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일 기자.
▲ 유한일 기자.
“생산 경쟁력을 향상시키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는다면 새로운 방법을 찾을 것이다.”
 
최근 프랑스 르노그룹의 호세 비센트 드 로스 모조스 제조 및 공급 총괄 부회장이 르노삼성 부산공장 임직원들에게 전한 말이다. 르노그룹 내 2인자이자 최고위급 임원인 모조스 부회장은 부산공장의 높은 생산비용에 대해 우려를 표하며 “시급한 개선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메시지를 두고 업계에서는 경고장 성격이 강하다고 평가했다. 특히 ‘새로운 방법’이라는 문구가 눈에 띈다. 당장 한국 시장 철수를 뜻하는 건 아니겠지만, 이대로 부산공장 경쟁력 개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장기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는 의미로도 풀이된다.
 
르노그룹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르노삼성의 급격한 경쟁력 약화를 확인할 수 있다. 르노그룹은 품질(Q), 비용(C), 시간(T), 생산성(P)을 주요 항목으로 하는 지표를 통해 전 세계 19개 공장의 생산 경쟁력을 평가한다. 부산공장의 경우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2위를 다퉜지만 2019년 5위, 지난해에는 10위까지 주저앉았다.
 
부산공장의 순위를 끌어내린 건 생산 경쟁력의 주요 요소인 공장 제조원가 점수가 급락한 탓이다. 지난해 기준 19개 공장 중 17위에 머물렀다. 르노그룹 사업장 중 우등생으로 꼽히던 부산공장이 최근 2년간 열등생으로 전락했다.
 
최근 르노삼성은 살얼음길을 걷고 있다. 지난해 700억 원 규모의 영업손실을 내며 2012년 이후 8년 만에 적자 전환이 확실시된다. 내수와 수출을 더한 전체 판매는 전년 대비 34.5% 감소했다. 회사는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하며 올해 초 임원 수를 40% 줄였고,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도 받고 있다. 이런 상황에 본사의 압박까지 들어오니 르노삼성으로써는 겹악재다.
 
더 우려되는 건 지금의 르노삼성 노사 관계다. 위기 타개와 미래성장 도모를 위한 결속력 제고는커녕 파열음만 들려온다. 국내 완성차 5개사 중 유일하게 지난해 임금 및 단체협약 협상(임단협)을 타결하지 못한 르노삼성 노사의 기싸움이 장기화되고 있다.
 
심지어 르노삼성 노조는 파업까지 예고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맨 사 측의 구조조정에 반발하며 “집에 갈 건 경영진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가 고용 안정을 요구하는 건 당연한 권리다. 노동에 비례하는 임금 인상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르노그룹의 경고장이 날아온 상황에 파업 카드를 꺼낸 건 현명한 판단이 아니다. 당장 현실화할 가능성은 낮아 보이지만, 노조가 만약 파업에 나설 경우 노사 관계는 파국으로 치닫을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자동차 생태계가 요동치고 있다. 또 각국의 친환경 정책 행보로 전기차 시대 도래가 급속도로 빨라지고 있다. 급변하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경쟁력 강화와 함께 노사 화합이 필수적이다. 회사와 노조 모두 원하는 건 르노삼성 위상 강화에 따른 일감 풍년으로 부산공장이 쉴 틈 없이 가동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르노삼성이 당장 존폐 기로에 놓인 건 아니지만 본사의 경고장에 맞서는 답을 마련할 때가 왔다. 변화된 모습으로 한국 시장의 경쟁력을 증명해야 한다. 어쩌면 르노그룹이 원한 건 단기간의 실적 및 수익성 증대가 아닌 노사 화합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설 연휴가 끝나면 르노삼성 노사는 임단협 본교섭을 갖는다. 임금과 희망퇴직 등을 둘러싼 길고 길었던 줄다리기를 조속히 마무리하길 기대한다. 앞으로는 르노삼성 노사가 손을 맞잡고 과거 부산공장 명성을 되찾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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