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코리아=박수연 기자 | 정부가 농촌 경쟁력 확보를 위해 청년농부 육성과 스마트팜 조성에 집중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정책에만 집중할 경우 기존 농업인들의 역차별을 불러올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현재 농촌은 고령화뿐만 아니라 해외시장 개방, 인건비·운임비 상승 등에 기존 농사를 짓던 농업인들은 골을 앓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정부의 ‘불통’이었다. 농민들의 의견이 수렴되지 않은 농촌 정책에 농민들은 거리로 나서 목소리를 내고 있다.
 
▲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농업분야의 희생을 전제로 한 CPTPP가입 논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전국농민회총연맹을 비롯한 농민의길 소속 농민단체 회원들이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농업분야의 희생을 전제로 한 CPTPP가입 논의 중단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해외시장 개방 RCEP·CPTPP
 
지난달 2일 국회 본회의에서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비준동의안이 심의·의결된데 이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동반자협정(CPTPP)의 가입 추진도 공식화돼 정부는 CPTPP 가입을 위한 절차를 본격 개시했다.
 
지난 1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226차 대외경제장관회이에서 “CPTPP 가입을 본격 추진하고자 다양한 이해관계자 등과의 사회적 논의를 바탕으로 관련 절차를 개시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CPTPP는 미국이 주도하던 TPP(기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에서 2017년 미국이 빠지자 일본, 멕시코,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등 11개국이 결성한 자유무역협정이다.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전 세계 12.9%, 무역 규모는 14.9%를 차지한다.
 
농업계는 이러한 정부의 결정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CPTPP 가입국 중 이미 10개국과 FTA를 체결한 데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는 이전보다 높은 수준의 농산물 추가 개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특히 동식물위생·검역(SPS)과 관련해 수입 허용 여부 평가 단위를 더욱 세분화하고 있기에 그동안 병해충, 가축 질병 등을 이유로 수입을 규제해 온 과실 및 신선 축산물의 국내 시장 진출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한국종합농업단체협의회는 지난 13일 성명서를 내걸고 이와 같이 말하며 “상대적으로 가격 경쟁력이 높은 수입 농산물의 증가는 장기적으로 농업 생산기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세계 최대 자유무역협정으로 일컬어지는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인 ‘RCEP’도 마찬가지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지난 1일 오후 전체회의에서 RCEP 비준 동의안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2월 초 RCEP이 발효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농업계에서는 외통위의 동의안 의결을 ‘날치기 통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지난달 16일 법안소위에서 공청회 개최 등 피해산업인 농업계 의견을 수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지만 받아들여지지 않고 동의안 처리가 추진된 탓이다.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관계자는 “정부는 농업계 피해 예상 금액을 연 77억원 정도로 평가했지만 연중 수입 출하되는 과일 등 국산 과일의 소비를 대체하는 등 간접적인 피해도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부는 RCEP 비준동의안을 의결하기 전 농업계와 충분히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기에 농민들이 이번 결정을 납들 할 수 있는 과정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CPTPP 가입 추진과 RCEP 비준동의안 의결 등에 농민들은 “먹거리 주권까지 위협받게 될 것”이라고 입 모아 말하고 있다.
 
한편 홍 부총리는 지난 15일 외신기자간담회에서 CPTPP와 관련해 “가입에 따른 무역 증진 효과가 기대되지만, 가입하면서 한국으로서는 민감 분야에 대한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며 “농수산물 등 민감 분야 품목에 대해서는 정부가 국익을 최대한 확보하는 범위에서 협상이 이뤄져야 할 것 같고 피해 보는 범위는 정부가 지원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농민 무시하는 민주당 규탄 대회'. 사진=뉴시스
▲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 앞에서 열린 '농민 무시하는 민주당 규탄 대회'. 사진=뉴시스

◇가격급등에는 TRQ운용, 생산량 급등엔 ‘나 몰라라’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달 24일 마늘가격 급등에 따른 선제적 대응으로 마늘 1만톤 TRQ(저율관세할당) 운용을 결정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올해가 10년 기준, 마늘가격이 가장 높다”라며 “마늘가격을 어느 정도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올해 생산량이 최근 5년 대비 17000톤 정도 줄었다”며 “이에 김장철인 지난달 9일부터 19일 사이 가격이 급증했다”고 설명했다.
 
마늘 TRQ가 재개되면 수입 마늘은 기존 360%보다 훨씬 낮은 50%의 관세를 물고 들어오게 된다. 이에 마늘농가는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9일 제주특별자치도의회 양병우(무소속·대정읍)의원은 ‘정부 마늘수입 추진에 따른 긴급 대책회의’를 열고 “마늘 가격안정을 목적으로 기존 관세율 360%를 50%로 낮춰서 수입하는 것은 가뜩이나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업인들에게 농업을 포기하라는 것”이라며 “지난번 이상기후로 큰 피해를 본 마늘 농가에 더 큰 충격을 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2016년 이후 시행한 적이 없던 TRQ 수입을 시행하는 것은 정부의 유통정책 실패의 책임을 마늘 생산농가에 전가하는 것”이라며 “농업을 포기하는 정책으로 규정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마늘 TRQ운용 결정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쌀 공급과잉에 따른 가격하락 우려에는 눈을 감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올해 쌀 생산량은 지난해 350만 7000톤과 대비해 10.7% 증가한 388만 2000톤으로 쌀 과잉 공급에 따른 쌀값 하락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농업계는 쌀값 하락에 대한 대응책으로 쌀 시장격리를 촉구하고 있다.
 
지난해 개정된 양곡관리법 제16조에 의하면 초과생산량이 예상생산량의 3% 이상인 경우 혹은 수확기 가격이 평년 가격보다 5% 이상 하락할 경우에는 쌀 시장격리가 발동될 수 있다.
 
그러나 정부는 “시장격리를 할 만한 수준이 아니다”라며 “시장격리가 필요한 시점에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