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자식 잃은 슬픔을 앞에 두고 ‘원망과 저주’는 없었다. 대신 모든 이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리고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경북 예천 호우 피해 현장에서 실종자 수색 작업 중 급류에 휩쓸려 순직한 고(故) 채수근 상병의 부모가 쓴 자필 편지다.

하나 뿐인 자식 잃은 슬픔을 안고 써 내려간 편지는 읽는 이를 더 슬프게 한다.
 
이 편지는 지난 22일 해병대 제1사단에서 엄수된 채 상병 영결식에서 고모가 대신 읽었다.
 
부대가, 국가가 잘못해 어이없이 숨져간 아들의 영결식에서 그들의 잘못을 탓하기보다, 자식 잃은 슬픔을 이처럼 고귀한 자세로 승화할 수 있음에 고개를 숙여 명복을 비는 일 말고는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채 상병 부모는 편지에서 ‘전 국민의 관심과 위로 덕분에 장례를 잘 치를 수있었다’며 국민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조전과 조문으로 위로해준 대통령 국문총리 조문객들에게 ‘먼 거리 마다 않고 찾아오셔서 진심어린 격려 해주셨다’면서 ‘저희 유가족들을 다독여 주신 귀한 말씀들을 기억하며 어떻게든 힘을 내서 살아가 보겠다’고 했다.
 
원망보다는 감사를,당부를
 
보훈당국에는 ‘신속하게 보국훈장을 추서해 주셔서 수근이가 국가유공자로서 국립묘지에 안장될 수 있었다’고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쩌면 가장 원망스러웠을 해병대에는 ‘다시는 이런 비통한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해달라’고 했다.

‘해병대 가족의 일원으로서 해병대를 응원하며 해병대가 더욱 발전해 나가는 모습을 항상 지켜보겠다’고도 했다.
 
아들이 그토록 사랑했던 해병대에 대한 부모의 애절함이 묻어난다.

고모가 이 편지를 대신 읽어 내려가는 동안 채 상병의 어머니는 영정 사진을 부여잡고 오열하다 쓰러져 119구급대의 치료를 받았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 편지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리며 “제가 빈소에 갔을 때 영정 속 채 상병은 젊고 충직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며 “이런 부모님이 키우셨으니 그렇게 반듯하게 자랐구나”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에 주는 메시지
 
2010년 연평도 포격전에서 순직한 문광욱 해병대 일병의 아버지 문영조씨는 사고 이듬해 여름 연평부대를 방문했다. 무거운 수박을 들고서.

아들 동료들이 울음을 터뜨리며 죄송하다고 위로했지만 문씨는 “너희들은 잘 싸웠다. 광욱이 대신 연평도를 잘 지켜라”고 다독였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선 죽음을 놓고 정쟁(政爭)화하는 일이 적지 않이 일어난다.
 
죽음에 대한 애도와 위로에는 한이 없겠으나, 여기에 다른 의도가 끼어든다면 눈살 찌뿌릴 일이다.
 
유가족들의 슬픔을 달래는 차원을 넘어서는 행위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선 자제해야 마땅하다.
 
그래서 이번 채 상병 부모님들의 편지는 더 절절하다.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이기도 하고 교훈으로 받아들여 지기도 한다.

(이 글이 만에 하나라도 채상병 부모님의 충정에 누가 되지 않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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