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동병상련...自强과 다양한 외교전략 중요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며칠 전 ‘유럽과 아시아의 교차로(交叉路)’로 일컬어지는 코카서스 3국을 다녀왔다.

아시아와 유럽 경계인 코카서스산맥 주위에 위치한 아제르바이잔, 조지아, 아르메니아는 신과 신화, 인간들의 이야기가 풍성한 특별한 경험이었다. 동서양의 경계이자 종교적으로는 기독교와 이슬람의 경계이며, BC 6세기경 조로아스터가 배화교(拜火敎)를 창시한 발상지(아제르바이잔)이기도 한 코카서스는 동서문명의 기원이고 요람이다.

그곳은 멋진 풍광의 설산(雪山)과 초원, 호수, 주상절리(柱狀節理) 고색창연한 성당과 수도원, 선사시대 암각화(岩刻畵) 등 볼거리, 와인과 꼬냑 하차푸리(치즈가 가득한 피자빵) 등 풍성한 먹거리, 유황온천과 머드 볼케이노(mud volcano, 진흙화산) 체험 등 예상을 뛰어넘는 매력 넘치는 여행지였다.

코카서스(현지명 캅카스)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일대를 부르는 이름이다. 가운데 걸친 코카서스 산맥을 기준으로 위쪽을 북코카서스, 아래쪽을 남코카서스라고 부른다. 북코카서스는 러시아 영토다. 분쟁 소식으로 귀에 익은 체첸이 여기에 있다. 남코카서스에는 코카서스 3국이 위치해 있다.

코카서스 3국을 여행하면서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코카서스 사람들을 보며 자연스럽게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또한 초기 기독교(3세기) 신앙의 순수함과 절제를 만나볼 수 있었고, 외모는 서양인이지만, 정신은 동양에 가까운 문명을 접할 수 있었다.

코카서스 3국은 상상을 초월하는 다양하고 광활한 자연 풍광을 마주하여 마음의 평화를 찾아볼 수 있으며, 초기 '기독교, 이슬람, 페르시아, 러시아'의 문화가 공존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구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으로부터 독립한지 30년 밖에 지나지 않아 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과 화장실 문화, 서비스 정신 등 개선할 점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순수함이 묻어난다는 얘기다.

실제로 여행길에서 마주한 사람들은 이방인에게 밝은 미소를 던지며 과자와 과일 등을 아낌없이 건넸다.

어디를 가나 한국인을 알아본 초·중학교 학생들은 약속이나 한 듯 몰려와 함께 사진찍기를 요청했고, BTS 손흥민 김민재 등을 외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한국의 높아진 국격(國格)과 한류(韓流)의 위상을 피부로 느꼈다.

특히 아르메니아 현지 가이드 도나라(35) 씨는 한국에서 4년간 유학생활을 하며 서울대 국어교육과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재원으로 최고의 한국홍보 활동가로 활약 중이어서 무척 인상깊었다.

그녀는 대학 2곳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면서 4년 전 남편과 함께 김치공장을 세워 성공적으로 경영하는 한편 무역, 여행가이드 등 네가지 일을 병행하는 슈퍼우먼.

아제르바이잔은 천연가스와 석유가 나는 산유국이며, 불을 숭배하는 종교인 조로아스터교(拜火敎·배화교)의 발상지.

​세계 최초로 석유를 상업 생산한 곳이기 때문에 노벨상을 만든 알프레드 노벨이 이 나라에서 유전개발을 시작하여 재벌이 됐다는 재미난 스토리도 있다. 3국 중 국토가 가장 넓고 인구도 가장 많으며, 1인당 GDP 8,000달러로 상대적으로 부유한 편이다.

조지아(그루지아)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의 코카서스 지역에 위치해 있는 나라로 북쪽으로는 러시아, 동쪽에는 아제르바이잔, 남쪽으로는 아르메니아 및 튀르키예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3국 중 가장 풍부한 역사와 문화를 제공한다.

특히 광활하고 청정한 풍경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3국 가운데 으뜸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만년설(萬年雪) 아래 천혜의 자연경관이 살아 숨쉬는 남코카서스 지역의 조지아는 엄청난 매력을 갖고 있는 나라.

뭣보다 식료품과, 대중교통, 문화생활비 등이 한국보다 저렴하기 때문에 가성비 좋은 여행지, 힐링 체류지(1인 한달살이에 평균 한화 150만원선)로 각광받고 있다.

