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카톡에 울긋불긋한 단풍 사진들이 번갈아 올라오고 이용의 ‘10월의 마지막 날’이 갖가지 언어와 여러 가수의 버전으로 이곳저곳에서 들리고 슈퍼에 영암 대봉감이 나타나기 시작한다면?

가을이 짙어져 간다는 얘기다. 사진으로 보아 아름답던 단풍의 장면들이 문득 내가 운전해서 가는 길가 가로수들의 모습이 되었다가 바로 우리 정원의 풍경으로 바뀌는 순간 가슴이 콱 메어온다. 너무나 아름다워서다.

이곳 영천의 호국로 큰 길은 진한 노란 색깔로 단풍든 은행나무가 줄지어 있다. 올해 농사의 소출은 비록 다른 해에 비해 초라했지만 단풍만은 아름답게 물들었다.

우리 정원의 늠름한 뽕나무가 은행잎처럼 물든 것을 발견한 순간 그 순수한 노란색의 아름다움에 놀랐고 몇 년 동안 파랗기만 했던 단풍나무의 끝자락이 점차 붉어가는 것을 발견한 순간 경이로움에 또 한 번 놀랐다. 아니 그 동안은? 영양이 부족해서 단풍이 들지 않았던 것일까?
 
자연은 이렇게 가끔씩 놀라움을 보여준다. 한 가지가 실망스러웠어도 또 다른 것을 기대하는 이유이다. 사람은 어떨까?

올해 가을, 나도 하나의 결실을 이루었다. 첫 소설집을 상재한 것이다. 66세, 모두가 은퇴를 할 나이에 소설계에 입문을 했고, 다음 5년 동안 단편소설이랑 중편소설 등을 문예지에 발표했다. 이렇게 발표한 작품들을 모아 하나의 소설집으로 엮었다.

즉, –메리고라운드-라는 제목을 가진 소설집을 내가 데뷔한 계간문예에서 출판한 것이다. -메리고라운드-라면 우리말로는 회전목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놀이동산에서 가장 좋아하는 탈것 중의 하나이다. 나무로 된 말 등에서 오르고 내리며 빙빙 돌아가는 회전목마를 즐기는 것은 어릴 적 동화의 세계로 돌아가는 일이 된다. 이 –메리고라운드-는 내 작품집의 제목이자 나를 소설가의 길에 들어서게 한 데뷔 단편이기도 하다.
 
서두에 위치한 작가의 말 중에서 – 나의 이 작품집이 코로나19로 엄혹한 세상에 조그만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다. 꿈을 꾸는 누구나, 빙빙 돌아가는 ‘메리고라운드’ 위에 앉아 아름다움을 추억하며 오늘의 아픔을 이겨내기를 소망한다.-라고 썼다.

‘추억’이란 과거의 일 중에서도 주로 아름다운 일을 말하는 것일 게다. 혹시 고통이나 슬픔도 아름다움의 범주에 들까? 그 시련이 우리를 성장시켰던 일이라면 아름다움이 될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과거를 지나서 현재에 있기 때문에 과거의 시련이 현재에서도 소환하고 싶은 아름다움이 되어 있다면 그 또한 추억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코로나19 사태는 어떨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면 우리는 이 코로나19 펜데믹 시절의 일들을 아름다움으로 회상할 수 있을까? 아니면 언제까지나 다시 생각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으로만 남을까?

역사적으로 소설의 창시는 14세기 2차 페스트 창궐 때에 병을 피해 피렌체 별장에 모였던 7명의 여인과 3명의 남자가 지어냈던 100편의 이야기로부터 유래했다고 한다. 또 뉴턴의 만유인력 발견은 누구나 다 알 듯이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서 이루어졌다는데 그 시기는 17세기 다시 페스트가 유행했을 때였다. 뉴턴이 케임브리지 대학 학생일 때 유행병을 피해서 시골에 가서 2년간 있었을 당시에 일어난 일이다.
 
그러고 보면 팬데믹 시절이라고 모든 것이 나쁠 것은 없다. 앞으로의 발전을 위해서 그 시기를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달렸다. 코로나 시절의 극복을 위한 수많은 유 튜브 강연을 듣다보면 많은 댓글이 달리는 데 놀라운 것은 사람들이 코로나 때문에 혼자 있게 된 것을 생각보다 많이 좋아한다는 것이다.

-회식이 없어져서 정말 좋아요.-
-혼자서 음식 맛을 음미하면서 혼밥 먹는 것이 좋아요.-
-집에서 일하는 것이 능률적이에요.-
-나는 영화도 혼자 보고 쇼핑도 혼자 하는 편이 좋아요.-

이런 사람들이 많아졌다기보다는 그동안 존재하고 있었는데 대세에 휩쓸려 나타나지 않았을 경우가 많을 것 같다. 그 사람들에게는 만족스럽게 혼자 있는 시간을 주고 혼자가 힘든 사람에게는 이럴 때 자신을 돌아볼 기회라고 알려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신기한 것은 팬데믹 극복에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2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뉴턴이 시골 농장에 있었던 시기가 2년 정도 된다니 말이다. 아니 문명이 발전된 현대이니 2년 까지는 걸리지 않겠지. 그래도 올해 말은 힘들 것 같고 내년으로 해가 바뀌면 사정이 좋아지지 않을까? 중요한 것은 앞으로도 계속될 팬데믹 시간에 어떤 노력을 해서 결실을 거둘까 하는 점이다. 아니 결실까지 보지는 못한다고 해도 어떤 일에 집중해서 시간을 현명하게 보내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에 나쁜 일이 있다고 하면 나쁜 일만 있지 않고, 좋은 일이 생긴다면 좋은 일만 있지 않다. 중요한 것은 좋은 일이 있을 때에 조만간 나쁜 일도 생길 수 있다고 예상하고 조심할 것이며, 나쁜 일이 있다 해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라 생각해서 미래를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겠다.

그러고 보면 주위는 아름다운 단풍부터 온통 즐길 것투성이다. 비대면 시대라도 책은 얼마든지 주문해 볼 수 있다. 평소에 보고 싶었던 책의 리스트를 만들어 책을 주문해 보자. 영화도 음악도 다 집에서 즐길 수 있다. 모든 예술 작품을 집에서 큰 돈 안 들이고 즐길 수 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구와는 전화로 길게 수다를 떨어 보라. 시간은 흘러간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주위의 자연을 마스크를 썼다고 향유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코로나19 역병의 시대가 지나가고 다시 이 시기를 회상할 때 아름다운 추억의 책갈피에 노란 잎, 빨간 잎들이 많이 등장하기를 바란다. 누구에게는 잊지 못할 한 시기가 되기도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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