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 널린 부실 연결고리로 몰려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전관예우(前官禮遇)란 고위 공직을 지낸 사람에게 퇴임 후에도 재임 때와 비슷하게 예우를 베푸는 일을 말한다. 의전상의 배려와 함께 품위유지를 위한 지원 등을 포함한다. 예우를 베풀 정도라면 보통 장관급 이상 공직에 해당하겠지만 나라의 원로와 명망가를 위한다는 본래 취지는 시대에 따라 많이 달라졌다. 세태가 혼탁해지면서 예우를 빌미로 비정상적인 거래가 끼어들고 이를 이용하려는 법조계나 경제계 등의 손길이 바빠졌다. 특히 판·검사를 지낸 전관 변호사들이 거액의 수임료를 받고 재임 당시 일했던 법원이나 검찰청 관련 사건을 쓸어가는 현상까지 벌어져 이를 막기 위한 변호사법 개정이 이뤄질 정도였다.
 
경제계는 정부를 상대로 영향력을 미치기 위해 오래전부터 고위직 출신 공무원들을 영입해왔다. 영입 경쟁이 벌어져 장관급 이상 퇴임 공직자가 부족해지자 영입 대상 ‘고위 공직’의 범위가 크게 달라졌다. 차관, 차관보급은 물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에서 주요보직을 맡았던 퇴직 공무원들을 모셔갔다. 정부를 상대할 통로가 필요한 대기업들은 물론 공기업과 민간중견기업까지 공직 출신을 기용해 사업영역을 키워나가기 시작했다. 공무원을 포함한 공공영역에서 민간업체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급증하자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의 재취업 심사를 통해 공공기관 퇴직자가 퇴직일로부터 3년 이내 다시 취업할 경우 적정성을 따지도록 했다. 하지만 이마저 형식적인 심사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쯤 되면 품위를 내세운 ‘전관예우’에서 ‘예우’라는 말은 슬그머니 사라지게 된다. 고위 공직 출신을 예우한다는 취지는 퇴색하고 공공기관 출신 퇴직자를 지목하는 전관만 남는다. 관련 기업에 재취업한 전관이 현직들과의 연결고리가 돼 감사 감독과 계약 수주 등 주요 업무를 처리하고 공생하는 관계가 이뤄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무량판 공법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 공사에서 하중을 받쳐줄 철근(전단보강근)을 누락한 단지가 속속 드러나 이른바 ‘순살 아파트’ 사태가 번졌다. LH 아파트의 설계·시공·감리 단계에서 모두 철근 누락이 있었으며 부실 공사의 연결고리로 LH 출신 전관들이 지목됐다. 국토교통부는 퇴직 후 설계사무소나 감리회사에 재취업한 전관들이 나서 부실한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발표했다. 이권 챙기기가 전관의 역할이었다는 설명이다.
 
LH는 전관을 동원한 이권 카르텔을 근절하기 위해 전관 업체와 체결한 648억원 규모의 기존 용역계약을 취소했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나아가 앞으로 전관이 근무하는 업체와의 용역계약을 전면 중단하고 이권 카르텔 혁파방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검찰은 LH와 조달청이 발주한 감리 입찰에서 수천억원 대의 담합이 이뤄진 정황을 잡고 11개 건축사무소 등을 대상으로 수사에 착수했다. 경찰과 공정거래위원회도 각각 철근 누락에 대한 수사와 하도급법 위반 혐의 등 조사에 나섰다. 부실 공사를 모두 전관 탓으로 보고 수사를 집중하는 모습이다.
 
국토부 전관 역할도 짚어 봐야
 
그러나 지금까지 확실히 드러난 전관의 책임은 LH가 발주한 공사 가운데 용역업체와 관련된 연결부위라는 한정된 영역일 뿐이다. LH라는 특정 공기업의 구조적인 문제와 심각한 내부 갈등, 잘못된 관행 등이 얽혀 부적절한 현직-전관 관계가 고착된 것으로 보인다.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를 합쳐 2009년 LH가 출범했지만 인사·조직 등 내부 관리에서 갈등이 상존했고 현장 인력 부족과 운용의 한계로 설계나 감리상 오류를 잡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 많다. 2021년 직원들의 땅 투기 사건 이후에도 조직혁신과 책임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내부에 무사안일과 패배주의가 만연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 커뮤니티에는 “현직 인사를 퇴직자들이 좌우할 정도”라는 글이 올라와 자포자기하는 분위기를 전했다. 전관 업체를 설계 감리에서 제외하겠다지만 막상 이들을 빼고 나면 용역을 맡길 만한 수준의 업체가 드물다는 현실적인 지적도 나온다. 일부 업체는 전관을 형식상 퇴사시키거나 자회사로 발령해 전관 배제를 빠져나가려는 꼼수를 동원한다고 한다.
 
전관을 배제한다 해도 충격 효과는 잠시에 그치고 갑을관계가 여전한 업계 특성상 다른 연결고리가 재빠르게 등장할 공산이 크다. 용역업체 선정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는 경쟁이 장외에서 다른 비리를 양산할 우려도 없지 않다. 그동안 전관 비중이 컸던 이유는 용역업체선정 절차 등 LH 내부 의사결정 시스템이 부실했거나 외부 입김이 작용할 여지가 컸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원 장관이 지적한 대로 LH 내부의 혹독한 구조조정은 물론 감독 책임이 있는 국토부 공직에 대한 대대적인 점검이 요구되는 이유다. 공기업이 이토록 맥없이 무너진 데에는 내부 한계와 무능에 못지않게 주무부처인 국토부의 관리감독 책임이 매우 크다. 국토부 전관과 현직의 역할도 지나칠 수 없는 민감한 부분이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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