조지아는 8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와인의 나라’답게 전통적으로 기쁜 날은 26잔, 슬픈 날은 18잔을 마시는 걸로 유명하다. 실제 와인의 발상지인 카헤티 지방의 하레바 와이너리(Khareba Winery)를 방문해 직접 시음을 하고 포도주 2병을 샀다.

조지아에서 가장 큰 와이너리로 1500ha(450만평) 규모의 포도밭에서 조지아 토착품종과 유럽품종을 재배하며, 유럽방식(오크통)과 조지아 전통 양조법인 크베브리(황토 항아리)방식으로 와인을 생산한다. 코카서스 산맥을 뚫어 15개 터널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총연장 8㎞. 연간 생산량 2만 6000병, 600만 리터를 보관하고 있으며, 25개 국에 수출하고 있다.

푸시킨, 톨스토이, 막심 고리키 등 러시아의 대문호들이 매혹되어 사랑하고 문학예술의 혼을 키웠던 역사 현장인 조지아.

3000년의 역사를 지닌 고도(故都) 므츠헤타는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에 등재된 유서깊은 곳으로 유명하다.

이 도시의 중심에는 ‘생명을 주는 기둥’이라는 조지아 정교회 총본산이자 예수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처형됐을 때 입고 있던 성의(聖衣)가 보관되어 있다는 스베티츠호벨리 성당이 있다.

조지아는 326년부터 기독교를 국교로 채택했으며 예수의 12 사도 중 다섯 분이 포교활동을 한 종교적으로 축복받은 땅이다.

14세기에 세워진 복음 성지 삼위일체 게르게티즈민다 사메바교회는 해발 2170m 산 중턱에 세워져 있는 카즈벡의 정수(精髓). 조지아의 카즈베기산은 스위스 융프라우를 연상케 한다.

카즈베기는 5,000m가 넘는 코카서스 지붕으로 만년설의 웅장함과 장엄함이 우리를 압도하여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 전설이 깃든 곳이다.

코카서스 영산들은 조지아 역사문명의 요람이고 정신적 고향이다. 웅장한 대자연의 비경 속에 조지아는 종교와 신화가 공존하고 있는 나라이다.

아르메니아는 디아스포라(diaspora, 離散·이산. 헤어져 흩어짐)의 역사를 간직한 최초의 기독교 국가로 유명하다. 로마 기독교보다 먼저 서기 301년 세계에서 처음으로 기독교를 국교로 정했다.

BC1세기 건축된 가르니 신전, ‘돌들의 교향악’이라 불리는 아짜트계곡의 직경 수십cm, 길이 수십m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상절리(柱狀節理), 세계에서 제일 먼저 생긴 에치미아진 성마더 대성당, 코카서스에서 가장 큰 ‘내륙의 바다‘ 세반호수, 그 뿐만 아니라 민족의 성산(聖山) 아라랏산(5,137m)을 만나볼 수 있다.

아르메니아는 브랜디(와인을 증류해 만든 술. 프랑스 외 지역에서 꼬냑<cognac>이란 명칭을 유일하게 허용)가 이름났다.

노아의 방주(方舟)가 걸렸다는 아라랏산은 튀르키예에서 가장 높은 산(한때 아르메니아 땅)으로, 아르메니아 국경에서 16km 떨어진 국경지대에 위치한 활화산으로 아르메니아인들의 영산(靈山)이다.

코카서스 3국은 다 합쳐봐야 면적은 18만 6,000㎢로 한반도(22만 3,658㎢)의 88%, 인구는 1,717만명으로 대한민국(5,174만명)의 33%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들 세 나라가 갖는 지정학적·지경학적 중요성과 역사 문화 종교적 함의(含意)는 실로 엄청나다.

뭣보다 강대국에 둘러싸여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병탄(倂呑)에 시달리며 디아스포라의 아픔을 겪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동병상련(同病相憐)의 감정을 느끼게 한다. 더욱이 여전히 강대국의 등쌀과 영토분쟁이 현재도 진행중임에랴.

그럼에도 이들은 민족·국가·종교·문화적 자부심과 정체성을 잃지 않고 꿋꿋하게 낙천적인 삶을 살고 있어 경탄을 자아내게 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이오시프 스탈린(1878~1953)과의 만남이다.

스탈린이 누구인가.

우리 민족에게 세 차례나 참혹한 피해를 준 장본인, 불구대천(不俱戴天)의 원수가 아니던가!

