따라 늘어나는 복지재원 부담으로 정부가 쓸 수 있는 예산은 더욱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 청년일자리 문제도 공공부문 고용으로 해결할 수 있는 규모는 턱없이 작다.

사회 문제와 갈등 해결에 있어 기업 등 민간부문 역할의 중요성이 나날이 높아지는 이유다. 그럼에도 지금 문재인 정권은 ‘큰 정부’의 ‘해결사’ 역할을 강조하며 노동개혁은 외면한 채 과도한 개입으로 기업을 옥죄는 역주행(逆走行)을 일삼고 있다.

나라의 미래와 차세대를 위해 산업의 파이를 키워서 국부(國富)를 늘리기 보다 당장의 인기와 표를 의식, 각종 규제를 쏟아내고 나라 곳간을 헐어 선심쓰기에 급급한 모양새다.

경제사학자인 디드러 낸슨 매클로스키 교수(미 아이오와대)는 최근 역저 ‘트루 리벌러리즘(True Liberalism·진정한 자유주의)’에서 “국가주의자들이 내세우는 불평등 해결보다 절대적 빈곤 타개가 더 중요하다”며 “재분배보다는 파이를 키우는 게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재분배 노력이 거둔 성과는 미미했던 반면 절대적 가난을 몰아내기 위한 노력은 눈부신 성공을 거뒀는데,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창의력을 극도로 끌어내는 자유주의의 성과라는 것이다.

매클로스키 교수는 한국을 자유주의 모범사례로 반복해서 거론한다.

그러기에 기업 역할이 강조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특히 우리나라에서 갖는 의미는 중차대하다.

오늘 이 문제를 새삼스레 거론하는 것은 실로 한국의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 그리고 그 주춧돌인 자유민주주의가 흔들리고 위협받고 있는 우려스러운 현실 때문이다.

한번 되짚어보자.

우리나라는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 경제적으로는 시장경제(市場經濟)를 근간으로 하고 있는 나라다. 정치적으로 자유민주주의가 정체성(正體性, identity)이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정체성이라는 얘기다.

‘시장경제’는 누가 만든 제도가 아니다.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성과를 얻겠다’는 자연스러운 욕심, 이른바 인간의 합리(合理) 본능이 질서로 자리 잡은 것이다.

경제학자 김종석 교수(홍익대)는 “시장경제를 움직이는 힘은 인간의 ‘잘 살겠다’는 욕망”이라면서 “이 욕망이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 있도록 ▲재산권(사유재산)의 보호, ▲계약의 자유와 계약의 이행, ▲공정하고 자유로운 경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중 하나라도 충족되지 않으면 불완전한 시장경제가 된다고 설명했다.

생각해보면 100년 전 한반도는 역사의 변방이고, 가난했고, 주변 강대국들의 식민지 쟁탈전의 아픔을 겪었던 국민이고 민족이다.

해방 후에는 6.25라는 민족 분단의 고통과 전쟁을 겪고 피폐한 경제 속에 아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 중 하나였던 것이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그랬던 대한민국이 해방과 건국 후 60년 만에 세계가 부러워하는 나라가 되었다. 상전벽해(桑田碧海)의 기적(奇蹟)이 아닐 수 없다.

경제규모로 보면 명목 GDP는 1조 5,867억 달러로 세계 10위(IMF 2020년 10월 추정치)의 OECD 회원국으로 변모하였고, 이러한 물질적 풍요 속에서 1인당 국민소득은 1953년 67달러였던 것이 2018년에는 3만3,434달러로 1953년 대비 503배로 엄청나게 성장했다.

대한민국은 OECD 출범 이후 원조를 받던 수혜국에서 원조를 주는 공여국으로 바뀐 유일한 나라이며, G20 회원국이다.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이룩하고 경제대국 반열에 선 몇 안 되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러면 이 같은 한국의 경제적 위상은 앞으로 유지되거나 나아질 수 있을까.

최근 언론사 2곳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는 회의적이다.

안타깝지만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기보다 불안감을 느끼는 국민들이 더 많아 보인다. 기업들은 힘들다고 아우성이다. 경영여건도 어려운데 기회만 되면 온갖 규제가 쏟아져나오는 탓이다.

경제지 e대한경제가 지난달 12일 사회 각계 오피니언 리더 25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위협받는 시장·기업의 자유, 자본주의가 흔들린다’라는 응답이 대세를 이뤘다.

특히 반(反)기업ㆍ반(反)시장 정책에 대한 우려가 많았다. 정부ㆍ여당이 추진 중인 ‘기업규제 3법’에 대해 56%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반기업정서 확산에 대한 우려도 70%에 달했다. 한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현 정부는 공정ㆍ공평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하게 얻은 대가(대기업 성장, 부의 축적)까지 선악의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며 “경제를 국가권력에 귀속시켜 시장 자유를 크게 해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지난달 30일 문화일보에 따르면, 전국 성인남녀 1,029명을 대상으로 ‘2020년 경제 민심 동향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문 정부 경제정책에 대해 F학점(100점 만점에서 60점 미만)을 준 응답자가 54.4%로 가장 많았다. 지난해 같은 설문조사의 F학점 응답률 29.4%에 견줘 1년 새 F학점 비중이 25.0%포인트나 높아진 것.

특히 정부의 기업 정책에 대해 응답자 중 가장 많은 46.5%가 ‘기업을 옥죄고 있다’고 답해 문재인 정부의 반(反)기업 정서를 반영했다.

김종석 교수(홍익대 경제학)는 “한국 시장경제의 위기는 자유로운 경쟁을 부정적으로 보고, 사유재산권을 훼손하는 등 시장경제의 기본 원리를 부정하는 현 정권의 반시장적 경제정책 때문”이라며 “한국 경제의 성장 잠재력을 높이고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자유주의적 경제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60~1970년대 내로라 하는 우리나라 기업의 오너들은 벤처사업가였다. 그 당시 자동차, 전자, 철강, 화학 등 가장 어려운 사업에 도전했다.

이 창업자들이 지난 30~40년간 대한민국의 먹거리를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다시 한번 창발성(創發性)을 발휘, 어려운 분야에 진출해 대한민국을 먹여 살릴 새로운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기(氣)를 세워주고 응원해주었으면 좋겠다.

‘나라 경제는 숲과 같아서 이루는 데 한 세대지만, 무너뜨리는 데는 한 달도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외환위기 때 경험한 바 있다’는 경제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을 위정자들과 정책 당국자들이 제발 귓전으로 흘려듣지 말기를 간곡하게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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