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달이 밤새 만들어 주고 해가 종일 지켜주는 정원.
향기로운 유년의 추억이, 노년의 고요한 평화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만나는 곳.’
 
지난 주, 겨울이 오기 바로 전, 마지막 따뜻한 늦가을 날씨를 틈타 삼천 평 동림원 곳곳에 켄터키 블루그라스 양잔디 씨를 뿌렸다.

정원 전체 중, 한국 잔디를 식재한 놀이터 부지 두 군데 빼고, 원두막 근처의 수박 참외 심을 장소 빼고, 나와 남편이 심을 꽃동산 빼고 다 뿌렸다.

참, 이렇게 ‘잔디 씨를 뿌렸다’라고 말을 하면, 또는 글을 쓰면, 지인들이 걱정한다.

“나이 드신 두 분이 어떻게 그 넓은 곳에 일일이 씨를 뿌린대요?” 나는 웃으면서 말한다.

“우린 잔디 씨를 뿌려줄 분들을 고용한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흔들기도 한다. 고개를 흔드는 분들의 마음을 이해한다.
 
‘무엇 때문에 그런 돈을 쓰나?’ 하는 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돈이란 쓸 데 써야 하고 이렇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분들에게야말로 아낌없이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동림원이란 아름다운 환경이 제대로 조성된다.

어제 친구 하나가 내게 ‘스티브 잡스의 마지막 말’ 이라며 긴 글을 보내 주었다. 그 글 중 한 부분을 발췌한다면.
 
‘어둠 속 나는 생명 연장 장치의 녹색 불빛과 윙윙거리는 기계음을 보고 들으며 죽음의 신의 숨결이 다가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나는 깨달았다. 생을 유지할 적당한 부를 쌓았다면 그 이후 우리는 부와 무관한 삶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을 ........’
 
동림원이야말로 스티브 잡스가 살았다면 해 보고 싶었을 그런 프로젝트가 아닐까 싶다.

이곳은 많은 분들의 노동력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소중한 곳이며 앞으로 더 많은 분들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곳이다.

나무 심기 전에 배수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땅 파는 포클레인을 임대했고 그 농기계를 잘 다룰 수 있는 전문가를 고용했다.

관수 시설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번 잔디 씨 뿌릴 때도, 우리는 현장을 보지 않았지만 이전에 충분한 설명을 들었고 씨 뿌리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씨는 선명한 초록색으로 소독되어 있었고 모래와 비료가 함께 섞인 채 커다란 원형 파이프에서 콸콸 쏟아져 나왔다.
 
동림원은 차가 다니는 농로를 중심으로 동원과 서원으로 나누어진다.

두 정원 사이에 둥글게 터널을 조성할 예정으로 농로 양쪽에 등나무 30그루를 심었다.

언젠가 그 등나무의 보랏빛 꽃이 만개할 무렵, 터널 아래서 결혼식을 하는 커플도 생길 것 같다.

그 때라면 찻길은 임시로 막아두고 신혼부부의 행진을 박수로 축하할 것이다.

‘등나무 터널 야외예식장’이 영천의 명물이 될지도 모르겠다.

찻길을 막는다고 동네 분들이 불평하면 어떡하냐고? 원래 그 길은 동네 분들을 위해 우리가 기증한 땅이니 그분들도 기쁘게 이해해 줄 것이다.

이번에 잔디 씨를 뿌릴 때 함께 한 작업이 있다. 어린이 놀이터 예정지에 키 큰 느티나무를 심은 것이다. 왜냐고? 여름 한나절, 아이들 놀 때 그늘이 생기라고. 옆에는 수도전도 있다. 물놀이도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서이다.

이 공원의 기본 컨셉은 과일나무 정원이지만 내가 만드는 ‘소설가의 꽃밭’이 있고 남편이 조성하는 ‘시인의 꽃밭’도 있다.

아이들이 동림원에 와서 놀고 싶어 하도록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표이고 소망이다.

영천 평생학습관에서 수업을 받을 때 함께 한 아기 엄마들이 있다. 그 중 한 젊은이가 혹시 아이들이 흙과 같이 놀 수 있는 장소가 있겠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동림원 한 귀퉁이에 주말 농장처럼 흙으로 뭔가를 할 수 있는 곳을 만들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다.

이렇게 동림원을 조성하면서 땅과 흙으로 할 수 있는 많은 일들을 찾아보고 있다. 우리가 소위 ‘농사’라고 하는 ‘흙에서 이윤을 얻는 일들’ 말고도 ‘흙에서 행복을 느끼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 그것은 농사의 기본 컨셉인 ‘배를 채우는 일들’이 아니라 공원이 가지고 있는 기본 컨셉인 ‘정신을 채우는 일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무료로 입장해서 20종류의 과일과 함께 놀고 즐길 수 있는 과일나무 정원’인 동림원에는 벤치가 20개 이상 설치될 예정이다. 동림원 서원 쪽에는 주차장도 15면 이상 설치할 생각이다. 쓰레기통 설치를 고민해야 하고 불편하지 않은 화장실도 마련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동림원 조성 계획을 들으면서 우려되는 일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무료로 입장하면 많은 사람들이 쉽게 잔디를 짓밟고 꽃을 함부로 꺾고 과일을 따기 위해 가지를 부러뜨릴 것이라고 말한다. 화장실은 물이 막히고 엉망이 될 것이며 쓰레기통은 곧 가득 차고 입장객들은 자기 차에 있는 쓰레기까지 버리고 갈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아마 그럴 수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혹시라도 있을 사람들의 폭력(?)을 우려해서 곳곳에 안내판을 붙여둘 생각이다.

“여러분의 아름다운 행동이 자녀의 미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나무랑 꽃이랑 과일은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예쁜 꽃이라도 꺾으면 곧 시들어 버린답니다.” 등등.

화장실에는 아마도 “이곳이 깨끗하면 우리 모두의 기분도 좋겠죠?”라거나 내가 언제나 최고의 표어라고 생각하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를 붙여 놓을지 모른다. 또는 몇 개의 CCTV를 설치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고 행동에 옮길 수도 있다.
 
어쩌면 많은 사람들의 우려는 그저 우려 만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고속도로 휴게소의 화장실들도 깨끗이 유지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우리 동림원의 화장실도 당연히 기본적인 청소가 이루어진다.

나는 화장실을 청소하는 분들을 고용할 것이다.

잔디를 깎아주는 분들, 과일나무에 약도 주고 밥도 주는 분들, 잡초를 뽑아주는 분들도 고용할 것이다.

쓰러진 나무들을 일으켜 세워주고 죽은 나무들을 치워주고 새로운 나무들을 심어주는 분들도 필요할 것이다.

이 모든 비용이 우리 동림원을 믿어주는 분들이 보내주는 후원회 계좌에서 나온다고 자랑스레 말할 수 있어 기쁘다.

이 정원이 두고두고 ‘사람이 사랑하는 정원’으로 지속 가능하리라고 뿌듯하게 다짐할 수 있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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