1937년 일본의 간첩행위가 극동지방에 침투하는 것을 저지하겠다는 명목으로 갑작스럽게 연해주(沿海州, 시베리아 동해의 연안에 있는 지방)에 살던 한인동포(고려인) 17만명을 6,000㎞ 떨어진 머나먼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켰다. 그 와중에 2,500명의 한인을 학살했고 많은 이들이 굶어죽거나 얼어죽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에 버금가는 ‘한민족 디아스포라‘였다.

1945년 2월 크림반도 얄타(Yalta)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국 수뇌부 3인 정상회담에서 한반도에서 미·소 양군이 주둔하게 되는 분단(分斷)의 단초(端初)를 마련하고 같은 해 9월 북한을 점령하고 있던 소련군에게 “38선 이북에 공산정권을 수립하라!”고 결정적인 지령을 내렸다.

1950년 북한 김일성에게 지령을 내려 남한을 기습 남침케 함으로써 민족상잔(民族相殘)의 6.25전쟁을 일으키도록 사주한 원흉이 바로 스탈린이다.

조지아 고리 출신인 스탈린은 신학교를 중퇴하고 공산당에 입당, 특유의 권모술수와 끈질긴 집념으로 마침내 라이벌 트로츠키를 제치고 레닌의 뒤를 이어 소련 최고권력자 자리에 올라 30년간 철권통치를 한다.

고리시 스탈린 생가를 개조해 만든 박물관과 전용열차를 찾았을 때 우리 민족과 얽힌 악연(惡緣)에 자신도 모르게 분노와 함께 몸서리가 났다. 만약 두뇌가 명석한 그가 신학교를 졸업하고 사제가 됐거나, 일찍이 드러난 문학적 재능이 빛을 발해 작가의 길을 걸었다면 세계사는 물론 우리 민족의 역사와 운명도 달라졌을 것이다.

의심 많은 뒤끝의 끝판왕인 스탈린은 조지아 고향 사람은 물론 소련연방과 세계 여러나라 사람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수탈하고 탄압·학살한 ’세기의 도살자‘가 됐으니 말이다.

코카서스 3국의 정치·경제, 종교 등 교직(交織)은 실로 복잡다기(複雜多岐)하다.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기독교 국가(정교회)인 반면,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시아파)이다. 정치적으로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은 반(反)러시아이고, 아르메니아는 친(親)러시아다. 아제르바이잔은 튀르키예와 이란이 뒷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중국이 이들 지역에 에너지, 농산물, 도로망 건설 등에 구매 및 투자 등 보폭을 넓히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러시아의 징집령을 피해 조국을 탈출한 러시아 청년들이 조지아 30만명을 비롯해 코카서스 3국에 퍼져있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조지아는 친미 친나토(NATO)노선을 추구하다 2008년 러시아의 침공을 받아 개전 4일 만에 백기를 들고 국토 3,900㎢를 잃었다. (남오세티야 독립) 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푸틴은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략하면서 “일주일 안에 우크라이나를 무릎꿇리겠다”고 큰소리쳤으나, 우크라이나인들의 끈질긴 투쟁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리더십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채 1년 4개월째 공방을 벌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는 3년 전 영토를 둘러싸고 전쟁을 치른 바 있고, 조지아와 아제르바이잔도 국토문제가 미해결 상태다.

그래서 이들 코카서스3국은 세계적인 화약고(火藥庫)로 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린지 오래이다.

코카서스(캅카스)는 세계 경영에 나선 제국(帝國)들의 영향력이 겹치는 지정학적 단층이다. 몽골, 페르시아, 오스만, 러시아 등 열강들이 대상(隊商, 카라반)들의 교역로인 이 땅을 어지럽게 휘젓고 다녔다. 코카서스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지정학적 요충지(要衝地)이기 때문이다.

근대 초부터 이 지역은 위로 러시아 제국, 아래로 오스만 제국(현재의 튀르키예 일대), 페르시아 제국(현재의 이란 일대)이 교차하는 단층선이었다. 19세기부터는 영국이 러시아를 견제하기 위해 이 지역에 발을 들인다.

유라시아 지도를 보면, 코카서스와 한반도는 육상제국과 해양제국이 충돌하는 단층선에 있는 두 육교(陸橋)처럼 보인다. 한반도와 코카서스가 판박이 같다는 얘기다.

