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음력으로 새로운 한 해가 열렸다. 오늘은 본격적인 언텍트 시대를 맞아 처음 맞는 설날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장기화하면서 설날을 맞는 풍경도 크게 달라졌다. 특히 정부가 직계 가족이라도 등록 거주지가 다를 경우 5인 이상 모일 수 없도록 집합금지 조치를 내리고 이를 어길 경우 10만 원의 과태료를 물리기로 하면서 다양한 이색 풍경들이 연출되고 있다.

 설날에는 차례를 지내고 성묘를 하는 풍습이 있다. 특히 설 차례상에는 떡국을 올린다. 떡으로 만든 이 국을 먹어야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속설이 있다. 차례와 성묘가 끝나면 이웃 어른들이나 친구를 찾아가 세배를 하고 인사를 나눈다. 이 때에 서로 나누는 말들이 덕담(德談)이다. 어린이들에게는 세뱃돈을 주고 세배를 하러 오는 성인들에게는 세찬(歲饌)과 세주(歲酒)를 대접한다. 

 설은 이처럼 정형화된 민족 최대의 명절이다. 그런데도 올해는 전국의 지방자치단체와 향우회가 고향 방문과 이동을 자제하도록 하는 시민운동을 펼쳤다. ‘딸, 아들아 설날 연휴 오지마라~안부는 영상통화로’ 등 무척 이색적인 글귀의 현수막이 곳곳에 나붙기도 했다. 성묘 길을 막는 초유의 사태도 벌어졌다. 화장장을 제외한 상당수의 가족공원들이 연휴기간 중 임시 폐쇄됐다. 문을 연 공원도 입장 인원과 참배 시간을 제한하고 음식물 반입과 섭취를 금지시켰다. 대한씨름협회가 주최한 설날 장사 씨름대회도 무관중으로 진행됐고 고속도로 휴게소에서는 포장만 허용되고 있다. 모두가 코로나19 때문이다.  

 고향 가는 행렬이 크게 줄면서 제주도와 동해안 등 관광지 등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고 있다. 코로나 펜데믹으로 해외여행이 막히면서 모든 면세점이 설날 당일 일제히 휴점에 들어갔다. 그러나 리조트 등 유명 관광지 업소들은 호황을 만끽하고 있다. 예년과 달리 특색있는 고급 선물을 찾는 수요도 늘어났다. 고향에 갈 수 없는 마음을 선물로 대신 전하는 이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온라인으로 친척을 만나거나 차례를 지내는 집도 등장했다. 그래도 조카들이 좋아하는 세뱃돈은 주어야 하기에 우편으로 세뱃돈을 보내는가 하면 앱으로 배달 쿠폰을 선물하기도 했다.  

  당국의 '5인 이상 집합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필히 참석’을 요구한 어르신들도 많아 위험을 무릅쓰고 가족과 함께 고향을 찾은 사람도 많다. 심지어는 “과태료를 내줄 테니 설날에 오라”고 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설에 오지 말라’는 말씀이 없어 형제들이 의논하여 오전과 오후 시간대 별로 나눠서 교차 방문한 귀성객들도 있었다. 일부 맘카페에는 '집함금지 조치를 어긴 시댁을 신고해 달라"는 다소 황당한 글과 신고방법을 구체적으로 알려주는 글이 오르기도 했다. 이에 일부 누리꾼들은 "정말 씁쓸하다. 안 가면 되지 무슨 부모님을 신고하냐. 부모님이 범죄자인가"라고 비판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특히 올해에는 며느리 등 여성 가족들의 명절 스트레스를 감안, ‘술 한 잔, 차 한 잔, 과일 한 쟁반’ 식으로 차례상을 간소하게 차리는 경향이 돋보였다. 차례상에는 으레 25~30가지 음식을 다양하게 올리는 것이 상례였는데 격세지감을 느끼게 했다. 한국국학진흥원조차 “차례와 제례는 조상을 기억하기 위한 문화적 관습이자, 오랜 기간 이어져온 전통일 뿐”이라면서 “과도한 차례상 차림으로 가족간 갈등을 일으키고, 여러 사회문제를 초래한다면 과감히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고 나섰으니 세상이 많이 변했다.  

  명절에는 연휴와 상관없이 일해야 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소방관, 경찰관, 대중교통 운전기사 등 특수직은 물론이고 실업자나 어쩔수 없이 일해야 하는 일부 중소기업 근로자에게는 연휴가 상대적 박탈감을 더 키우는 존재가 된다. 특히 올해는 정부의 거리두기 조치로 영업을 할 수 없어 존폐기로에 처한 자영업자들을 비롯해 코로나 선별검사소 직원, 맹위를 떨치고 있는 조류 인플루엔자(AI) 확산을 막기 위해 근무하는 지자체 공무원들에게는 설날 연휴가 더욱 한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다만 귀향을 자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대거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혼설족'을 위해 편의점들이 맛과 중량을 한 단계 높인 역대 급 명절 명품 도시락을 선보인 것이 유일한 위안거리가 될지 모르겠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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