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값 뛰는 ‘14억 인구’...맨파워 첨단산업 실리외교 등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지난 4일부터 16일까지 네팔과 인도를 여행했다.

대부분 일정이 오전 4~5시에 기상, 버스와 기차로 8~10시간을 달리는 강행군이었지만 크게 피곤한 줄 몰랐다.

오래 전부터 세계여행 버킷 리스트에 올려놓은 여행지여서 설레임과 호기심이 컸기 때문이었으라.

특유의 향 냄새, 향신료를 쓴 음식과 먼지와 소음, 소똥과 쓰레기, 열악한 도로, 화장실 등 여러 불편한 사정 속에서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특별한 여행이었다.

먼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하누만 도카(원숭이 신 ‘하누만의 문’이라는 뜻을 가진 사원 안뜰 궁전 등으로 이뤄진 종합단지로 현재는 박물관)를 비롯해 쿠마리 사원(힌두교의 처녀인 쿠마리의 화신으로 숭배되는 처녀가 산다), 네팔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인 스와얌부나트 사원(일명 원숭이사원) 등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둘러보았다. 특히 오랜 기다림 끝에 2층 창문을 통해 짧은 시간이지만 얼굴을 내민 쿠마리를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

히말라야 등산과 트레킹을 시작하는 서쪽 출발점인 포카라로 가는 길에 우연히 마주친 브라만족 산촌 아낙(43)의 호의를 잊을 수 없다. 자신의 집에 기꺼이 초대, 집안 살림살이를 들여다보게 하고 방금 딴 오이를 내주는 친절을 베푼 것.

네팔어로 호수(湖水)라는 뜻을 가진 네팔 최고의 관광 휴양지 포카라의 만년설이 녹아 만들어진 페와호수에서 보트를 타고 히말라야의 고봉(高峰) 안나푸르나 마차푸차레 등 설산(雪山)을 감상하는 호사(豪奢)를 누리기도 했다.

불교의 4대 성지중 하나로 석가모니 부처님의 탄생지인 룸비니에 건립한 마야사당과 아쇼카 대왕이 건립한 아쇼카 석주(石柱),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데비가 목욕한 장소 ‘구룡못’ 등도 둘러보았다.

사실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인도가 자랑하는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그라의 타지마할과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 이곳은 연간 100만명 이상의 순례자가 방문하는 힌두교의 성지로 5,000년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온 ‘미로도시‘로도 유명하다.

힌두의 신앙에 의하면, 어머니와 같은 존재인 강가(Ganga, 갠지스강)의 성스러운 물로 목욕을 하면 모든 죄악이 씻겨 나가고, 이곳에서 죽어서 화장하고 남은 재가 강가에 뿌려지면 윤회(輪廻)에서 벗어나 해탈(解脫)할 수 있다고 한다.

호텔에서 갠지스강까지 자전거 릭샤에 몸을 싣고 왕복 40여분 동안 사람과 자동차 오토바이 등이 뒤섞여 좁아터진 위험천만한 거리를 혼신을 다해 곡예운전하는 50대 후반의 깡마른 체구의 릭샤꾼에게서 밥벌이의 고단함과 함께 일에 대한 진지함에 경외심이 일었다.

아침 일찍 찾은 갠지스강에서 보트를 타고 강둑을 따라 강변에 있는 넓은 계단 형태의 가트(ghat, 목욕장 시설과 화장터로 이용)를 둘러보았다. 총 4km에 걸쳐 80여개의 가트가 있다고 한다.

강변에 자리한 가트에는 힌두교 신전과 죽음을 기다리는 이들의 거처인 ‘기다림의 집’과 성스러운 강물과 삶과 죽음이 어우러지고 있었다. 저 기다림의 집에 얼굴을 감추고 매일 화장터를 엿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보트를 타고 가까이 접근하자 화장하는 장면과 천으로 감싸진 시신, 화장용 망고나무 장작더미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거기서 가까운 곳에 아무렇지 않은 듯 혼자 또는 가족끼리 갠지스강에서 몸을 씻고 빨래를 하거나 물을 담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은 놀이를 하는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주인 없는 개들은 무리를 지어 몰려 다니고...

