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엔 한시바삐 桎梏에서 벗어나 正常을 되찾을 수 있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아듀(Adieu) 2020! 코로나 때문에 잃은 것이 많은 한 해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서로 만나지는 못했지만 잊은 것은 아니고, 취소되었지만 없어지진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운 000동산에서 반갑게 만나는 날을 기다리며 동문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합니다.”
 
최근 대학 동문회에서 보내온 연말 인사장에 적힌 글이다.

그렇다. 참 2020 경자년(庚子年) 한 해는 코로나 19에 가위눌린 채 일상을 ‘바이러스 역귀(疫鬼)’에 쫓기듯이 허둥지둥 지내다 보니 어느덧 마감 시간이 다 된 형국이다.

올핸 크리스마스도 연말연시 분위기도 언감생심이다. 연기처럼 사라진 1년이 실망스럽고 허탈하기 짝이 없다.

하여 가능하기만 하다면 2020년 한 해를 몽땅 되돌려받고 싶다.

어디 필자만 그렇겠는가. 우리 국민, 나아가 전 세계 사람들이 같은 심정이리라.

지난 1년간 언론과 정책 당국 등 우리 사회에서 가장 많이 거론된 단어로는 ‘마스크’와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가 단연 으뜸을 차지할 것이다. 그리고 ‘격리’ ‘3밀(密-밀접·밀폐·밀집) 회피’라는 말도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지난 해 개봉돼 국내에서도 호평을 받았던 영화 ‘파이브 피트(Five Feet)’가 생각난다.

낭포성 섬유증(Cystic Fibrosis, CF)이라는 유전성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은 서로 6피트(182.8cm) 이내 거리로 다가서면 치명적인 박테리아를 옮길 수 있기 때문에 서로 접근을 해선 안된다고 한다. 그런데 이 질환을 앓고 있는 남녀 주인공이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서로의 물리적 거리가 ‘식스 피트’에서 ‘파이브 피트’로 다가선다는 것이고, 사랑이 죽음으로 내몰리는 비극의 거리가 되고 만다는 의미다.

그나마 영화의 두 주인공은 서로가 상대방을 알고 있지만, 실제 세계에서 오늘 우리는 누가 코로나 19 감염자인지를 모르는 상황 속에서 불특정 다수의 ‘파이브 피트’에 들어가지 않기 위한 극한의 공포 속에 내몰리고 있는 상황이다.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동물(social animal)’인 인간에게 이는 너무 가혹한 시련이다.

한 친구는 “코로나 감염 우려로 친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니 서로 고립돼 남남이 된 기분”이라고 했다.

이 역경을 이겨내는 해법은 역설적으로 철저한 ‘물리적 거리두기’는 실천하면서 서로 간에 유대, 사랑, 관심, 격려 등을 표현하고 실천하는 ‘마음의 거리’는 좁혀가는 것일 터이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Out of sight, out of mind.)”라는 영어속담도 있긴 하지만, 매양 그래서야 어디 살맛나는 세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노파심에서 하는 말이지만, 현진건(玄鎭健, 1900~1943)의 단편소설 제목 ‘술 권하는 사회’를 패러디해 ‘거리두기를 권하는 사회’가 ‘외면사회’ ‘대인기피 사회’를 넘어 ‘불신사회’를 조장하지는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불안감이 드는 것도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사람의 목숨과 안전 보다 중요한 게 어디 있으랴.

이런 이야기는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코로나 19 상황에 견주어보면 한가한 소리로 치부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그만큼 최근 코로나 19의 확산세는 우리나라를 총체적 전방위적으로 덮쳐 전대미문(前代未聞)의 비상국면으로 몰아넣고 있다.

경로를 알 수 없는 정체불명 무증상 연쇄감염 환자의 증가로 언제 어디서 누가 나에게 코로나 바이러스 입자를 전파할지 도대체 예측할 수 없는 엄중한 사태를 맞이한 것이다.

자칫 조심스런 일상이 멈춰서고 사회 활동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면서, 나라 전체가 깊이를 알 수 없는 수렁 속으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하고 있기 때문이다.

검사건수가 줄어든 휴일임에도 13일 코로나 19 전국 하루 확진자 수가 역대 최다기록 1,000명을 넘어서고, 검사 건수 대비 확진자를 계산한 양성률은 4.16%로 전날 대비 2배 가까이 치솟는 등 확산세가 쉬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가장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서울의 경우, 감염 경로 불분명 확진자 수가 30%에 육박한다는 점이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감염경로를 조사 중인 환자의 수가 지속적으로 늘어난다는 것은 역학조사가 한계라는 의미"라며 "역학조사가 이뤄져 감염경로 불명이 확인될 경우, 수치가 줄어야 하는데 반대로 늘고 있다는 것은 지역사회에 만연한 감염 패턴으로 어디서 감염이 됐는지, 또 어떤 환자가 'n차' 감염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는 징표"라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와 지자체, 질병관리청 등 각급 관계기관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지난 2월 23일 이후 10개월 만에 대통령이 직접 긴급 중대본 회의를 주재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요일인 1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코로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 회의를 주재하고 “지금 확산세를 꺾지 못하면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도 검토해야 하는 중대한 국면”이라며 “코로나가 국내에 유입된 이래 최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모든 방역 역량과 행정력을 집중해야 할 절체절명의 시간”이라고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9일 “코로나의 긴 터널의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했지만, 사흘만인 12일 소셜미디어에선 “송구한 마음 금할 수 없다”고 했다.

