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길을 걸으면서 이웃들을 유심이 바라보노라면 그늘진 얼굴들을 쉽게 만난다. 지친 표정이 역력하다. 삶이 몹시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
 
같은 서울에서도 지역별로 차이가 있을 것이다. 힘겹게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서민층 거주 지역은 더할 것이다.
 
자신이 무능했건 잘못했건, 부모를 잘못 만났건, 아니면 사회나 국가 공동체가 제대로 보듬어 주질 못해서였건 간에 힘들게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이 많다.
 
최근 그리스 총선에서 포퓰리즘 대신 경제를 선택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반면 중남미에선 좌파 포퓰리즘이 다시 거세어져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 – 중남미 좌파 집권)가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도 전해진다.
 
그리스의 선택, 중남미의 좌파 득세를 보면서 우리 서민들의 힘겨워 보이는 표정이 오버 랩 되는 건 포퓰리즘의 토양이 우리에게도 뿌리 깊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리스의 탈(脫) 포퓰리즘
 
힘 겨운 생계에 도움을 주겠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겠는가. 그리고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국가 장래는 아랑곳하지 않는 정치인들에게 포퓰리즘은 달콤한 유혹 자체이리라.
 
정도 차이만 다소 있을 뿐 여당 야당이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그리스 국민들의 선택을 주목하는 것이다.
 
40여 년 전 집권한 그리스의 파판드레우 좌파 정권은 ‘국민이 원하는 것은 다 주라’며 최저임금과 연금 지급액을 크게 올렸다. 철밥통 공무원 수도 두배나 늘렸다.
 
포퓰리즘 중독증을 가져왔다. 재정이 파탄나도 포퓰리즘에 맛을 들인 국민, 이를 미끼로 집권한 정치세력 간의 연대로 그리스는 ‘유럽의 문제아’ ‘유럽의 병자’ 취급을 받았다.
 
2010년 국가부도 사태에 몰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았고, 유로 존 퇴출 위기까지 몰렸던 그리스는 2019년 정권이 좌파에서 중도 우파로 넘어갔다.
 
기업 감세, 외국인 투자 유치, 의료개혁, 공기업 민영화 등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그리스는 벼랑 끝에서 탈출한다. 이번 총선에서도 그런 성과를 반영하여 국민들은 야당의 포퓰리즘 공세에 표를 주지 않았다. 비싼 댓가를 치른 뒤였다.
 
유럽에서 좌파 포퓰리즘의 쇠퇴가 두드러진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남유럽의 포르투갈 이탈리아 스페인도 좌파 포퓰리즘의 홍역을 호되게 치른 뒤이다.
 
‘유럽의 돼지’(PIGS –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라고 놀림 받던 이들 나라가 좌파 포퓰리즘에서 친시장 기조의 우파 경제정책 기조로 선회하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우파 정권으로 바뀌거나 정책 노선이 크게 바뀌는 양상이다. 좌파 포퓰리즘으로부터의 반성이다.
 
중남미의 핑크 타이드
 
그러나 중남미는 반대다. 2018년 멕시코를 시작으로 브라질 콜롬비아 등에 다시 좌파 연쇄 집권(핑크 타이드) 물결이 일고 있다.

국가 재정이야 거덜 나든 말든 선심 인기 정책을 펴는 좌파 정권의 특성이 나타난다.
 
오랜 좌파 정권이 나라를 이끌어 온 니카라과에선 최근 3년간 전체 인구의 17%가 나라를 떠났다. 물가가 3000% 폭등한 베네수엘라는 5년간 인구가 20% 이상 감소했다. 볼리비아는 사실상 국가 부도사태다. 극심한 인플레에 시달리는 아르헨티나에선 ‘오늘이 가장 싸다’는 말이 일상어다.
 
이들 중남미 국가에서 보이는 경제 파탄은 브레이크 없는 무상복지 포퓰리즘이 국가를 어디로 몰고 가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포퓰리즘의 확산을 연구해온 학자들은 ‘신자유주의 경제 모델에 대한 반발에서 핑크 타이드가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빈곤 감축, 청렴, 분배, 기득권에 대한 반발 등 공통된 상징을 내세워 포퓰리즘 정책을 펴는 것이 좌파의 공통점이라고 분석한다.
 
포퓰리즘 정책에 허점과 부작용이 많고 성공적이지 못한다 해도 전세계적으로 힘을 얻는 것은 현실이다. 그 주장이 허황됨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소외된 계층이 환호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이 대목에서 우리도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
 
좌파 포퓰리즘과 대한민국의 선택
 
포퓰리즘의 득세는 ‘지배적인 정치이념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리가필요하다는 신호’라는 것이다. 그동안 대세를 이루었던 세계적 표준이 고장났다는 증거로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지역적으로 좌파 포퓰리즘이 쇠퇴하기도 하고, 혹은 부활하는 현상이 앞으로 얼마나 지속될지, 어떤 양상으로 전개될지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이 거대한 물결 앞에서 대한민국은 어디로 갈 것인지가 중차대한 과제다. 국민적 각성이 필요할 것이고, 정권 잡는 데만 몰두하는 정치 세력들의 반성이 절실한 실정이다.
 
일부 유럽 국가와 중남미 국가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포퓰리즘을 엄중 경계할 것인지, 아니면 우리도 수렁에 빠져보고 나서 반성할 것인지는 이 시대 우리 국민의 판단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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