아르메니아 집단학살은 튀르키예의 전신인 오스만제국이 1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1915~1917년 자국에서 아르메니아인 150만명을 학살한 사건이다.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유대인 홀로코스트에 준하는 비극적인 역사다.

튀르크 동부지방에 살던 코카서스 출신 기독교도 아르메니아인들이 러시아의 독려를 받아 지역 자치를 추진하며 튀르크에 대항해 러시아군을 돕기 위한 의용군을 편성한 게 빌미가 됐다. 이에 튀르크 정부는 175만명의 아르메니아인을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로 추방(강제이주) 명령을 내렸고, 이 과정에서 참혹한 학살극이 빚어졌다.

20세기 최초의 집단학살로 인해 프랑스 독일 미국 러시아 이탈리아 등 107개 국으로 뿔뿔이 흩어진 아르메니아 후손은 1000만명에 달한다. 현재 아르메니아 거주 인구가 300만명이니 재외동포가 3.3배 많은 셈이다.

이들은 선조의 고통과 애환을 예술작품으로 승화시켜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려 했다. 이를 다룬 영화만도 20여편에 이른다.

아르메니아 출신 미국의 억만장자 커크 코커리언(1917~2015)이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100주년 추모를 위해 작심하고 제작비를 전담한 영화 ‘더 프로미스(The Promise, 2016년 작)’가 백미(白眉)다.

아무리 말살하려 해도 억새풀처럼 질기게 버티며 세계에 뿌리내린 아르메니아인들의 생명력을 잘 그려냈다는 중평이다.

실제 이번 여행에서 아르메니아 수도 예레반에 있는 ‘아르메니아 대학살 추모기념관’을 찾았을 때, 많은 시민들이 ‘꺼지지 않는 불꽃’ 앞에 꽃을 바치며 기도와 묵념을 하는 모습에서 굳센 다짐과 숙연함을 느낄 수 있었다.

아제르바이잔의 비애(悲哀)도 이에 못지 않다.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코카서스 산맥 기슭의 아제르바이잔은 인근 조지아, 아르메니아와 함께 19세기 초 러시아 제국에 편입됐다. 혁명 혼란기에 잠시 독립했지만 1922년 소비에트 연방에 강제 병합돼 ‘소비에트사회주의 자치공화국’이 됐다. 기원전 스키타이 유목민들의 침탈에서부터 페르시아, 알렉산더의 마케도니아, 로마, 셀주크 투르크(튀르크), 몽골, 오스만 제국, 영국 등 서구 열강의 개입으로 이어지는 쉼 없는 침탈과 기독교-이슬람교의 강제적 개종 등 수난의 끝이 그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아제르바이잔인들은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에 맞먹는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 했고, 가장 결정적인 게 19세기 러시아제국 편입 직후 이란 북부 고원지대에 퍼져 살던,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던 이들과의 민족 분단이었다. 이후 ‘남아제르바이잔’이라 불리게 된 이란의 아제르바이잔인은 본국의 680만 명보다 많은 800만 명에 달했다(1989년 기준).

남과 북은 긴 분단과 이산의 시름을 겪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1991년 10월 독립했고, 12월 31일을 ‘아제르바이잔 국제 연대의 날’로 선포했다.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시작되는 12월 31일과 신정 연휴는 전 세계 아제르바이잔 인들이 마음으로 만나는 날이다. 아제르바이잔 ‘디아스포라 국가위원회’ 통계에 따르면, 세계 70여 개국에 흩어져 사는 아제르바이잔 이산 인구는 근년 총인구(약 1,040만 명)의 5배에 달하는 약 5,000만 명. 가장 많은 게 이란이고, 국경을 접한 튀르키예와 러시아에도 200만~300만 명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아무튼 다국가, 다민족, 다문화 사회의 코카서스 3국은 무수한 외세들의 침략, 정복, 지배역사를 겪으면서 오늘에 이르렀다. 끊임없는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생존을 위한 유랑과 탈출의 애절하고 비극적인 디아스포라를 겪으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으로 그들은 꿋꿋하게 살아남아 독립을 쟁취해 오늘을 살아가고 있었다. 우리나라도 4대 강국의 틈바구니에서 분단을 극복하고, 한민족의 디아스포라를 청산해 새로운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가기를 염원해본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는 격언처럼, 국민들의 굳센 의지와 국제연대에 기초한 자강(自强)의 단합된 실력을 토대로 유연한 외교력을 발휘하는 것이 우리의 생존전략의 밑거름임을 절감한 코카서스3국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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