저녁에 다시 갠지스강을 찾아 메인 가트인 다셔스와메트 가트에서 시바신과 갠지스강에 감사하는 힌두교식 제식(祭式)인 아르띠 뿌자(Arti Puja, 불 의식)를 지켜보았다. 여러 명의 브라만 청년 사제들이 노란 옷을 입고 7시경부터 약 1시간 동안 의식을 진행했다. 끊임없이 주문과 종소리가 울리고 향연기가 자욱했다.

가트 일대엔 수천명의 힌두교도들과 구경꾼들로, 강변쪽엔 관광객들을 태운 보트들로 꽉 차 있었다. 의식 중엔 불이 모든 것을 정화해 준다고 믿기 때문에 불을 사용하는 대목이 많다. 의식이 끝나면 축복과 나눔의 의미로 쌀과 꽃잎 등을 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

언젠가는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과정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상념에 젖어들었다.

역시 불교 4대 성지중 하나인 사르나트의 녹야원(鹿野苑)도 기억에 남는다. 석가모니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고 함께 수행했던 5명의 비구(比丘)들에게 설법했던 곳으로 불탑과 큰 수도원의 흔적, 고고학박물관 등이 있었다.

카주라호에선 1,000여년 전 중세 인도의 ‘예술의 보고’로 알려진 사원군(寺院群)을 찾았는데, 특히 서부 사원군의 사원 기단과 외벽에 성적 교합의 순간을 리얼하게 묘사한 수많은 에로 조각(미투나, 왕이 다산 장려를 위해 건축)이 눈길을 끌었다.

카주라호에서 아그라까지(427km)는 기차여행. 원래 8시간 걸린다던 도착 시간이 1시간 15분 지연됐다. 인도에서 이 정도는 아주 양호한 편이란다. 놀랍게도 소똥이 대합실은 물론 승차장까지 펼쳐져 있었다. 역시 소를 숭배하는 힌두교 사회다웠다.

아그라는 이슬람왕조인 무굴제국의 수도로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타지마할(Taj Mahal)이 있는 최고의 명승지.

17세기 중반 5대 황제 사자 한은 아이를 낳다가 세상을 떠난 사랑하는 황후 뭄타즈 마할을 위해 22년간 국가재정 3년치를 쏟아부어 야무나 강을 따라 은은한 빛을 발하는 하얀 대리석 무덤을 만들었다. 요즘 돈으로 720억원의 비용과 연인원 20만명의 노동력, 1000여 마리의 코끼리가 동원됐다.

규모와 화려함의 극치는 말할 것도 없고, 이처럼 완벽한 비율과 좌우대칭으로 보여지는 조형미, 주변 경관관의 배치, 빛이 대리석으로 이루어진 외관과 어우러져 해가 뜨고 짐에 따라 그 자태가 변하는 건축물이라니!

황제는 타지마할이 완성된 직후 이보다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 것을 염려해 공사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들의 손목을 잘랐고, 재정을 파탄낸 업보로 후계자인 아들 6대 황제에 의해 타지마할이 바라다 보이는 인근 아그라 성에 유폐돼 있다가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라지스탄주의 주도인 자이푸르는 구시가지의 건축물들이 온통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는 ‘핑크 도시(Pink City)’.

1876년 영국 웨일스 왕자의 방문을 환영하기 위해 도시 전체를 핑크색으로 칠한 이후에 불려지게 된 이름이다.

1799년에 건축된 ‘바람의 궁전’ 하와마할은 자이푸르의 대표적인 건축물로 당시 바깥세상을 구경할 수 없었던 왕가 여인들이 문틈을 이용해 세상을 내다보았다고 한다. 창문이 밖에선 안이 보이지 않게, 밖에서 부는 바람이 건물 전체를 시원하게 만드는 특별한 구조로 만들어졌다.

자이푸르의 궁정 가까이에 18세기 초에 세운 석조 천문관측소인 잔타르 만타르(산스크리스트어로 ‘마법의 장치’란 뜻)도 놀라웠다.

