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세계 건설 강국’임을 자부하는 대한민국에서 ‘철근 다량 함유’라는 낯뜨거운 주택 분양 광고가 등장했다. 아파트를 지을 때 철근이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기본 중의 기본인데도 철근을 넣지 않거나 적게 넣은 단지가 도처에 널려있는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런 광고가 새로 선보인 것이다.
 
인천 검단 아파트 지하주차장 붕괴에 이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아파트 단지 15곳의 지하주차장에서 철근 누락이 발견되면서 대들보 없이 기둥만으로 하중을 지탱하는 무량판 구조에 대한 공포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2010년대 이후 지어진 상당수의 아파트 주거동이 무량판 구조와 벽식 구조가 혼합된 공법으로 지어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공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층간 소음이 적다는 이유로 인기인 무량판 구조에서는 보가 없기 때문에 기둥에 보강 철근이 반드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도 이를 빼먹은 현장이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으니 아찔하기만 하다. 아파트 주차장에 철근이 빠진 이른바 '순살 아파트'가 등장한 것은 설계부터 시공, 감리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부실했기 때문이다.
 
지하주차장에 무량판 구조를 적용한 LH 발주 아파트 91개 단지 가운데 보강 철근을 누락한 15곳 중 10곳은 철근을 설계 단계부터 빠뜨렸고, 5곳은 시공 과정에서 누락했다. 설사 설계와 시공에 하자가 있다 하더라도 감리를 제대로 하면 사전 적발이 가능하다. 하지만 감리 기능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감리 기능이 작동하지 않은 것은 LH 퇴직자들이 재취업한 '전관 특혜'가 그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LH는 2년 전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조직 해체 수준의 혁신’을 다짐했다. 하지만 공염불에 그쳤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일 것으로 생각된다. LH는 지하주차장의 철근 누락 사실이 발표된 지난 7월 31일 이후에도 전관 업체와의 계약을 멈추지 않았다. 이날 이후 전관 업체와 체결한 계약 규모는 모두 11건에 648억 원에 달했다. 설계 공모가 10건(561억 원)이었고 감리 용역이 1건(87억 원)이었다.
 
LH는 또 안전성을 점검한 안전전단전문업체의 진단결과도 묵살했다. 진단업체에 따르면 LH아파트 지하주차장 위 화단의 토양 깊이가 설계 도면상에는 1m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3m인 곳도 있는 등 설계 기준대로 화단이 조성된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이에 따라 진단업체는 이를 보고서에 지적하면서 붕괴위험이 있다고 경고했으나 지난 7월 말 발표 때 이 부분이 모두 누락됐다. 철근 누락 단지는 일부이지만 토심 설계 하중 초과가 우려되는 단지는 LH가 안전진단을 의뢰한 100여 개 단지 전부여서 문제가 더 심각하다.
 
LH 퇴직자가 취업한 업체들이 설계·감리용역을 싹쓸이한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는데도 이러했으니 조직 내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가능하다. ‘반 카르텔(cartel) 공정건설 추진본부’를 설치, 전관 특혜나 이권 개입 담합 등 잘못된 관행을 근절하겠다는 발표까지도 모두가 국민을 기만하는 ‘립 서비스’임이 확인된 셈이다.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두둑한 배짱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감사원에 따르면 2016∼2021년 LH의 3급 이상 퇴직자 600여 명 중 절반 이상이 LH 계약업체에 재취업했다. 이 기간에 전관 업체에 몰아준 일감은 9조 원이 넘는다. 이번 철근 누락 아파트의 설계나 감리를 맡은 전관업체 18곳도 경쟁이 아니라 수의계약으로 따낸 일감이 최근 3년간 77건, 2300억 원대에 이른다.
 
철근을 빼돌리고 무리하게 공기를 단축하는 것이 원가 절감으로 포장되고, 이름뿐인 감리로 부실시공을 눈감아주는 부실과 비리를 뿌리 뽑지 못한다면 건물이 무너지는 황당한 후진국형 사고가 끊이지 않을 것이다, 2021년 광주 학동 재개발 참사, 지난해 광주 서구 화정동 현대아이파크 붕괴, 올해 인천 검단 사고까지 3년 연속으로 아파트가 무너지고 교량 붕괴, 서울 신축 아파트 침수, 부산 오페라하우스 균열·누수 등 공사 종류와 지역을 가리지 않고 각종 부실공사가 빈발하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공직자가 뇌물을 받지 않으면서도 전관 업체에 부당한 특혜를 주는 이유는 그래야만 차후 본인도 유관 기업에 취업해 전관으로서 대관 업무를 하며 경제적 이득을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관예우는 이젠 예우로 용인할 만한 사항이 아니라 ‘이권 카르텔’로 표현될 만큼 노골적이고 반경쟁적인 담합이 됐다. 반드시 척결해야 할 대상이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대 어느 정권도 이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오늘 10월 ‘건설 카르텔 부실시공 방지 방안’을 마련, 발표할 계획이라고 한다. 무슨 내용이 담길지 궁금하다. 윤석열 정부가 전관 야합을 해체하는 일 하나만이라도 제대로 해낸다면 큰 업적으로 기록될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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