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새해에 들어서니 영하 10도가 예사다. 이번 겨울은 작년 겨울과는 정말 다르다. 코로나 19로 심정적으로도 몸이 떨리는데 한파 역시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지가 지난 덕분에 아침 해는 이전 보다 조금 일찍 동편에 나타난다.

“안녕?” 해님은 따뜻한 붉은 빛으로 보는 이의 썰렁한 마음을 다독여준다. 달님과 다른 점은 언제나 둥글다는 점이다. 색깔은 가끔 다르지만 모습이 한결같이 둥글기 때문에 해님이 달님보다 좀 더 이성적으로 보인다. 게다가 겨울엔 흐리기보다 맑은 날이 더 많기 때문에 붉은 해님의 완벽한 출현은 오늘도 하루를 잘 보낼 수 있겠구나 하는 신뢰를 준다. 이렇게 자연의 변함없는 순환을 도시보다 가까이 느끼게 되는 시골은 나이 들어 좀 더 외로움을 타는 노인들에게 안성맞춤이다. 자연을 친구로 사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연에 이끌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젊은이들이 도시에 끌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젊은이라도 시골에 특별히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면 모를까, 수많은 기회가 널려 있는 도시에 가고 싶어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아닐까? 특별한 개개인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특별한 개개인이라면? 농업에서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청년 농부를 말한다. 그들은 갖가지 농기계로 무장하고 최신의 IT기술을 탑재한데다가 많은 사람을 고용해서 이윤을 남길만한 경영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 정부 또한 이러한 농어업 경영인들이 많이 농어촌에 와서 쇠락해가는 농산어촌을 살려 주기를 기대하면서 가능한 많은 지원을 해 줄 것을 약속하기도 한다.
 
물론 정부의 약속은 농촌에 있는 이들의 눈에는 미미하고 그러한 서로간의 입장차가 농촌을 떠나는 이들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도시의 일들도 언제나 성공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러므로 많은 이들의 우려 속에서 농촌의 발전은 지지부진한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주면서도 총생산 몇 십 억이 넘는 부자 농부들의 기사가 가끔씩 우리에게 희망찬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나 농산어촌의 역할이 우리의 먹거리를 생산하는 일만이 전부일까? 생산하는 농업의 중요성 못지않게 아름다운 자연을 보존하는 환경의 중요성, 이 두 가지로 크게 갈라 말할 수 있다.
 
벼농사를 짓지 않아 폐농이 된 곳에 잡초가 무성한 모습이 아름다울까? 아니면 푸른 벼 포기가 물결치다가 가을이 되어 황금색으로 변하는 논이 아름다울까?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농사 대신 농촌 환경을 생각해 보아도 구별할 수 있다. 사람이 떠나서, 대문은 부서지고 그 사이로 보이는 흉가의 서까래를 잡초 덩굴이 타고 올라가는 귀신 나올듯한 모습이 아름다울까? 상당한 액수를 감수하여 폐가를 치우고 (요사이 그런 집을 철거하는 비용이 적지 않다. 석면이라도 있는 곳이라면 더욱.) 빨간? (무슨 색깔의 지붕이라도 괜찮다.) 지붕의 아담한 집을 지어 사는 모습이 아름다울까?
 
이웃 마을에 우리처럼 작은 집을 지어 귀촌한 지인 부부가 있다. 그들은 가까운 대도시 울산에 직장과 집을 놔두고 주말에는 시골에 있고 싶어 땅을 사고 집을 지은 경우다. 이웃의 도움으로 텃밭에서 농사짓는 재미도 쏠쏠히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다음 해면 남편 되는 분이 퇴직하므로 울산 집을 정리하고 이곳에 정착하려 했다고 부인은 말했다. 하지만 이젠 법이 바뀌어 시골집을 팔아야 된다는 것이다. 1가구 2주택 중 대도시 집을 먼저 팔면 양도소득세가 엄청 나온다는 것이다. 할 수 없이 값이 싼 시골집을 먼저 팔아야 되는데 이다지도 애정을 쏟고 살던 이곳을 팔 엄두가 안 난다고 했다. “유치원 다니는 외손녀가 이곳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부인은 말끝을 흐렸다.
 
그렇구나. 그런 이유로 시골의 빈 집이 방치되고 있구나. 세금과 관계되는 것은 잘 몰랐다. 하지만 농촌의 문제가 이렇듯 이유가 분명한데 왜 국가가 나서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려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대한민국의 푸른 지대를 메꿔주는 사람들에게 정부가 해 줄 수 있는 일이 과연 1가구 1주택 정책을 시골 읍면 지역에까지 확대해서 세금을 걷는 일밖에 없을까? 생각해본다. 자녀들은 추억어린 부모의 시골집을 물려받지 않으려 든다. 큰돈이 되지 않는데 다주택자에게 물리는 세금이 많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노후를 대비한 계획을 세우는 데 이런 정책은 시골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희망에 찬 물을 끼얹는 것 밖에 되지 않을 것이다.
 
서구의 작가들이 쓴 글을 읽어보면 여름에 시골주택에 가서 살면서 자연에 대해 느낀 감성이 나중에 훌륭한 작품으로 되어 나오고, 대단한 과학의 발견 또는 발명에도 기여했다는 증언이 나온다. 영국 과학자인 찰스 다윈의 경우만 해도 그렇다. 그가 여름주택에 가서 자연에 대해서 행했던 수많은 관찰이 나중에 ‘종의 기원’이라는 위대한 저작을 쓰게 만들었고, 뉴턴의 ‘만유인력법칙’ 또한 시골 사과나무 밑에서 이루어졌다고 하지 않았던가? 또 프랑소아즈 사강이라는 프랑스 작가는 그해 여름에 시골집에서 보낸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로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베스트셀러를 썼다.
 
우리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학교안의 교육에만 머물지 말고 자연에서 마음껏 뛰놀고 배우기 위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시골에 연고를 갖게 하는 정책은 어떨까? 1가구 1주택 정책을, 소멸되어간다고 그리도 안타까워하는 읍면 지역에까지 적용해야만 할까? 차라리 소멸위험 지역의 부동산 구입을 장려하고 취득세를 면제하는 정책은 어떨까? 시골주택법, 이런 종류의 법을 만들어서 헌 집을 구입하는 주변 도시인들에게 철거비용을 보조하고 봄이나 가을마다 마을축제를 열어 도시민과 원주민과의 화합을 도모한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시골 주민들도 주말주택이나 여름주택에 사는 도시민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고 도시민들 역시 원주민이 재배하는 로칼푸드를 구입해 주면서 상생의 길을 간다면 지역 소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시골에 할아버지 집이나 외갓집이 있는 어린이들이 친구들의 부러움을 사게 되고 나아가서 농촌 지역이 활성화 되는 데에 큰 보탬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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