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포스코 사내 하청 노동자의 원청 근로자 지위 인정
경총 “도급 계약 성질·특성 등 미고려한 판결…심히 유감”
금속노조 “명백한 불법 파견…사내 하청 정규직 전환해야”
업계, 바짝 긴장…전 하청 노동자 직고용 상황 직면할 수도

▲ 2016년 8월 17일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주지부가 포스코 사내 하청 노동자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 2016년 8월 17일 광주고등법원 앞에서 전국금속노동조합 광주지부가 포스코 사내 하청 노동자 정규직화를 촉구하는 기자회견.
투데이코리아=오창영 기자 | 대법원이 포스코 사내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원청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가운데 경영계가 “심히 유감스럽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반면 노동계는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 양측의 의견이 크게 엇갈리는 모습이다.

이번 판결에 따라 국내 산업계에 뿌리 내린 파견 근로자와 관련한 고용 관행에도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점쳐지는 만큼 이를 둘러싼 논란은 더욱 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한 입장문에서 “법원이 일부 공정의 도급 생산 방식을 ‘파견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을 적용해 불법 파견이라고 판단했다”며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는 도급 계약 성질과 업무 특성, 산업 생태계 변화, 국내 노동 시장의 현실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판결이다”며 “유사한 판결이 이어질 경우 국내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물론 일자리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다”고 우려했다.

앞서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이흥구 대법관)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포스코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2011년 5월 소송 제기 후 11년 만이다.

포스코 협력 업체 근로자들은 2011년 포스코가 하청업체로부터 인력을 공급받아 공장을 가동하는 상황이 제조업 사내 하도급 불법 파견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2년 이상 근무한 사내 하청 노동자의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대법원은 “원고들은 포스코로부터 검증을 받은 작업 표준서에 따라 작업을 수행하고, 포스코의 제품 생산 과정과 조업 체계는 현재 전산 관리 시스템에 의해 계획·관리되고 있다”며 “원고들에게 전달된 작업 정보는 사실상 포스코의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로 가능한 바 원고와 피고 사이에 근로자 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시했다.
 
▲ 한국경영자총협회.
▲ 한국경영자총협회.

경총은 도급 생산 방식을 불법 파견으로 보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경총은 “도급은 생산 효율화를 위해 독일, 일본 등 철강 경쟁국들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널리 활용되는 보편적 생산 방식이다”며 “특히 특정 제품 자체의 생산을 완성하는 경우뿐만 아니라 생산 공정 일부도 얼마든지 도급 계약으로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원심은 포스코와 협력 업체들의 업무가 명백히 구별되고, 협력 업체들이 근로자 선발 등 인사·노무 권한을 독자적으로 행사했다고 봤다”면서도 “그럼에도 원청의 생산 공정과 이를 지원하기 위한 협력 업체의 크레인 운전 업무 등이 연속돼 있다는 등의 사정을 들어 협력 업체 근로자들과 포스코 간에 근로자 파견 관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어 “법원은 MES(Manufacturing Execution System)를 구속력 있는 업무상 지시로 판단했으나 MES는 전산을 통해 작업 내용과 정보를 공유함으로써 작업 효율성을 높이고 안전을 강화하는 시스템일 뿐이다”며 “독일, 일본 등 해외에서도 MES를 도급 관계에서 활용했다고 불법 파견으로 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경영계와 달리 노동계는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두 손 들고 환영하고 있다.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은 “이번 판결은 포스코가 근로자 파견 대상 업무에 해당하지 않는 제조업의 직접 생산 공정 업무에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파견 근로자로서 고용하는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고 판결한 것이다”며 “대법원 확정 판결에 따라 포스코는 1만8000여 명의 모든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동안 법원은 ‘연속 흐름 공정에서의 도급은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사용자들이 파견법 위반 회피를 목적으로 협력 업체 규모를 키우고 실질적인 권한이 있는 것처럼 위장하더라도 업무의 성질을 고려하면 근로자 파견이라는 점이 바뀌지 않는다’고 강조해 왔다”며 “원청 업체 포스코의 실질적인 통제는 제철 업계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속성이기도 하다”고 꼬집었다.

민주노총도 “포스코는 그동안 차별의 대명사였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피해와 고통을 받아들이고, 이에 대한 사과와 시정, 빠른 정규직 전환으로 대법원 판결의 취지와 결과를 이행하라”고 촉구했다.

대법원이 포스코 사내 하청 노동자에 유리한 판결을 내린 것을 놓고 경영계와 노동계 간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실질적으로 영향을 받는 국내 산업계는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다. 도급 계약을 통해 생산 효율을 극대화해 온 대다수 업계가 하청 노동자들을 모두 직접 고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최근 법원은 관련 소송에서 줄곧 하청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지난해 7월에도 대법원은 현대위아의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에서 하청업체 노동자들의 원청 근로자 지위를 인정한 바 있다.

앞으로가 더욱 우려스럽다. 현대제철, 현대자동차, 기아, 한국지엠 등 다양한 기업에서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이 진행 중이나 현 추세라면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이길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 서울 포스코센터.
▲ 서울 포스코센터.

한편 포스코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을 직접 고용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따라 근로자 55명에 대해 직접 고용을 결정했다.

포스코는 관련 근로자 지위 확인 1·2차 소송 대상자 55명에게 ‘직고용 안내문’을 발송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는 이달 28일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 지 하루 만의 결정이다.

이번 결정으로 하청업체 노동자들은 일정 기간 교육을 받은 후 작업 현장에 배치될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 관계자는 “앞으로 소정의 교육을 실시하고, 적정한 직무를 배치하는 등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며 “대법원 판결 취지에 따라 후속 조치를 이행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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