당시의 천문학적 기술과 우주 철학적 개념을 잘 보여주는 기념비적 시설로 해시계 등 20개의 주요 천문계기는 1940년까지 이용됐을 만큼 정확도가 뛰어나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곳에서 11km 떨어진 암베르성은 바위 등으로 이루어져 있는 험준한 산악지대의 마오다 호수와 무굴양식의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형을 활용한 방어적 목적이 강한 성이다. 중국의 만리장성처럼 외곽으로 성곽을 길게 쌓았는데, 길이가 20km에 이른다고 한다. 150여년에 걸쳐 18세기 현재의 모습으로 완성되었으며, 붉은 사암과 하얀 대리석으로 힌두양식과 이슬람양식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지프차를 타고 암베르 성으로 오르는 길에 10여 마리의 코끼리들을 만났다. 관광객을 실어나르거나 짐을 옮겨 나르기 위해 일을 하는 중이었다.

인도의 수도인 뉴델리(델리)에서 만난 인도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높은 미나르(Minar, 이슬람교의 예배당인 모스크의 부속건물로 예배시간을 알리는 탑)인 쿠트브미나르(Kutb Minar, 72.5m)도 인상적이었다. 1199년 인도 최초의 이슬람 왕조에 의해 세워진 것으로 유명하다.

델리의 랜드마크인 거대한 아치형 인디아 게이트(인도문)는 프랑스의 개선문이 전쟁의 승리를 기념하는 것과는 달리, 전쟁 희생자를 추모하는 상징.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숨진 인도인들의 넋을 기리기 위한 거대한 위령탑으로 42m에 이르는 탑 전체에 8만 5,000명 전사자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장점을 모아 창시한 종교인 시크교의 구루드와라 방글라 사힙 사원의 엄숙하고 정갈한 분위기와 ‘나눔의 정신‘도 인상적이었다. 양말을 벗고 신발을 맡기고 머리카락을 가릴 수 있는 두건이나 스카프 등을 쓴 뒤 발을 물에 헹구고 실내로 입장한다. 시크교도 남자들은 모두 터번을 두르고 마주치면 눈인사를 해줄 정도로 아주 친절하다.

시크교는 힌두교에서 유래되었지만 카스트(신분 질서 제도) 대신 차별을 없애고 이웃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강조한다.

사원에선 여행자와 순례자들을 위해 무료급식을 하고 공짜로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고 있다. 식당은 24시간 개방되고 하루 수 천명이 식사를 한다. 신자들의 후원과 자원봉사자들의 노력으로 나눔이 이뤄지고 있다.

거대한 인파와 먼지, 요란한 경적 소리와 불쾌한 악취. 마구 버려진 쓰레기, 위생 안전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의 생활방식. 길을 점령한 소와 개 또는 양 염소, 코끼리, 원숭이에 심지어 낙타에 이르기까지 따로 사파리 체험을 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소매를 붙들며 물건을 파는 아이들. 자칫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무질서도 있지만, 다녀온 이들은 입 모아 말한다. 그 속에 묘한 질서와 깨달음이 흐르고 있다고.

아리안족이 인도 원주민을 정복하면서 자신을 피정복민과 구별하기 위해 신분에 차이를 두는 제도를 만든 카스트(caste, 종성·種性 또는 사성·四性)제도가 남아 있고, 극심한 빈부격차, 높은 문맹률(26%) 등...

한마디로 원시와 현대, 성(聖)과 속(俗), 과거와 현재, 미추(美醜)가 공존하는 나라 인도! 혼돈 속에 질서가, 파괴와 창조가 동전의 양면처럼 대립하지 않고 어우러져 있는 불가사의(不可思議)!

그러기에 “인도를 가지 않으면 세계여행을 간 것이 아니다”는 얘기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이번에 함께 한 일행 중 한 분(74)은 인도 여행이 여섯 번 째라고 했다.

다른 곳에선 전혀 느낄 수 없는 인도만의 잊을 수 없는 ‘삶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기에.

인도는 여행을 좀 하는 사람이라면 한번은 가보고 싶어하는 매력 있는 여행지다. 세계 4대 문명의 하나인 인더스 문명과 함께 힌두교, 불교 자이나교 시크교 조로아스터교(배화교·拜火敎) 등 다양한 종교의 영향으로 독특한 문화유적이 존재한다. 거대한 국토만큼이나 다양한 생활방식과 가치관이 공존하는 묘한 매력을 동시에 지니고 있다.

