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중한 역사물은 史實 충실해야 공감·생명력 얻어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 강원대 외래교수 류석호
최근 자신이 출연 중인 tvN 방송 예능 ‘벌거벗은 세계사’에서의 역사왜곡 논란과 석사(역사교육학)논문 표절 의혹으로 물의를 일으킨 역사강의 스타강사 ‘설민석 사태’는 역사를 함부로 다루는 일이 어떤 결말을 초래하는지를 무섭게 웅변하고 있다.

설민석은 역사 전공자 타이틀을 사실상 상실했고, 방송가에서 퇴출됐다.

설민석은 지난달 19일 방영된 tvN '벌거벗은 세계사' 이집트-클레오파트라 편과 관련해 역사 왜곡 논란 지적을 받았다. 이 프로그램의 자문으로 참여했던 고고학자 곽민수 한국이집트학연구소장은 방송이 나간 다음 날 자신의 SNS에 "사실관계 자체가 틀린 게 너무 많아서 언급하기가 힘들 지경"이라고 공개 비판했다.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설립, 클레오파트라 칭호,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말의 기원 등 방송 내용을 반박한 것.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설립자가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고 했으나 사실은 프롤레마이오스 2세이며, 카이사르의 ‘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Veni, Vidi, Vici)’라는 유명한 표현은 이집트에서 로마로 돌아가 말한 게 아니라, 소아시아의 젤라에서 폰토스왕국 파르나케스 2세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뒤 원로원에 보낸 편지(승전보)에 적혀있던 글이라는 것.

설민석 강의의 역사 왜곡 논란은 처음이 아니다. 그는 2016년 tvN '어쩌다 어른'에 출연해 '흙수저 3인방(정도전, 이성계, 무학대사)의 조선 건국기'를 주제로 강의를 진행하면서 '이성계 여진족설'을 언급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당시 역사학자들은 이성계의 여진족설은 학계에서도 부정되는 내용이며 여러 자료를 통해 반박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설민석은 2013년 자신의 인터넷 강의에서 3.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을 폄훼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설씨는 3월 1일에 이들이 모인 음식점 '태화관'을 '우리나라 최초의 룸살롱'이라고 표현하며 "대낮에 거기서 낮술을 먹었다"고 하는가 하면 민족대표 33인 중 대부분이 1920년대 친일파로 돌아섰다는 내용도 언급했다.

이에 대해 민족 대표 33인의 후손들은 "독립선언을 룸살롱 술판으로 변질시키는 등 독립운동하신 선열님들에 대한 모독" "표현 자체가 망언이고 망발"이라고 비난하며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2018년 11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5부는 "설씨가 25만∼100만원씩 총 1400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설씨의 발언 중 '민족대표 대부분이 1920년대에 친일로 돌아섰다'는 발언을 허위로 판단했다.

법원은 "설씨가 비판적 관점에서 강의한 것이고, 일반 대중이 역사적 사실을 이해하기 쉽게 풀어서 설명하는 과정에서 한 표현행위라 하더라도, 역사에 대한 정당한 비평의 범위를 일탈해 후손들이 선조에게 품고 있는 합당한 경외와 추모의 감정을 침해하는 위법행위"라고 지적했다.

설민석은 단국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역사교육학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재미있고 알기 쉬운 역사 강의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으며 지난 수년간 다수의 역사 관련 TV 프로그램에 출연해왔다.

또 2016년 5월 19일 방송된 tvN 특강쇼 ‘어쩌다 어른’의 ‘조선 미술, 인문학을 만나다’ 편에서 수능 스타강사 출신의 최진기(사회학 전공) 씨는 다른 작가의 작품인 ‘군마도(群馬圖)’를 조선시대 화가인 오원 장승업(吾圓 張承業, 1843~1897)의 작픔으로 소개, 방송사측이 정정과 함께 사과하는 촌극을 벌이기도 했다.

방송드라마나 영화의 역사 왜곡과 오류, 안이한 역사의식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달 12일 첫 전파를 탄 tvN 역사드라마 ‘철인왕후(哲仁王后, 1837~1878, 조선 25대 철종의 왕비)’는 방영되자마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700여 건 이상의 민원이 접수되고 청와대 국민청원에도 역사 왜곡을 지적하는 청원이 올라오는 ‘문제적 드라마’가 됐다.