나아가 문 대통령은 국민을 향해 "백신과 치료제가 사용되기 전까지 마지막 고비"라면서 "그때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실천이 가장 강한 백신과 치료제"라고 밝혔다. 이어 "비상한 상황인 만큼 특히 만남과 이동을 최대한 자제해달라"며 "강화된 거리두기를 철저히 지켜주시고, 일상적 만남과 활동을 잠시 멈춰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병상 부족과 의료진 피로(疲勞) 누적, 국민 불안 등이 겹치면서 국가 방역 시스템이 총체적 난국에 직면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많은 방역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바대로 지금 ‘사회적 거리두기 3단계’ 격상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만약 그렇게 되면, 10인 이상 모임 금지는 물론, 백화점 영화관 미장원 독서실 놀이공원 등이 문을 닫고, 프로스포츠 경기 등이 전면 중단된다. 병원과 약국 주유소, 숙박시설 같은 필수시설을 뺀 대부분 다중 이용 시설은 문을 걸어 잠그게 된다.

‘거리두기 3단계’는 전국적으로 환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의료체계가 붕괴할 위험에 직면했을 때 취하는 '마지막 카드'로, 50만개 이상의 다중이용시설이 영업을 중단해야 한다.

이에 따른 막대한 사회·경제적 피해와 자영업자 및 소상공인 등의 반발이 예상된다.

한국은행은 3단계 시행 땐 민간소비는 연간 16.6% 감소하고, 국내총생산(GDP)은 8% 하락할 것으로 예상했다. 얼어붙은 내수가 더 위축돼 업친 데 덥친 격이 될 거라는 암울한 얘기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대체 일반 국민들은 지금보다 더한 규제가 따른다면 잘 버텨낼 수 있을까.

대다수 국민들은 지난 1년간 고통을 감내하며 정부와 지자체, 질병관리청 등의 각종 지시와 당부를 나름껏 성실하게 따랐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영업제한 등 생업과 관련한 조치는 물론 생활 속 사회적 거리두기와 마스크 착용, 손 씻기 등 제반 방역수칙을 지키기 위해 각자 노력했고, 여러 제약과 불편함을 무던히 참아냈다.

정부와 지자체 등 당국이 과연 의료진을 포함한 일반 국민들보다 일을 더 잘 수행해왔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지난 8일(현지 시각) 영국이 세계 최초로 코로나 백신 접종을 시작한 데 이어 미국도 14일부터 백신 긴급 접종에 들어가는 등 각국이 앞다퉈 자국민 보호를 위한 백신 공급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웃 일본도 이달 말 안에 백신을 접종키로 하고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와는 달리 우리 정부는 “이르면 내년 2월부터 코로나 해외 백신 4400만명 분을 확보해 국내에 단계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고 했지만, 언제부터, 어떤 백신을 접종할 수 있을지 등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영국, 미국, 유럽연합(EU), 호주, 일본 등 알 만한 나라들은 이미 백신을 확보해서 접종에 들어간다”며 “K-방역이 세계 표준이라고 으스대던 우리 정부만 무능·태만과 직무유기로 백신을 못 구했을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른바 ‘K-방역’의 성공(?)에 힘입어 지난 4.15 총선에서 여당의 압승을 이끌어 낸 문재인 정부는 이후 코로나 19 확진자 수가 수그러들기가 무섭게 낙관론과 자신감에 기대어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하향 조정하고 소비쿠폰을 발행하는 등 시의적절치 않은 대처를 해온 게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가 올 한 해 동안 국제무대에서 K-방역 성과를 홍보하고 국내에선 K-방역으로 우리의 국제적 위상이 강화됐다고 선전했지만, 최근 코로나 19 확진 폭증세로 K-방역에 타격이 불가피해졌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3차 대유행과 뒤늦은 백신 확보로 코로나19 사태의 종식을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섣부른 K-방역 외교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이미지를 도리어 실추시킨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실제로 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국제무대에 나설 때마다 “한국이 방역과 일상의 공존을 이루며 국경과 지역의 봉쇄조치 없이 열린 무역과 투자를 이어간 결과, 제조업이 살아나고 수출이 증가해 국내총생산 성장률이 플러스로 전환됐다”고 K-방역 홍보에 열을 올렸다.

