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원전 책임 규명, 인적 청산 엄정하게
누가 봐도 영업손실이 뻔한 구도였지만 문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 없이 원전 가동을 중단하겠다는 허황한 변명에 집착했다. 임기 말 뒷감당에 겁이 난 듯 한 차례 인상했지만 한전 부실화는 이미 골병으로 깊어졌다. 지난해 집권 뒤 원가를 반영한 요금 현실화에 나선 윤석열 정부는 올 1월에 이어 6월 요금을 거푸 올렸다. 그나마 물가와 산업 전반에 미칠 부담을 고려해 전기요금을 ㎾h당 155원 선으로 조정했다. 그래도 구매가 대비 10원가량 싼 요금이다. 한전은 서울 여의도 남서울본부 건물 등 알짜 자산 매각과 10개 사옥 임대 등을 포함, 전력설비 건설 시기 조정, 인력·조직 정비 등으로 2026년까지 25조7000억원을 절감하겠다고 밝혔다.
자산 팔아치우고 씀씀이 줄여 급격한 요금 인상에 따른 따가운 눈총을 피해 보자는 계산이다. 가계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하는 공기업의 특성에 비춰 너무 많은 이익을 내는 영업전략은 곤란하지만 그렇다고 원가를 제때 반영하지 못하고 미루기를 거듭하다가 한꺼번에 대폭 올려 시장에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주는 영업은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적절한 시차를 두고 원가를 반영함으로써 가계와 기업에 미칠 충격을 분산시키고 에너지 가격 변동에 적응할 기술과 제품개발 여건을 조성해 주는 게 순리다. 한전은 그동안 탈원전 정책의 집행기관으로 나서 누적된 적자를 외면하고 정부 눈치나 살피는 무책임한 경영으로 위기를 자초했다. 물론 탈원전을 주도한 정권 핵심 인사들의 압력과 관료들의 동조가 한전 부실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한전과 한국수력원자력 등 자회사 경영진과 내부 동조자들도 책임을 모면하기 어렵다. 산업자원부 차관으로 재직하다가 2021년 한전으로 옮긴 정승일 사장이 최근 부실 경영의 책임을 지고 사표를 제출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지난 5년간 누적된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한꺼번에 몰아쳐 결국 가계와 기업에 심각한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이념에 치우친 정책과 포퓰리즘이 경제에 미칠 악영향을 여실히 보여준다. 차제에 과학적 근거도 없이 막연한 공포심을 조장해 경제 전반에 충격을 안긴 탈원전을 확실히 청산, 앞으로도 유사한 정책 실패에 따른 파국을 막아야 한다. 전기요금 인상으로 뒤치다꺼리 다 했다 볼 게 아니라 핵심 인사와 경영진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을 끝까지 따져 인적 청산과 경제적 파장 분석까지 면밀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 한전 영업손실이 감당하지 못할 지경으로 쌓이자 회사채 발행을 마구 늘려 카드돌려막기 식으로 몰아간 정권. 빚더미에 올라선 한전을 닦달해 전남 나주의 한전공대 설립에 10년간 1조6000억원을 대도록 강제한 특별법까지. 이미 부실기업으로 전락한 한전에 빚에 빚을 떠넘기고 투자 보증까지 서게 만들어 탈탈 털어냈다.
고준위 폐기물 처리 방안 서둘러야
월성 1호기의 경제성평가를 조작해 조기 폐쇄시킨 혐의로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전 한수원 사장 등이 법정에 세워졌다. 그러나 이들 외에도 김수현 전 사회수석과 문미옥 전 과학기술 보좌관 등 탈원전을 주도한 문 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이 아직 학계나 관가 주변에 건재해 있다. 또 정치권과 연구기관, 공기업 안팎에 포진한 탈원전 세력들도 만만치 않다. 이들에게도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 국정을 혼란으로 몰아간 실정을 추궁해야 한다.
원자력 학계와 전문가, 대학생들은 그동안 탈원전 반대운동을 이끌어 여론을 주도해왔다. 이제는 탈원전 정책에 따른 폐해와 경과, 매몰 비용, 국가적 손실을 통합 분석하는 보고서를 준비할 단계가 왔다. 장기 에너지 정책을 어느 방향으로 설정해 추진할 것인지 과제도 학계가 제시할 몫이다. 원전에서 나오는 고준위폐기물을 저장, 처리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정부와 학계가 나서 국민적 합의를 서둘러야 한다. 원전을 태양광, 풍력 등과 함께 친환경 에너지로 확실히 자리매김하기 위한 기술개발과 대외협력이 절실한 시점이다. 최근 정부와 기업들이 나서 재생 에너지뿐 아니라 원전과 수소 등 무탄소 에너지를 친환경에 포함시키자는 CFE 100(Carbon Free 100%)을 추진키로 한 것은 주목할 만한 움직임이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김성기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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