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2022년 1월 7일자 농민신문에 나 태주 시인의 인터뷰 기사가 실렸다. 그는 “노년은 일생 가운데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이라고 말하며 인생 삼여(人生三餘)를 얘기한다. 즉 하루 가운데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은 밤의 시간이고, 1년 중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은 겨울철이며, 일생 중 가장 여유 있는 시간은 노년이라고 말이다. 이제 깊어진 겨울밤에 시인의 말을 음미하며 그의 시를 다시 읽는다.

풀꽃 1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이 시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진대 그는 이미 대한민국의 국민 시인이다.

그가 시에서 가장 많이 언급한 단어가 ‘사랑’인 것과 같이 그는 ‘생의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단호하게 ‘사랑’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만을 위해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을 위하고 도움을 주는 일에 진정한 인생의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노년기는 타인을, 그것도 젊은이들을 위하여 그들의 ‘후원자’ 되기에 가장 좋은 시기라고 말해 준다.
 
내가 젊은이였을 때를 돌이켜 보면 ‘후원자’라는 말은 몹시 낯설다. 친구도 있었고 선생님도 있었지만 후원자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부모와 떨어져서 사춘기를 보내는 기간 동안 미래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생각해 보질 못했다. 책에서 만나는 스승이 전부였다. 만약 젊은이들이 가까운 곳에 후원자가 있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마음 든든할까? 물론 젊은이들이 노인을 가깝게 생각하지 않을 것 같아 걱정스럽기는 하다. 노인들이 청소년들과 가까이 하려 해도 그렇게 할 기회나 장소가 부족하다. 물론 나 시인이 말하는 ‘후원자’라는 의미는 가깝게 대할 수 있는 그런 실체적인 후원자란 뜻은 아닐 것이다. 그 역시 시인으로 책의 저자이니 시를 통해서 젊은이를 격려한다거나 혹은 어려운 처지의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거나 하는 간접적인 후원자 역할은 아닐는지? 다음의 시는 그가 젊은이에게 주는 격려의 메시지다.
 
풀꽃 3
 
기죽지말고 살아봐
꽃 피워봐
참 좋아.
 
요즈음 내가 넷플릭스에서 본 ‘good witch’란 미니 시리즈물이 그런 ‘후원자’의 의미에 대해서 영감을 주었다. 제목의 의미대로 ‘착한 마녀’인데 캐시 나이팅게일이 그 이름이다. 자신의 딸을 위시해서 여동생 및 그 주변 인물들과 그녀가 운영하는 여인숙과 선물 가게의 고객들에게 그녀는 선한 영향을 미치는 조력자가 된다. 애인은 의사지만 그녀는 자연 치료를 선호하며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가게에서 파는 향료차를 권해 준다. 여동생은 대조적으로 사람들의 선의를 믿지 않으며 전해 내려오는 ‘저주’란 말에 두려움을 느낀다. 그런 동생에게 캐시는 말한다.

“‘소원의 우물’에 동전을 던졌어도 두려워하고 믿지 못하면 그 소원은 이루어지지 못해.” 라고.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다른 문이 열려.” 라고.
“내가 행복하길 바라는 대신에 친구가 행복하길 바라면 그 소원은 반드시 이루어져.” 라고.
 
친구들과 옛날에 했던 첫 번째 소원 빌기에 대해서 회상할 때, 캐시는 말한다.
“내 첫 번째 소원은 이제야 말하는 거지만 주변 사람들이 모두 행복해지는 것이었어요. 그 소원이 이루어지면 나도 따라서 행복해지겠죠?”
 
이렇게 생각하는 캐시가 아마도 진실한 의미의 ‘후원자’가 아닐까?
남은 평생 ‘후원자’로 살아도 좋을 것 같은 행복한 이미지를 전해주는 캐시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런 캐시가 나의 엄마든가 이모든가 조카든가 하면 더 좋겠지만 말이다.
 
나 태주 시인이 ‘인생의 세 가지 여유’로 꼽은 모든 것을 지금 나는 가지고 있다. 깊고 깊은 한 밤중이며 계절은 영하의 겨울, 나이는 노년 (세계적으로 유명한 많은 학자들이 인생에서 가장 좋은 시기로 74세를 꼽았다는데.... 이것 역시 나 시인의 말이며 어떤 학자들인지 이름은 거명하지 않았다.) 이다.
 
나는 여유에서 나오는 행복감을 느끼면서 주위를 돌아본다. 이제까지 내가 캐시처럼 주변 사람들의 행복을 첫 번째 소원으로 빌었다면 분명 내 주위 많은 사람들이 이미 행복해 있으리라. 하지만 난 그걸 몰랐고 어리석게도 내 행복에만 집착했었다.
이제 나는 왜 혼자서 느끼는 행복은 공허한 것인지 알아간다.

내 작은 행복이라도 주위와 나누지 않으면 지탱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아간다. 내가 계속 행복할 수 있으려면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도 알아간다.
 
내 주변의 누군가가 ‘후원자’였으면 좋겠다는 귀여운 투정은 접어두고, ‘받은 게 없어서 주지 못 하겠다’는 앙탈 또한 접어두고, 내 스스로 ‘후원자’가 될 결심을 하고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지 ‘꿈’을 꾸는 새로운 노년이 되기로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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