‘철인왕후’는 조선왕조실록 비하 논란이 터지는 등 방송 시작부터 시청자의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순원왕후를 안티에이징에 혈안이 된 인물처럼 묘사하고, 중전이 철종에게 손찌검을 하거나, 중전과 궁녀가 함께 겸상하는 무리한 설정 등으로 조선왕조 궁중 예법과는 거리가 먼 극 중 묘사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부정부패를 척결하고 비리에 맞서 백성의 억울한 누명도 풀어주는 조선 시대 암행어사와 어사단의 통쾌하고 영웅적인 코미디를 내용으로 지난달 21일 첫 방영된 KBS 2TV 월화 퓨전사극 ‘암행어사: 조선비밀수사단’도 오십보백보다.

2001년 SBS의 대하사극 ‘여인천하’에서는 문정왕후(文定王后, 조선 중종의 계비이자 명종의 모후)의 동생 윤원형(尹元衡)을 오라비로 둔갑시킨 적이 있었다. 남의 집 족보까지 제멋대로 뜯어고치고도, 제작 책임자가 “드라마를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서”라고 당연한 듯 말한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

MBC가 2013년 10월부터 방송한 50부작 드라마 ‘기황후(奇皇后)’도 역사 왜곡 논란을 불러일으킨 대표적 사례. 역사적 사실과는 달리 기황후와 충혜왕(忠惠王)을 지나치게 미화, 영웅시했다는 것. 고려 공녀(貢女) 출신 기황후는 원나라 혜종(惠宗)의 황비가 된 이후 본가인 행주 기씨를 통해 고려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고려사절요’는 ‘기황후와 기철 4형제가 갖은 횡포를 일삼고 경쟁적으로 악행을 일삼았다’고 했다. 기씨 일가가 숙청을 당하자 기황후는 공민왕 폐위를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원 혜종을 부추겨 고려 정벌을 명하게 했다.

또 충혜왕은 계모를 겁탈하고 사치와 향락을 일삼은 폭군으로서, 부왕 충숙왕의 후비인 수비 권씨를 겁탈했고, 또 다른 부왕의 후비인 원나라 경화공주를 성폭행했다. 사서는 ‘충혜왕이 신하를 외국으로 보낸 뒤 그 부인을 겁탈했으며 눈물을 흘리는 여자는 철퇴로 때려죽였다’고도 기록했다.

이 드라마 ‘기황후’의 극작가는 2006년 KBS 사극 ‘대조영’을 쓰면서도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켰다. 설인귀를 측천무후, 대조영과 동시대 인물로 그렸으나, 사실 설인귀는 측천무후가 황제에 오르기 7년 전에 사망한 인물로 당시 한반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이에 대해 한 대중문화평론가는 "이처럼 터무니없는 설정이라면 가공의 인물을 만들지 왜 대중의 역사관을 혼란시키느냐"며 "작품을 수출하면 한국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으니 제작진은 더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영화 쪽 사정도 피장파장이다.

2019년 7월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도 역사왜곡 논란에 휩싸였다. 세종대왕이 아니라 신미(信眉) 스님이 한글 창제를 주도한 것처럼 표현했는데, 이는 기록으로 증명된 것이 전혀 없으며 학계에서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는 설(說)에 불과하다. 신미 스님은 실존인물로서 세종 ‧ 문종 ‧ 세조 때 활약했으나 한글 창제에 기여했거나 관여한 증거는 전혀 없는데 지나치게 미화하고 영웅화한 것이다.

또 몇 년 전 이순신(李舜臣) 장군의 명량대첩(鳴梁大捷)을 그린 영화 '명량'도 역사 왜곡으로 곤욕을 치렀다. 명량해전에 참전하지도 않은 배설(裵說)이 이순신을 암살하려 하고, 건조 중이던 거북선에 불을 지르는 등 해악을 끼치고, 도주하려다가 활에 맞아 죽는 것으로 왜곡했다. 이에 경주배씨 후손들이 경찰에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제작자 겸 감독, 각본가와 원작자를 고소했다.

역사를 소재로 한 강의와 드라마 영화, 소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들 장르에서 역사왜곡 문제가 도(度)를 더하고 있다.

사극이나 역사소설이 역사 대중화에 기여한다는 점은 좋은 일이다. 학교에서 역사교육이 부실한 현실에 우리 역사를 널리 알리고 자부심을 고취하는 면에서 역사소설과 사극 드라마나 영화가 인기를 얻는 것은 일면 긍정적인 현상이기도 하다.