몇 차례의 위기를 용케 극복한 데 도취해 보다 긴 호흡으로 체계적, 근원적인 접근과 준비를 하는 대신 임기응변적인 대증요법(對症療法)을 선호했다는 지적이다. 한마디로 거리두기 격상 기준 완화로 국민들의 경각심을 풀어지게 했고, 당국의 대응도 늦는 등 자만(自慢)과 판단착오, 실기(失機)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특히 이번 상황에 직면한 가장 큰 원인은 정부가 지난 11월 중순 시작된 3차 유행 대응에 실패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5개 단계로 나눈 뒤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 기준이 느슨해져 국민들의 경각심이 낮아진데다 대응 속도도 빠르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방역 선진국’ 대만과 대조적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성공적으로 막아낸 대만이 29년 만에 중국보다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할 전망이다. 각국의 경제성장률 목표·예상치가 계속 낮아지는 것과 견주어 독보적이다.

12일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대만 정부가 지난달 말에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5%로 상향 조정했다고 밝혔다. 전망치가 현실이 된다면 팬데믹 상황에서 올해 경제성장률 세계 1위 자리는 중국(2% 안팎)을 제치고 대만에게 돌아간다.

대만 경제의 성장 비결로는 코로나19 방역 성공이 꼽힌다. 대만은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가 발병한 직후 가장 먼저 중국발 입국을 차단하는 등 발 빠르게 대처했다.
대만은 코로나 19 확산 초기부터 ‘방역 모범국’으로 꼽히며, 사실상 ‘코로나 19 종식‘을 눈앞에 두고 있다.

13일 오전 9시 기준으로 대만의 코로나19 누적 확진자는 733명, 사망자는 7명에 그친다. 확진자의 약 90%는 해외 유입환자다.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성공한 대만에선 전면봉쇄나 부분봉쇄를 선택한 다른 국가와 달리 평소 같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대만이 이처럼 방역에 성공한 비결은 두 가지다.

첫째로, 입국금지 ’골든타임’을 지켰다. 지난해 말 코로나 19가 터지자마자 대만은 올 2월 6일 중국인 입국을 전면 금지했다. 대만 인구 2,400만 명 중 85만 명이 중국에 거주하고, 전체수출 30%가 중국일 정도로 경제의존도가 높음에도 과감히 내린 결정이었다.

둘째로, ‘강력한 처벌’이 확산을 막았다.

대만 당국은 코로나 검사를 무료로 지원할 뿐 아니라, 격리자에게 하루 33달러의 생활지원금까지 준다. 그러나 ‘14일간 격리’를 어기면 2배로 벌금을 내야 한다. 방역지침을 따르지 않는 사람에게는 한화로 최대 약 4,000만원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대만 입국자의 경우, ‘방역택시’만을 이용해 호텔로 이동하도록 해 해외유입 사례도 철저히 막고 있다.

결국 골든타임 준수와 강력한 지원 및 처벌 등이 대만의 코로나 19 방역 성공을 가져온 주된 요인이다.

국민들은 지금 대만과 달리 우리 정부의 늑장대처와 미온적인 태도에 몹시 화가 나 있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 조사결과,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또다시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하고, 특히 내년 시장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서울(부정평가 62.3%)과 부산(부정평가 68.6%, 울산·경남 포함)의 지지율이 급락하는 등 민심이반이 심상치 않다.

14일 리얼미터에 따르면, YTN 의뢰로 지난 7∼11일 닷새간 전국 18세 이상 2,53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전주보다 0.7%포인트 하락한 36.7%로 나타났다.

전주에 30%대로 추락하며 취임 후 최저치를 경신한 데 이어, 2주 연속 최저치 기록을 갈아치운 것.

이른바 '추-윤 갈등‘, 여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강행 처리, 4개 부처 개각, 코로나19 대유행과 백신확보 미진 등이 악재(惡材)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어쨌든 정부는 이제라도 심기일전(心機一轉), 미비점을 철저히 점검·보완하고 최선을 다해 코로나 19 확산세를 진정시켜야 할 것이다. 보다 겸허한 자세로 진정성 있게 소통하고,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불퇴전(不退轉)의 각오를 다져야 하는 이유다.

만에 하나 3단계 격상으로 가더라도 이와 별개로 시민들의 참여가 가장 절실한 과제이므로 시민들의 엄중한 상황인식과 철저한 거리두기가 새삼 중요하다는 것이 방역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더 악화될 경우, 강제로 집밖에 못 나오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 전반의 높아진 ‘코로나 피로도’를 감안, 국민들의 희생과 양보를 주문하기에 앞서 고통을 경감시키는 정부의 솔선수범과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자세가 우선적으로 요구된다는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래저래 코로나 19를 종식시키는 키워드는 ‘거리두기’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슬프다. 코로나 19로 ’잃어버린 1년‘의 시간을 벌충하기 위해 2021년 흰소띠 신축년(辛丑年) 한 해는 하루빨리 이 지긋지긋한 역병(疫病)에서 벗어나 정상적인 일상(日常)을 회복할 수 있기를 두 손 모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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