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은경 작가
▲ 조은경 작가
말복, 처서가 지나니 바람의 모습이 다르다. 가을의 향기를 머금고 다가온 바람이 팔뚝에 감기면 서늘한 느낌이 신기하다. 어제까지는 끈적이고 불쾌했는데 이렇게 감미로울 수 있다니. 날씨의 변화만으로도 행복감을 느낀다.
 
지나가는 여름에 대해 이번엔 아쉬움이 덜하다. 바닷가에 세 번이나 가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두 번은 미국에서 온 딸과 손녀들과 함께였다. 아이들 덕분에 보령의 머드 축제며 동해안 경주의 ‘나정 고운모래 해변’이란 예쁜 이름의 해수욕장에도 가 볼 수 있었다.

세 번째는 대구의 지인 부부와 함께 가게 되었다. 남자 분은 어릴 때 가족과 함께 한 바닷가를 50년째 방문한다고 했다.

“형제들과 수영 내기도 했구요, 모래사장에서 달리기 경주도 벌였답니다.” 옛날을 회상하는 그의 모습엔 웃음이 가득하다. 남편분이 바다로 나간 후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시집오고 나서 매년 한 번씩 겪는 연례행사였어요. 이장 집을 빌어서 마당에 큰 솥을 걸고는 밥을 짓고 국을 끓였죠.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면서 뛰어다녔죠. 시부모님에, 형제분들이 다섯이라 아이들 합하면 스무 명이 넘었어요. 제가 막내며느리다 보니...”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한다. 옛날의 힘들었던 기억이 오롯이 되살아나서일까? 지금도 꼭 한 번씩은 바닷가에 가야 숙제를 푼 듯 좋아하는 남편 때문에 안 올수 없다고 착한 그녀는 말한다.
 
똑같은 장소, 똑같은 시간에 대해서 이렇듯 사람마다 느낌이 다르다. 당연히 추억도 다르다. 지금 시대에, SNS에 맛있는 음식점과 멋진 카페의 사진을 올리고 셀카를 뽐내는 젊은 여성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몇 십 년 전에 일상다반사로 벌어지고 있었다. 이렇듯 세월이 흘렀다. 다행히, 좋은(?) 쪽으로 발전해서 옛날 고생했던 그 어머니의 딸들은 지금 편하게 지내고 있다.
 
좋은 일일까? 아, 물론 좋은 일이다. 아무리 기울어진 운동장이니 뭐니 해도 지금의 현실이 50년 전 100년 전과 비교해서 전체적으로 나쁠 수는 없다. 하지만 옛날의 양반들이 보았을 때 지금이 과연 좋은 세상인지는 모르겠다. 태어나면서부터 당연지사처럼 그네들이 누렸던 특권을 뺏겼다고 노발대발할지도 모르겠다.
 
세상이 이렇게 달라질 동안 나는 무엇을 했는가? 생각해 본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며칠 전 서울에 갔을 때 묵은 호텔에 비치된 책을 읽고서다.

일본계 비즈니스호텔이었는데 신기하게도 호텔 안에 창업주의 저서가 비치되어 있었다. 그 책 제목처럼 그는 ‘내관’ (內觀)을 강조하고 있었다. 회사 임직원 전원이 내관원(내관을 가르치는 장소)에 가서 공부하는 시간을 가진다고 했다.

내관원에 가면 누군가 또는 무엇인가 대상을 설정한 다음,
그에게 은혜 입은 것
자신이 그 은혜에 보답한 것
그 상대에게 폐를 끼친 것을 쓰라고 한단다.

이 세 가지를 쓰기 위해서는 자신을 잠시라도 돌아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한다. 즉, 자연스레 내관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나도 그 내관에 준해서 생각해 보니까 세상이 바뀌는 동안에 덕 본 것은 많은데 그 은혜에 보답한 것이 무엇인지는 생각이 잘 안 난다. 좋은 나라 만들려는 생각을 한 것은 사실이니까 그것을 2번으로 생각하자. 그러면 나라와 사회에 폐를 끼친 것은 무엇일까? 으음—세금 잘 내고 음주 운전 안 한 것만 해도 폐를 끼치지 않았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 같아 다행이다.
 
이 세 가지의 내관은 어린이나 학생들의 교육에 아주 유용하다고 한다. 어머니에 대해서 써보라고 하면 처음에는 모두 주저하지만 키워주셔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첫머리에 쓴다는 것이다.

고맙다, 감사하다는 말을 쓸 줄 아는 것부터가 인생을 긍정적으로 보게 만든다. 그리고 매사를 긍정적으로 볼수록 행복해지기 쉽다. 조그만 것에서도 만족하니 세상은 행복해질 일 뿐이라는 거다.
 
나로 말하자면 앞서 말한 지인의 부인처럼 번성한 시댁으로 시집가지 않아서인지 그런 고생은 몰랐다. 그래도 공부만 하던 학생 신분에서 갑자기 주부가 된 탓인지 자기 살림만 하면서도 절절 맸다. 힘들어서 불만이었고 남편에게 싸움 걸 일도 많았다.

아이들을 다 결혼시키고 시골에 내려와서는 남편이 새록새록 고맙게 생각된다. 살면서 돈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골에 물려받은 땅은 팔 생각을 안 한 남편 덕분에 이 나이가 되어서 시골로 내려와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인 중에는 시골에 가고 싶어도 내려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 먼저 갔던 분들이 시골의 ‘텃세’가 무섭더라는 얘기를 많이들 하니 어찌 감히 내려갈 생각이 나겠는가. 시골에 집과 땅을 두고 도시에서 살다가 귀향한 우리도 ‘텃세’를 아니 겪었다고 말 할 수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젠 동네 사람들과도 꽤 많이 편해졌다.
아직 모르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대충 살아갈 만하다.
 
그 사이 5년이 흘렀다. 칼럼집도, 소설집도 출판했다. 시골에 내려와서 글이 더 잘 써졌느냐고 누가 물으신다면 무어라고 말할까?

시골의 흙이, 공기가, 바람이 나를 익게 해 주었다고 말할까? ‘내관’에서 얘기한대로 감사를 느끼고 보은하면서, 혹시 폐를 끼치지 않는지 반성하면서 살아간다면 어느 곳에서 살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투데이코리아’에 칼럼을 연재할 기회를 가진 것 또한 감사할 일이다. 언젠가는 보은할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동안 생각해왔던 장편소설을 준비하기 위해서 이번 호를 끝으로 칼럼을 마칠 생각이다. 독자 여러분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니 마음이 아프다.

독자 여러분, 그 동안 잘 읽어 주셔서 감사했어요.

진정으로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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