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부, 내년 車 예산 확대 편성 불구 미래차 전환·인력 육성 등 지원 턱없이 부족
국내 부품 업계 미래 경쟁력 약화 우려 확대…“영세 부품업체들, 연쇄 몰락할 수도”
“정부, 부품업체 미래차 전환 위해 예산 증대·인력 양성·맞춤형 지원 방안 강구해야”

▲ 자동차 생산라인. 사진=뉴시스
▲ 자동차 생산라인. 사진=뉴시스
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전 세계 자동차 산업이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미래차 시대 준비가 미흡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여전히 많다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이에 국내 부품 업계의 미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터져 나오는 실정이다. 영세한 부품업체들의 경우 미래차 전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연쇄적으로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국내 부품 업계가 처한 현실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미래차 전환에 잘 대응하고 있다는 이해하기 어려운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에 업계는 자동차 부품업체를 위한 과감하고 실효성 높은 지원 방안이 강구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정부 “국내 부품 업계, 미래차 전환 잘 대처 중”…업계 “현장 어려움 외면한 평가”

친환경차 시대가 본격 도래하면서 자동차 부품업체들의 위기감은 날로 커지고 있다. 전기·수소차 등에 탑재되는 부품 수요가 증가하면서 기존의 내연기관차용 부품을 생산해 온 부품업체들의 수익성은 악화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어서다.

그러나 최근 정부는 국내 부품 업계의 경영 상황이 개선되는 추세라는 상반되는 진단을 내놨다. 업계는 “정부가 정책 성과를 부풀리기 위해 현장의 어려움을 외면하고 있다”며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는 이달 21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주재로 열린 ‘제17차 혁신 성장 BIG3 추진회의’에서 산업 동향 및 분야별 정책 추진 상황 등을 점검했다.

이날 회의에서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는 “국가 차원의 미래차 로드맵을 수립해 체계적으로 대응한 결과의 성과가 가시화되고 있다”며 “전기·수소차의 내수 판매·수출 실적이 크게 증가했다”고 자화자찬했다.

산업부는 친환경차 성장 추세에 힘입어 자동차 부품업체의 경영 상황 또한 개선되고 있다고 봤다. 산업부에 따르면 올해 1~3분기 국내 상장 부품업체 82개사의 매출액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7.4% 늘어난 48조5000억원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무려 253% 증가한 1조4819억원을 기록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차량용 반도체 부족 대란의 장기화로 인한 차량 생산 차질, 미래차 전환 투자 부담 등으로 부품업체들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다”면서도 “그러나 경쟁국 대비 차량용 반도체 수급난에 따른 감산 규모 최소화 등을 통해 상대적으로 실적을 선방했고, 미래차 시대 준비도 단계적으로 추진 중이다”고 말했다.

이같은 분석이 나오자 업계는 황당하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전기차 보급 확대로 이익이 증가한 부품업체는 규모가 매우 큰 대기업과 중견기업 등 일부에 불과하다”며 “경영난이 악화하고 있는 중소 부품업체들은 직원을 하나둘 내보내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고 지탄했다.

정부의 긍정적인 자평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산업부는 올해 기업활력법에 따른 자동차 부품업체의 사업 재편 승인 건수가 지난해 22개사와 비교해 77% 증가한 39개사에 이른다고 밝혔다. 이를 토대로 국내 부품 업계의 미래차 전환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 산업부는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부품업체의 사업 재편과 디지털 전환을 지원하고, 미래차 친화적 법·제도 기반을 조속히 확충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업계는 정부가 엉뚱한 지표를 가져다가 마치 모든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미래차 전환에 잘 대처하고 있다는 식의 논리를 펼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관심을 갖고 심도 있게 경영 상황을 파악해야 할 자동차 부품업체는 이익이 증가하는 우량 기업이 아니라 급변하는 자동차 산업 패러다임을 따라가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한 부품업체들이다”며 “친환경차 전환에 잘 대응하고 있는 부품업체들에게 박수를 쳐 줘야 하는 것은 맞지만 일부 우량 기업에만 국한해 경영 상황을 진단한다면 정작 도움이 절실한 영세 부품업체들을 외면하는 지원 대책만 나올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산업부가 편향된 성과에만 눈멀어 미래차 전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품업체들을 외면한다면 국내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지원할 적기를 놓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 자동차 부품업체. 사진=뉴시스
▲ 자동차 부품업체. 사진=뉴시스

◇美·日 등 주요국 미래차 전환 잰걸음…정부도 지원 방안 내놨으나 “여전히 미흡”

정부가 자동차 부품업체의 미래차 전환에 태평하게 대응하는 동안 미국과 일본 등 자동차 강국들은 미래차 시대를 선도하기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전기차 전환 로드맵 실행을 위한 전략 마련에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AP 통신과 정치전문매체 더힐 등 외신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13일 백악관은 미국 에너지부와 교통부가 합동으로 전기차 자문위원회를 설치하는 안건을 비롯한 미 자동차 산업 전환 전략을 발표했다.

