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찬주 기자
▲ 김찬주 기자
“…다했죠?”
 
이 짧은 한 마디는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청년들이 지난 7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금융경제 세미나 초청 강연회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긴 이재명 대선후보 앞을 막아서고,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제정을 호소한데 따른 이 후보의 발언이다.
 
이 후보는 이 짧은 한 마디를 남기고 그대로 돌아서서 강연회장으로 향했다. 그의 등 뒤로 “사과하라”라는 말이 울렸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당시 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촬영한 영상에는 이 후보와 그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 중 일부의 웃는 목소리까지 담겼다.
 
이 후보는 앞서 차별금지법의 필요성에 동의한 바 있다. 그는 지난달 29일 조선대학교에서 열린 지역 대학생들과 간담회에서 “있는 건 있는 그대로 인정해줘야 한다. 차별금지법은 필요하다. 입법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1개월도 안 된 시점에서 차별금지법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말을 했다.
 
이런 태도가 논란이 되자 이 후보는 곧장 해명에 나섰다. 그는 지난 10일 대구 한 카페에서 청년들이 참석한 ‘쓴소리 경청’ 행사 중 해당 태도에 대한 질문에 “이야기가 길어져서 ‘다 말씀하셨죠’라 말한 것인데, 좀 쌀쌀맞고 차갑게 느껴졌던 것 같다”고 했다. 당시 서울대에서 만난 성소수자들의 호소는 쓴소리로 받아들이지 않았는지 의문이다.
 
“처절한 국민의 절규 앞에서 한 손 인사와 웃음 띤 그 차디찬 한마디는 ‘잔인한 천사의 미소’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차가운 이 한 마디는 그의 인격 그 자체였다.”
 
이 후보의 발언 영상이 논란을 일으키자 여영국 정의당 대표는 이 후보의 인격을 ‘잔인한 천사의 미소’라 빗대며 강하게 비난했다. 청년정의당 강민진 대표도 “오늘의 일은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이던 시절 차별금지법 제정을 호소하는 성소수자 시민들 앞에서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릴게요’라 말한 것을 떠올리게 한다”고 비판했다.
 
강 대표의 지적처럼 이 후보의 이번 태도는 2017년 2월16일 당시 대선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문재인 후보의 모습과 겹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열린 ‘정책공간 국민성장’ 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던 중 성소수자와 장애인단체 회원들의 시위에 부딪혔다.
 
단체 회원들은 문 대통령 연설 중 “차별금지법에 반대하십니까. 유력 대선후보시면 대답을 해주십쇼”라며 성토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연설을) 듣고 나서 말씀하시면 안 될까요”라며 양해를 구했으나, 질문이 계속되자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를 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이 순간까지도 ‘말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의 사상가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 구성원들 간의 신뢰가 튼튼한 사회가 경제도 성장하고 자유민주주의도 발전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하지만 국민에게 비춰진 현 대통령과 여당 유력 차기 대통령 후보의 모습은 개인의 ‘진정성’에 물음표를 던지게 만든다.
 
“존경하는 박근혜 대통령이라고 했더니 진짜 존경하는 줄 알더라.” 지난 7일 이 후보가 서울대에서 열린 ‘청년살롱 이재명의 경제 이야기 강연’에서 했던 발언이다.
 
여당이던 야당이던 후보의 진정성에 국민이 의구심을 가지는 태도를 보인다면, 내년 3월9일 오후 6시 대선 종료 당일 국민은 “처음에 지지한다고 했더니, 끝까지 지지할 줄 알았나”라고 되물을지 모르겠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