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법원 관련 자료사진.
▲ 법원 관련 자료사진.
투데이코리아=박희영 기자 | 스스로 ‘병역의 신’이라고 자칭하며 뇌전증(간질) 환자로 위장해 병역을 면제받게 도운 병역브로커 구모(47) 씨가 첫 재판에서 혐의를 모두 인정했다.
 
구 씨는 27일 오전 서울남부지법 형사9단독 조상민 판사 심리로 열린 첫 공판에서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다고 말했다. 구 씨는 2020년 2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병역 신체검사를 앞둔 의뢰인과 소통하며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병무청에 제출해 병역을 감면받게 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지난달 21일 재판에 넘겨졌다.
 
구 씨 측 변호인은 “피고인이 잘못을 깊이 뉘우치고 있고, 수사 초기부터 범행을 일체 자백했다”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그러면서 뇌전증에 대한 병역 판정 기준 등이 불명확한 상황 등도 양형에 참작해달라고 요청했다.

변호인은 “뇌전증을 호소하고, 지속해서 약물치료를 받으면 실제 환자가 아니더라도 보충역을 받거나 면제될 소지가 있다”라며 “단순히 피고인을 처벌하기보다 뇌전증 환자에 대한 객관적인 병역 판정 기준을 정립하는 게 중요하다”라고 주장했다.
 
검찰이 구 씨의 공소장에 적시한 병역면탈자는 7명이다.
 
구 씨에게 의뢰해 병역 기피를 시도한 이들 중에는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27·OK금융그룹) 씨와 아이돌 그룹 VIXX(빅스) 출신 래퍼 라비(본명 김원식)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조 씨는 브로커를 만나게 된 계기로 “집안 형편이 좋지 않아 입대 연기를 알아보는 과정서 포털사이트가 인증하는 전문가를 알게 됐다”라며 “그렇게 ‘병역 비리’라는 돌이킬 수 없는 범죄에 가담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현재 라비는 뇌전증을 앓는 것처럼 꾸며 병역 기피를 한 혐의(병역법 위반)로 입건됐다. 라비는 지난해 10월부터 사회복무요원(옛 공익근무요원)으로 대체 복무 중이다.

당시 그는 대체 복무에 대해 “건강상의 이유”라고 밝혔으나, 수사 결과 구 씨의 휴대폰에서 라비의 병역기피 관련 기록이 발견됐다. 이에 합동수사팀은 라비가 허위로 뇌전증을 앓는 것처럼 속여 병역을 감면받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이 발표한 공소사실에 따르면 군 수사관 출신인 구 씨는 서울 강남구에 사무실을 차리고, 인터넷에 병역 의무자를 위한 상담 카페를 개설했다. 이후, 과거 행정사로 일했던 경험을 토대로 발작 등을 호소하게 하는 수법으로 의뢰인의 병역 면탈을 도왔다. 구 씨는 자신을 ‘병역의 신’이라 칭하고, 인터넷 블로그에 병역 면제 판정을 받은 의뢰인의 신체검사 결과서를 찍어 올리며 홍보하기도 했다.
 
구 씨와 공모한 병역면탈자 중 한 명은 이러한 수법으로 ‘상세 불명의 뇌전증’ 진단을 받아 재검 대상인 7급 판정을 받았다. 구 씨는 그 대가로 1천만 원을 수수했다.

뇌전증은 뇌파나 MRI 검사 결과가 정상으로 나오더라도 환자가 지속해서 발작 등의 증상을 호소하면 진단받을 수 있는 질환이다.

병무청은 임상적으로 뇌전증을 진단받았으나 뇌파 검사, 방사선 검사, 핵의학 검사에서 이상이 확인되지 않은 환자는 치료 기록과 기간을 중요한 판정 기준으로 삼는다. 따라서 미확인된 경련성 질환의 경우 치료 기간이 1년 이상이면 사회복무요원(4급), 2년 이상이면 면제(5급)를 받을 수 있다.
 
구 씨의 다음 공판기일은 3월 22일 오전 10시 40분에 열린다.
 
한편,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은 지난달 초부터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을 꾸리고 수사를 벌인 뒤 지난달 구 씨를 구속기소했다.
 
현재까지 병역 기피를 시도해 수사대상에 오른 이들 중에는 연예인, 고위공직자·법조인 자녀도 포함됐으며, 총 100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전날, 또 다른 병역브로커 A(37)씨와 함께 병역면탈을 의뢰한 혐의를 받는 의사 B(30)씨, 프로게이머 코치 C(26)씨, 골프선수 D(25)씨 등 16명을 무더기로 재판에 넘겼다.
 
아울러, 이들의 가족 또는 지인 가운데 브로커와 병역면탈 계약을 체결하거나 대가 지급, 허위 목격자·보호자 행세를 통해 범행에 적극 가담한 혐의를 받는 공범 6명도 함께 기소됐다.
 
또한, 구 씨의 밑에서 부대표로 일한 또 다른 병역브로커 김모(37) 씨도 병역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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