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기반 망가뜨리고 관계자 자리까지 챙겨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탈원전 정책을 고집하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5일 “원전이 지속 운영되는 향후 60년 동안 원전을 주력 기저전원으로 충분히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한울원전 1·2호기와 신고리 5·6호기에 대해서는 “이른 시간 내에 단계적으로 정상 가동할 수 있도록 점검해달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갑자기 원전을 ‘주력 전원’으로 내세우자 퇴임 후 차기 정부의 탈원전 폐기 전망에 대비한 출구전략이거나 대선을 앞두고 탈원전 반발 여론을 무마하려는 발언이라는 분석이 따랐다. 청와대는 말바꾸기를 한 것이 아니라 원래 장기적으로 원전을 줄여나갈 방침이었다고 주장했다. 학계와 전문가들은 원전 생태계를 망쳐놓고 터무니없는 변명과 유체이탈 화법을 쓴다고 반발했다.
 
2017년 대선 때 탈원전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한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 고리 원전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이라며 탈핵 시대로 가겠다고 천명했다. 월성 1호기를 폐쇄하고 신한울 3·4호기 등 6기의 건설을 백지화했다. 또 고리 2호기를 비롯해 2030년까지 설계수명이 끝나는 원전 10기를 차례로 폐기하기로 했다. 과학적 근거와 타당성 검증도 없이 막연한 공포를 부풀려 원전산업을 고사시키려 한다는 반대가 따랐다.
 
여러 차례 여론 조사에서 대부분 국민은 탈원전에 꾸준히 반대 의사를 밝혔다.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평가받았던 국내 원전 산업 기반은 문 정권 5년 사이에 무너져 내렸다. 월성 1호기 보수 비용과 주기기 사전 제작에 들어간 신한울 3·4호기 등 매몰 비용만 1조4000억원이 넘고 원전 산업 매출은 문 정권 취임 전 27조4500억원에서 2019년 20조7300억원으로 급감했다. 한국전력과 산하 발전자회사들은 지난해 5조2300억원에 가까운 당기 순손실을 냈다. 탄소 발생이 거의 없고 가격도 비교적 저렴한 원전 발전 비중을 줄이고 비싼 원유와 천연가스 등 발전에 의존한 결과 올해 적자는 20조원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올해 전기 요금 인상을 백지화하겠다고 공약했지만 한전 적자 폭 확대를 감안하면 동결은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윤 당선인은 탈원전 대못을 뽑겠다며 원전을 중심으로 신재생 에너지를 활용해 탄소 중립 정책을 추진,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2030년까지 원전 10기를 수출하되 소형모듈원전(SMR)개발과 수출 지원에 나서겠다고 제시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적극 나선다 해도 무너진 원전 생태계 복원이 단시일 내에 이뤄지기는 어렵다. 한국수력원자력과 민간기업 원전 건설부문은 이미 대폭 축소됐고 기술인력도 해외로 빠져나갔다. 원자력을 전공하는 학생과 연구인력이 감소해 신규 인력충원도 더딘 편이다. 생태계를 복원해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탈원전 기간 이상이 소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부동산과 탈원전은 문 정권 경제정책 가운데 대표적인 실책으로 꼽힌다. 부동산에 대해서는 문 대통령도 실정을 인정하고 국민에게 사과했다. 하지만 탈원전에 대해서는 ‘60년 동안 주력 전원’을 언급하며 말로 포장해 대충 넘어가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대표적인 탈원전 운동가로 꼽히는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 수석비서관을 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앉혔다. 원자력안전위원회 안전정책 수립을 지원하는 책임을 맡긴 것이다. 형식상 원자력안전재단 이사회가 선임하지만 사실상 정부 입김이 좌우하는 자리다. 원자력국민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문 정권이 막판까지 탈원전에 대못을 박겠다는 욕심을 드러낸 인사라고 비판했다. 원전 폐쇄를 주장해온 관계자에게 원자력과 방사선 안전을 맡긴 인사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탈원전 출구의 소용돌이에서 막판 변신을 도모하며 몸부림치는 인물도 보인다. 한수원 최고경영자로 탈원전 실무를 지휘해온 정재훈 사장은 4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지난 2월 임시주총을 소집, 본인의 1년 연임안을 통과시켰다. 탈원전에 반대해 2018년 1월 퇴진한 이관섭 사장 후임으로 그 자리를 차지한 정 사장은 사내 반대기류를 억누르고 탈원전 추진에 역량을 집중했다.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와 관련, 경제성 평가 조작 사건에 연루돼 배임과 업무방해 등 혐의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기소됐다. 탈원전 전도사로 불릴 정도로 앞장섰던 정 사장은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신한울 3·4호기 건설이 재개됐으면 좋겠다는 개인적인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 눈길을 끌었다.
 
정 사장 연임은 산업부 장관의 제청을 거쳐 대통령 재가로 최종 확정된다. 제청과 대통령 재가라는 나머지 절차가 남았지만 그가 원전 복원을 공약한 윤석열 정부에서도 한수원을 이끌겠다는 속셈이 무엇인지 궁금하다. 문 대통령의 고리 1호기 영구정지 기념사로 요란하게 시작한 탈원전이 퇴로로 쫓길수록 실체가 흐려지고 관련 인사들은 각자도생으로 자리 챙기는데 급급한 느낌을 준다. 원래 현실성이 떨어지는 정책이므로 결말도 흐릿할 것으로 예상은 했다. 원전 생태계 파괴와 한전 부실, 전기료 인상으로 국민에게 떠넘긴 무거운 부담을 생각하면 끝까지 자리 챙기고 변명하려는 인사들과 치졸한 정책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 약력
△전)국민일보 발행인 겸 대표이사
△전)한국신문협회 이사
△전)한국신문상 심사위원회 위원장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