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감이 커지면서 천일염이 품귀현상을 빚는 등 소금 대란이 전개되고 있다. 전국 마트에서는 ‘소금 1인당 1개 한정’이라는 안내문이 매대에 붙어 있는데도 개장 후 채 30분도 되기 전에 동이 나는 등 연일 품절사태가 빚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20kg 천일염 가격이 한 달 전에 비해 2배 이상 폭등하는가 하면 대기업을 사칭, 싼값에 소금을 판다고 속인 뒤 입금액을 편취하는 사기 사건까지 발생했다.
 
소금 대란이 일고 있는 것은 최근 몇 년간 풍력이나 태양광 발전소로 전환한 염전이 증가, 생산면적 자체가 감소한데다 지난 4월과 5월 비가 온 날이 유난히 많아 생산량이 줄어들었고 설상가상으로 오염수 방류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사재기까지 벌어져 공급량이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사람 몸은 70%가 물, 다시 말해 소금물로 되어 있다. 피, 눈물, 침, 땀, 위액, 림프액, 뇌척수액, 안구액, 소변, 대변, 양수에 이르기까지 모든 액체가 소금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은 소금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병원에 입원하자마자 기력회복을 위해 정맥에 꽂아주는 링거도 인체의 체액과 동일한 농도로 만든 0.9%의 식염수이다. 또한 우리 몸이 일산화탄소에 노출되면 산소 부족 현상이 나타나지만 몸 속에 소금이 충분하면 일산화탄소를 흡착해 산소 운반효능이 높아진다. 연탄가스를 마시면 김치나 동치미 국물을 먹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소금은 식품이면서도 이처럼 의약품이나 다름없다. 소화, 해독, 염장, 소염, 방부, 노폐물 제거 등에 폭넓게 쓰인다. 의서를 보면 치통, 피부염이나 궤양, 눈병, 독충에 물린 경우, 대소변을 원활하게 보지 못할 때 등에 사용됐다. 세계문명 발상지 중의 하나인 고대 근동에서는 산모가 아기를 낳으면 신생아의 몸을 병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소금으로 문질렀다. 특히 고대 이집트에서는 미이라를 만들 때 시체를 소금물에 담아서 썩지 않게 했다. 우리 민족은 아이가 밤에 잠을 자면서 이불에 오줌을 누면 키를 뒤집어쓰고 옆집에서 소금을 얻어오게 했다. 소금으로 귀신을 물리친다는 주술적인 면도 있지만 소금으로 콩팥이 건강해지기를 기원하는 측면이 있었다.

20세기 이전만 하더라도 소금은 ‘하얀 황금’으로 일컬어졌다. 그만큼 무척 귀중한 자원이었다. 그래서 소금 전쟁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중국 이집트 페르시아 등 고대 국가에서는 소금이 상품을 교환하고 노예를 사는 화폐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에서는 군인이나 관리의 봉급을 소금으로 줬다. 그래서 월급을 뜻하는 영어 샐러리(salary)가 소금(salt)과 어원이 같다. 채소를 소금에 절이는 '샐러드(salad)'도 salt에서 유래됐고 사랑에 취하면 채소를 소금에 절인 것처럼 흐물흐물해진다고 해서 사랑에 빠진 상태를 ‘salax’라고 불렀다. 고구려에서도 노동의 삯을 소금으로 지급하고, 소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다.
 
기원전 8세기 경만 해도 로마는 테베레 강 언덕에 세운 조그만 도시국가에 불과했다. 하지만 로마가 소금 유통의 중심지가 되면서 대제국으로 발전했다. 소금 수요는 대륙은 물론 대양을 가로지르는 수많은 무역로, 다시 말해 소금로를 개설시켰다. 이로 인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나왔다.

일본 정부는 알프스(ALPS)라고 부르는 방사능 물질 제거 설비에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를 통과시키면 세슘과 스트론튬, 플루토늄 같은 방사성 물질들이 다 걸러지고 다만 삼중수소만 남는다고 강조한다. 또 삼중수소는 방류구에서 2~3㎞만 떨어져도 빗물에 섞여 있는 수준으로 농도가 낮아진다고 설명한다. 자연계에도 존재하는 삼중수소는 발암이나 기형 등의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방사능 물질이긴 하나 농도에 따라 피폭량이 달라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위험도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천일염을 만드는 과정에서 물을 증발시키면 삼중수소도 같이 증발하기 때문에 천일염에는 삼중수소가 남아 있을 수 없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다. 그런데도 소금사재기 현상이 기승을 부린다. 과학마저도 통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이를 국민 탓으로 돌려서는 안된다. 후쿠시마 앞바다에서 기준치의 180배에 달하는 ‘세슘 우럭’이 발견됐다는 최근의 일본 언론 보도에 접한 소비자들로서는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금으로서는 본격적인 방류가 시작될 경우 소금은 물론이고 생선과 횟감 등 수산물 소비 중단 사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높다. 
 
소금사재기 현상을 괴담이나 과도한 불안감 탓으로 치부하기에 앞서 정부는 오염수와 관련된 객관적인 정보를 국민에게 얼마나 제공했는지 살펴봐야 한다. 정확한 정보를 접하기가 어려워 무엇이 진실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불안 심리를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오염수의 안전성을 확실하게 입증해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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