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국민 대다수가 싸고 간편하며 맛도 좋다는 이유로 주말 점심으로 주로 먹는 라면이 한국에 첫 선을 보인 지 어언 60년이 가까워졌다. 라면은 만성적인 식량난을 해결하고 서민들의 곯은 배를 채워주기 위해 등장한 서민 식품이지만 이제는 남녀노소, 부자와 빈자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민이 즐겨 찿는 대중식품이자 기호식품이 됐다. 1958년 일본에서 처음 개발됐고 국내에는 1963년에 첫선을 보였지만 이젠 김치, 김과 함께 K-푸드 대표 음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해외에서는 라면이 간식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국에서 시행된 사회적 거리두기로 한 끼 식사이자 훌륭한 비상식량으로 인식되면서 국내보다는 해외에서 인기가 폭발하고 있다.
 
특히 한국 라면은 기생충, 오징어 게임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먹는 모습이 등장하고 방탄소년단(BTS)이 매운 라면을 먹는 영상이 퍼지면서 지난 2015년 이후 7년 연속해서 역대 최대 수출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지난해 라면 수출액은 6억 7천만 달러로 전년보다 11.7% 늘었다. 원/달러 환율을 1,400원을 기준으로 하면 1조원에 육박하는 규모다. 국가별 수출액은 중국이 22.2%로 가장 크고 이어 미국, 일본, 대만,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호주, 인도네시아 등의 순이다.
 
해외여행 보편화, 다국적 음식에 대한 경험 증가로 외국 라면에 대한 관심도 높아져 수입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라면 수입액은 1천24만 달러로 전년 대비 118.8%나 급증했다.

라면을 국내에 최초로 선보인 삼양식품은 농심·팔도·오뚜기 등 주요 식품회사들이 지난달 추석 연휴를 기점으로 가격을 10% 정도씩 올렸으나 주요 제품 매출 대부분이 해외에서 발생한다는 이유로 홀로 가격을 동결해 왔으나 원가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다음 달 7일부터 불닭볶음면, 삼양라면 등 13개 라면 제품의 가격을 평균 9.7% 인상하기로 했다.
 
출출하거나 입맛이 없을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 중의 하나가 라면이다. 특히 장기간 해외여행으로 타국 음식에 질렸을 때 접하는 라면 맛은 일품이다. 라면은 기름에 튀긴 면을 봉지에 넣은 1세대 라면에서 1회용 용기에 면을 넣은 2세대, 면을 기름에 튀기지 않고 섭씨 4~26도에서 숙성시킨 3세대 라면 등으로 그동안 진화를 거듭해 왔고 쌀라면과 하얀국물 라면, 화학조미료가 들어가지 않은 웰빙 라면 등 종류와 요리법도 수십 가지에 달할 정도로 맛이 다양해졌다.
 
한국인은 일주일에 평균 1.7회 라면을 먹는다. 절대적인 라면 소비량은 인구가 많은 중국이나 일본, 인도네시아 등에 훨씬 못 미치지만 일인당 라면 소비량은 단연 세계 1위다. ‘라면 없이는 못 산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라면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불과 5분만에 빠르고 간편하게 조리해 먹을 수 있어 우리의 ‘빨리 빨리’ 문화와 딱 들어맞는데다 물만 적정하게 맞추면 맛있게 조리되고 가격도 싸기 때문일 것이다. 여기에 우리 입맛에 맞는 다양한 제품들이 개발되어 시판되고 있는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동안 괄목할 성장을 거듭해 오던 라면 산업에도 적잖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1989년에는 공업용 우지(牛脂)로 라면을 제조했다는 이유로 5개 식품회사 대표와 실무자들이 구속되는 사건이 있었다. 또 2012년에는 일부 제품의 수프에서 발암물질인 벤조피렌이 검출됐다고 해서 소비자들의 불신이 커지기도 했다. 2013년 봄에는 국내 대기업 임원이 인천을 출발해 미국 로스앤젤레스로 향하던 비행기 안에서 라면이 설익었다면서 라면을 다시 끓여오지 않는다고 승무원를 폭행하여 공항에 미 연방수사국 요원들이 출동하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이 60년대 초 어느 날 점심시간에 남대문시장 한귀퉁이에서 5원짜리 꿀꿀이죽을 사 먹으려고 수 십명의 노동자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는 비참한 광경을 목격하고 일본에서 기술을 도입, 국내 최초로 1963년 9월15일 10원짜리 치킨탕면을 선보였다. 당시 김치찌개 백반이 30원, 짜장면이 20원이었으니 딱히 비싸지 않아 보였지만 대다수가 빈곤층이었던 당시에는 상당히 고가의 먹거리였다. 그러나 70~80년대 즈음부터 경제가 성장하고 생산량이 폭증하면서 상당히 저렴한 음식이 되었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운다”, “돈을 다 써서 한 달 동안 라면만 먹고 살아야 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됐다.
 
우리나라의 라면 산업은 90년도 이후부터 후발주자인 햄버거와 피자 등 다른 패스트 푸드의 맹렬한 추격을 받고 있다. 하지만 보관 등의 편의성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이에 따라 라면은 아직까지도 주요 생필품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지켜나가고 있다. <투데이 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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