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한일 기자.
▲ 유한일 기자.
지난해 10월 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현대자동차가 ‘중고차 시장’ 진출을 공식화했다. 당시 이 회사 임원은 “소비자 보호의 측면에서 저희 완성차가 사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이 소식이 언론 등을 통해 전해지자 자동차 업계가 들썩였다. 하지만 반년이 지난 현재 이와 관련한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사실 논의가 지지부진하다기보다는 논의 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와 완성차 업체는 중고차 업계와 상생할 수 있는 여러 방안을 내놓으며 대화를 시도하지만, 중고차 업계는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이 우선이라며 버티고 있다. 중고차 시장은 골목상권이라 거대자본을 가진 대기업으로부터 보호받아야 한다는 논리다.
 
지난 2월 정부·여당이 추진했던 ‘중고차 상생협력 위원회’ 출범도 중고차 업계의 보이콧에 무산됐다. 이들은 위원회 출범 자체가 완성차 업체의 중고차 시장 진출을 허용하는 수순이라고 보고 있다. 이에 더해 시대전환 조정훈 의원은 지난달 ‘현대차 중고차 시장 10년간 진출 금지법’을 발의하며 압박 강도를 높였다.
 
중고차 업계가 완성차 업체 시장 진출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생존권’ 때문이다. 영세업자들이 대다수인 중고차 매매업 특성상 완성차 대기업 진출은 매출에 위협이 될 수 있고, 생태계가 붕괴돼 대규모 실업자들을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소비자 권익’을 위해서라도 혼탁해진 중고차 시장에 대한 대수술은 불가피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허위매물과 침수·사고 이력 및 주행거리 조작, 불투명한 가격 산정 등 그간 일부 중고차 매매업자들이 벌인 행태로 시장에 대한 신뢰도는 바닥까지 추락했다.
 
지난해 11월 전국경제인연합회 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 10명 중 8명은 중고차 시장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 한때 유튜브에서 ‘허위매물 중고차 딜러 참교육’이라는 내용의 컨텐츠가 인기를 끌었던 것도 중고차 시장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물론 중고차 업계에서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다. 소비자들의 피해를 야기한 고질적 문제를 보완하고, 재발 방지에 힘을 모으자는 것이다. 최근 만난 중고차 관련 협회 관계자 역시 “보증 연장 및 사후서비스(AS) 체계를 강화해 경쟁력을 높일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지금과 같은 중고차 업계의 ‘대화 거부’ 행보에는 아무런 실익이 없다. 완성차 업체의 시장 진출이 공론화된 상황에 방문을 걸어 잠그고 내부적으로만 변화를 도모하는 건 진정성과 현실성에 대한 의구심을 불러온다. 겉으론 쇄신을 외치면서도 결국 이 순간만 넘기려는 의도로 비춰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미 불신으로 가득찬 중고차 시장 인식을 제고하기 위해선 소비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구체적 이행 과제가 수립돼야 한다. 지금이라도 정부·완성차 업체와 대화 테이블을 꾸리고 시장 경쟁력 및 소비자 권익 강화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길 바란다. 나아가 현재 영세업자들이 느끼고 있는 불안감을 어떻게 해소할지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국내 중고차 시장은 연 22~24조원 규모로 몸집을 키웠다. 전체 자동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결코 적지 않다. 중고차 시장 경쟁력 강화의 수혜가 종사자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돌아올 것이라는 건 자명하다. 하루빨리 중고차 업계가 먼저 나서 투명성에 목말라 있는 소비자들에게 단비를 뿌려주길 기대한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