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올 하반기 경기가 당초 전망보다 부진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1.6%에서 1.4%로 낮추었다. 금통위는 또 올해 경기가 더 이상 나빠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연 3.5%로 3회 연속 동결했다. 금리를 올리면 다소나마 물가상승을 막을 수 있지만, 경기침체 위험을 방기할 수 없어 동결한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 경제는 중국의 경제활동 재개(리오프닝)에도 불구하고 수출 효과가 미미한 데다 반도체 업황 악화 등으로 무역수지 적자 행진이 14개월째 지속되는 등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치권에서는 정부가 대대적으로 재정을 풀어 경기부양을 위한 마중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과거 문재인 정부의 재정확장정책을 줄곧 비판해 온 윤석열 정부는 국가부채 증대를 통한 경기부양은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문 정부의 방만한 재정운영으로 국가부채가 1000조 원을 돌파하는 등 국가부채가 너무 과다한데다 지난 1분기 중 세수 펑크가 24조 원에 달할 정도로 세수가 부진하고 물가수준도 높아 대대적인 재정살포를 통한 경기부양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 사실 세금이 잘 걷혀도 올해 46조 원의 적자국채를 발행해야 할 형편인데 세수마저 부진한 마당에 경기부양을 위해 국채 발행을 확대할 경우 미래세대의 부담이 너무 과중할 것으로 우려된다. 하지만 재정살포를 강화하라는 정치권의 파상공세가 너무 강해 이를 견뎌낼 수 있을지 두고 볼 일이다,
 
물가 전망이 썩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한은이 3회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한 것은 이 같은 정부의 어려운 처지를 감안, 역할분담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물가는 상승세가 다소 꺾였다고는 하나 앞으로 전기 가스료를 비롯해 지하철 등 공공요금 인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전망이 무척 어둡다. 그래서 기준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순리이나 금리를 인상할 경우 경기 둔화를 더 가속화 하는 등 리스크가 매우 크다고 판단한 것이다.
 
올해 한국 경기는 상저하고(上低下高) 흐름을 보일 것이라는 정부의 예상과는 달리 주력 수출업종인 반도체 업황 회복이 1분기 정도 늦어질 것으로 보이는 등 하반기에도 부진을 면치 못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외 주요 경제기관들이 한국의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잇달아 낮추고 있는 이유다. 1%대 성장률은 잠재성장률에도 못미치는 수준으로, 코로나19 사태로 마이너스를 기록한 2020년의 -0.7%,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은 2009년의 0.8%를 빼고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낮다.

문제는 작금의 수출 부진이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는 것이다. 산업연구원은 수십년 간 이어진 ‘세계화’가 사실상 마무리되고 미국과 중국의 갈등으로 앞으로 교역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의 수출주도형 성장’은 끝났다고 단언했다. 또한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10년간(2013~2022년) 한국 교역 품목의 무역특화지수 변화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수출 상위 10대 품목 중 한국이 경쟁 우위인 품목은 철강 등 3개에 불과하고 반도체를 비롯해 전자기기, 기계, 자동차, 선박 등 7개 품목은 수출 경쟁력이 약화됐다고 밝혔다. 시기적으로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 교역 상대국으로는 중국과의 교역에서 무역 경쟁력 약화가 두드러졌다고 지적했다. 이젠 중국이 더 이상 우리 제품을 대량 수입해 주는 국가가 아니라 경쟁 국가로 떠오른 것이다.
 
한국은 수출 구조 특성상 과거에는 수입해서 쓰는 것이 더 유리한 이른바 수입특화 품목이 많아도 특정 품목의 수출 집중도가 높아 양호한 수출실적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젠 10대 주요 수출품목 상당수의 경쟁력이 떨어져 수입특화 품목이 늘어나면 수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18년 만에 대만에 밀리고, 올 1분기 경제성장률이 ‘잃어버린 20년’을 겪은 일본에 추월당한 근본 원인도 무너져 내리는 수출 경쟁력에서 찾을 수 있다. 이대로 가면 올해 성장률이 25년 만에 처음으로 일본에 역전된 뒤 고착화할 가능성도 높다.
 
이젠 천수답처럼 반도체 사이클 호전과 중국 리오프닝 특수를 바라며 ‘상저하고’를 기대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경쟁력 악화로 내다 팔 게 점점 줄어들고 있는 마당에 단기적 지원을 통한 수출 회복에 중점을 두는 대증요법이 효과를 발휘할 리 없다. 안이한 상황 인식에서 벗어나 특단의 대책을 세워야 한다.
 
지금은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하는 가운데 미·중 갈등과 보호무역 강화에 따른 글로벌 공급망 위험 등으로 산업이 대전환기를 맞고 있는 중이다. 이창용 한은 총재의 말처럼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초래된 ‘장기 저성장’이란 구조적인 문제를 단기적인 재정·통화정책으로 해결하려는 것은 나라를 망치는 지름길이다.
 
무엇보다도 이해 당사자 간 사회적 대타협을 통한 노동· 연금· 교육 분야의 구조 개혁이 긴요하다. 이와 함께 우리의 수출 구조를 지속 가능한 미래 신성장 산업 중심으로 과감히 바꿔나가는 한편 집중적인 투자와 지원을 통해 연구·개발과 인재양성에 적극 나서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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