이번 발표에 따라 자문위는 내년 2월 11일까지 각 주와 도시들이 전기차 충전소를 전략적으로 배치할 수 있도록 지침을 만들 계획이다. 또 전기차 충전소에 대한 접근성·안전성 등을 높이기 위한 표준 지침도 내년 5월 13일까지 마련키로 했다.

앞서 미국은 2030년까지 신차의 절반을 전기차로 교체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65%가량 감축하고, 2050년까지 미 정부 차원의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실제로 지난달 미 의회를 통과한 1조2000억달러(약 1424조4000억원) 규모의 인프라 예산 법안에는 전기차 충전소 설치용 예산 75억달러(약 8조9025억원)가 편성됐다. 바이든 정부는 이 예산을 통해 미 전역에 50만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설치하는 등 미래차 인프라를 대대적으로 구축한다는 구상이다.

전기차, 수소차 등 친환경차 출시에 소극적이던 일본도 미래차 전환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근 일본은 총리실 산하에 미래차 관련 컨트롤타워를 만들고, 종합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태년 미래모빌리티연구소장은 이와 관련해 “일본의 경우 총리실에 미래차 산업을 관리하기 위한 전속 기관을 설치했다”면서 “반면 내연기관차 판매 중단 계획을 세운 우리나라는 전기차를 어떻게 늘리고 운영할 지 조율하는 기관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의 적극적인 움직임에 일본 완성차 업체들도 호응하고 있다. 토요타는 ‘탄소 중립 실현을 향한 전동화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30종의 순수 전기차 모델을 출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이에 2035년부터는 순수 전기차 모델만 판매할 계획이다.

전기차의 핵심 부품인 배터리 투자 규모도 1조5000억엔(약 15조4944억원)에서 2조엔(약 20조6592억원)으로 늘리기로 했다. 또 하이브리드차, 수소차 등 라인업을 다양화해 탄소 중립을 도모할 방침이다.

양국은 미래차 전환을 위한 전문 인력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포드는 미래차 관련 프로그래머를 현행 300명에서 4000명 이상으로 육성키로 했다. 제너럴모터스(GM) 역시 미래차 인력을 기존 40명에서 2000명으로 늘릴 예정이다.

토요타는 기계·기술 기반 생태계를 소프트웨어 기반 생태계로 변화시키고 있고, 혼다 역시 5년 간 미국에서 인력 5만명을 대상으로 재교육·훈련에 들어갔다.

이들 국가의 발빠른 대처를 의식했는지 우리나라도 국내 부품 업계를 위한 지원 방안 마련에 나서는 모양새다. 앞서 올 6월 산업부는 약 3000억원을 투입해 기술·자금·인력·공정 등 4대 지원 수단을 확충해 2030년까지 부품업체 1000개사를 미래차 기업으로 전환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또 미래차 투자 펀드를 조성하고, 전기차 인력 1만명도 육성키로 했다.

이에 내년 자동차 분야 예산은 대폭 확대됐다. 산업부에 따르면 자동차 분야의 2022년도 예산은 4709억원이다. 이는 올해 예산 3615억원 대비 30.2% 늘어난 규모다.

그러나 자동차 부품업체의 사업화 지원과 관련한 예산은 단 552억원만이 책정됐다. 내년 전체 예산의 11.7%에 불과한 수치다. 산업부는 해당 예산으로 △차량용 반도체 신뢰성 설계 △수요기업과 공급기업 간 협력 모델 구축 △미래차 전환을 위한 기술 조사 △시제품 제작 △마케팅 등을 강화하겠다고 설명했지만, 업계는 정부의 지원이 여전히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 자동차 생산라인. 사진=뉴시스
▲ 자동차 생산라인. 사진=뉴시스

또 산업부는 미래차 전문 인력 부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인력 양성 규모를 올해 1100명에서 내년 2300명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놨다.

그러나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정부가 내놓은 계획이 매우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연구원에 따르면 미래차 산업 기술 인력 수요는 연평균 5.8% 증가해 2028년께 8만9069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6년 후 9만명가량의 전문 인력이 필요한데도 산업부는 내년에 2000명을 조금 넘는 수준의 인력만을 육성한다는 것이다.

연구원은 “자동차 부품업체의 성공적인 미래차 전환을 지원하기 위해선 미래차 인적 자원 육성이 시급하다”며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이 미래차 대응 필요성과 성장성을 인식하고 있음에도 미래차 시대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주요 원인 중 하나는 전문 인력 부족이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자동차 부품업체의 인력 수급 미스매치 완화와 미래차 산업의 포용적 고용 전환을 위한 인적 자원 정책이 필요하다”며 “산업부는 미래차 인재 9만명 양성을 위해 석·박사급 신규 인력을 양성하는 등 적극적인 지원책을 안정적으로 추진·확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자동차 부품업체의 미래차 전환을 위해 정부가 맞춤형 지원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한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미래차 전환에 대한 준비 상황은 천차만별이다”며 “각 부품업체에 대한 맞춤별 지원을 통해 국내 부품 업계가 미래차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도록 정부의 강력하고 실질적인 지원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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