그러나 사극이든 역사소설이든 역사적 실체를 작가나 제작자가 자의적으로 해석해 도를 넘어 왜곡 날조하는 일은 지양돼야 한다. 사극이나 역사소설은 역사책이 아니므로 작가의 상상력이 끼어들 여지가 있지만, 그 상상력이 지나쳐 있었던 사실은 없었던 듯, 없었던 사실도 있었던 양 역사적 실체를 마구 비틀어서는 곤란하다.

작가나 제작자는 드라마나 영화, 소설을 재미있게 만들려는 의도라고 변명하지만 그것은 역사에 죄를 짓고 시청자와 관객, 독자를 오도하는 범죄행위다. 역사를 왜곡 날조해가면서까지 상업적 이익을 꾀해서는 안 된다. 역사에 전문지식이 없는 시청자와 관객, 독자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중학교 역사 교사에게서 잘못된 역사적 사실을 그려낸 드라마로 인해 학생들이 시험 문제를 왕창 틀렸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또,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를 본 학생들이 “광해군이 나쁜 왕인 줄 알았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좋은 왕인 것을 알았다”고 말하더라고 했다. 광해군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학자마다 뚜렷이 갈리는데도 말이다.

사극은 어디까지나 본질적으로 역사적 사실에 충실해야 하는 것이 대원칙이다. 사극은 일반 드라마와 달리 그 소재가 실존했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2011년 6월 ‘사극에 나타난 역사 인식’을 주제로 동북아역사재단과 PD연합회가 공동 개최한 심포지엄에서 역사학자들이 보인 반응은 곱씹어볼 만하다. 역사학자들은 “드라마와 영화의 파급력을 감안할 때, 사료가 명백하고 학계에서 통설로 인정되고 있는 역사의 기본 줄기는 지키는 가운데 작가적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며 “자문의 수준을 넘어 한 단계 발전된 역사학자와 드라마 연출자 간의 공동 작업을 통해 역사 드라마와 영화의 질이 향상될 수 있다”며 파격적인 역사 변형에 대해 우려하는 의견을 쏟아냈다.

이에 대해 PD 등 연출자들은 “사실에 기반한 사극의 교육적 측면은 인정하지만, 드라마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작가의 상상력은 필수적인 것”이라며 “왜곡이라기보다 극적 변용(變容)으로 제작자의 기획 의도에 중점을 두고 봐 달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별들의 고향’ ‘고래사냥’ ‘바보들의 행진’ 등 1970년대 청년문화를 대변하며 베스트셀러 제조기로 불렸던 작가 최인호(1945~2013)는 생전에 “역사소설을 쓰는 것이 얼마나 어렵고 피 말리는 엄중한 작업인지 체감했다”고 토로했다.

그의 첫 역사소설 ‘잃어버린 왕국’(1986년 초판본 출간 후 100쇄 돌파)은 일본의 역사조작과 백제에서 일본으로 이어지는 역사의 흐름이 어떻게 단절되고 사라지게 되었는가를 조명하는 내용으로 ‘역사 속 잃어버린 백제’를 소환한다.

그는 면밀한 고증을 거친 작품을 쓰기 위해 한자와 역사 공부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고, 일본을 여러 차례 답사하며 발로 뛰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한마디로 엄청난 공력(功力)을 들여서 출산(?)한 만큼 역사소설은 여러 측면에서 다른 장르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고 자부심을 드러냈었다.

5년 전 별세한 방송작가며 역사 소설가인 신봉승(1933~2016) 씨가 생전에 한 잡지사와 가진 인터뷰에서 “드라마를 쓰는 일보다 사료(史料)를 살피는 일이 더 고달팠다”고 한 말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리나라 ‘정통 사극의 틀을 세운 사람’이라는 평을 듣고 있는 그는 조선왕조실록 등 철저한 실증과 고증을 바탕으로 대하드라마 ‘조선왕조 오백년’ 등 수 많은 사극을 집필했다.

어쨌든 역사 소설과 사극, 영화가 가능한 한 사실(史實)을 뼈대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작가와 제작자에게 재미와 흥행이라는 잣대도 중요하겠지만, 시청자와 관객들에게 왜곡되거나 오도된 역사를 풀어내서는 곤란하다. 역사물을 다루는 이들에게 치열한 역사적 문제의식을 가질 것을 요구하는 것은 지나친 주문일까.

일반 국민은 물론, 특히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실로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찍이 단재 신채호 선생은 ‘조선상고사’에서 “역사를 잊은 민족은 재생할 수 없다”고 갈파했다. 올바른 역사를 아는 것은 민족의 혼이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요,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관건(關鍵)이라는 가르침이다. 이 길에 소설과 영화, 드라마의 역할 또한 예외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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