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친 친일 부역 집필한 故 임종국 시인 '재조명' 필수


▲김태혁 ‘萬事亨通
 
 
3.1절이 다가오고 있다.
 
매년 똑같은 소리지만 왜정시대(倭政時代)가 끝난지 80년이 가까워 오는데도 여전히 친일파 후손들은 대한민국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호의호식’ 하고 있다.
 
반면 일본군과 목숨을 바쳐 싸웠던 독립군 자식들은 아직도 대부분 빈곤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전전긍긍’한다.
 
친일파들을 논증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는 평을 받고 있는 故 임종국 시인은 “친일한 행위가 문제가 아니라, 참회와 반성이 없었다는 해방 후의 현실이 문제였다. 이 문제에 대한 발본색원의 과정이 없는 한, 민족사회의 기강은 헛말”이라고 분통을 터트렸다.
 
임 시인은 불후의 명저인 ‘친일문학론’ 집필 이유는 다소 충격적이다.
 
임 시인은 “1965년 한일회담이 진행됐다. 당시 대통령은 만주군 중위 출신 박정희인데 일본 내각 수뇌부는 그의 얼굴만 보고도 창씨개명인 ‘다카키 마사오(高木正雄)’란 이름을 정확히 기억했다. 심한 공포감에 휩싸였고 급히 ‘친일문학론’ 집필 작업에 착수했다”고 전했다.
 
임 시인이 후세에 남아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친일파에 대해 한 치의 용서도 없었다”는 것이다.
 
임 시인은 ‘친일문학론’을 집필하던 자신의 부친이 일제에 부역을 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일제때 천도교 지도자를 역임한 아버지 임문호(林文虎)는 친일 부역자였다.
 
임문호는 수차례 일본의 식민지 정책 및 대외 침략 전쟁에 동참할 것을 선동했다.
 
임 시인은 즉각 사실 확인에 착수했고 부친으로부터 " ‘친일문학론’에 내 이름을 넣어라. 그 책에서 내 이름 빠지면 그 책은 죽은 책“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임 시인은 "아버지의 친일행적을 써내려가는 게 마치 육체적, 정신적 고문 같았다. 모든 친일 후손들이 그렇게 태어나고 싶지 않았겠지만 조상을 대신해서 사죄하고 나라에 봉사하는 길을 걷는다면 용서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직도 부끄러운 역사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대한민국은 분명 임 시인의 친일에 대한 마음가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진정으로 친일파 후손들이 후회하고 사죄하는 그날이 오려면 제2 제3의 임종국 시인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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