인도에서 오랫동안 생활해온 사람들도 인도를 한마디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한다. 아시아에 속하지만 서로 다른 인종과 종교, 사고방식이 존재해 아시아권에서도 왠지 거리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인도의 다양한 종교는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전체 인구의 80%인 대다수가 힌두교를 믿고 따른다. 이슬람교가 제2종교를 이룬다. 그 밖에 기독교, 불교 등이 있지만 신도는 지극히 적은 수다. 특히 인도는 불교의 발상지인데도 불구하고 인도에서 불교를 믿는 사람은 전체 인구의 1%에 지나지 않는다.

인도의 잠재력과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성싶다.

인도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땅이다.

화를 낼 이유도, 서두를 까닭도 없다. 식당에서 숟가락을 안 주면 손으로 먹으면 된다. 기차를 놓치면 다음 차를 타면 된다. 천하태평(天下泰平). 모든 게 ‘노 프라블럼(No problem)’이다. 이들에겐 태어남도 죽음도 삶의 일부일 뿐, 무엇도 대수롭지 않다. 인도에서의 시간은 그래서 천천히 흐른다.

느긋하게 이룩한 성장은 놀랍다. 최근엔 세계 1위 인구 대국에 올랐다. 유엔인구기금(UNFPA)의 ‘2023년 세계 인구 현황’에 따르면 인도 인구는 14억2862만여 명이다. 14억2567만여 명인 중국을 제쳤다. 단순히 머릿수만 많은 게 아니다. 영어를 공용어로 쓰는 인구의 대부분이 청년이다. 평균 연령은 고작 28세다. 25세 미만이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한다. 아시아에서 가장 젊은 나라다.

사람이 많은 인도는 땅도 넓다. 세계에서 7번째로 크다. 규모만큼이나 문화도 다채롭다. 흔히 요가, 명상, 힌두교, 카레를 떠올리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만 40개에 이른다.

그동안 천천히, 그러나 견실하게 실력을 다져온 인도가 마침내 도약을 시작했다. 그 속도와 기세가 무서울 정도다.

2022년 인도는 세계 5위 경제 대국(국내총생산 3조 2,000억 달러)으로 오르면서 한때 지배국(1858~1947)이었던 영국의 경제를 앞질렀다. 지난해 인도계 인물인 리시 수낵이 영국 총리로 선출되어 세계적인 관심을 끌기도 했다. 13개 대도시에 5G 서비스가 도입되었고 G20 의장국이 되기도 했다. 지난 9~10일 뉴델리에서 나렌드라 모디 총리 주재로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린 것이 인도의 위상을 상징적으로 웅변한다.

인도 경제는 괄목할 성과를 보였다. 빠른 성장에 힘입어 경제 규모가 모디 재임 초 세계 10위권에서 최근 5위로 올라섰다. 2030년 일본과 독일을 추월하여 3위에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도로와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시설의 빠른 증가가 중요 요인인데, 정부 자료에 따르면 도로망은 약 25%, 공항 수는 9년 사이 74개에서 148개로 늘었다. 생활의 질과 연관된 분야도 크게 개선되고 있다. 농촌지역에 약 1억 2000개의 화장실을 설치해 10여 년 전 농촌 인구 중 화장실이 없어 고통을 겪던 비중이 60%이던 것을 근래에는 20%대로 낮추었다. 의대 수가 약 두 배로 늘어 매년 약 10만 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있다. IT기술을 이용한 서민금융 결제수단이 널리 보급되었고 저소득층 지원체계를 구비했다.

특히 인도의 높은 학구열은 큰 자산이다. 인도공과대학(IIT, 전국에 23개)의 실력은 세계적으로 정평(공대평가에서 세계 3위)이 나 있는데, 인도 학생들은 의대 보다 공대(컴퓨터공학, 전자·전기 공학과 등)를 선호한다고 한다. 미국 실리콘밸리 창업자의 15~20%, 나사(NASA, 항공우주국) 직원의 30%가 인도공과대 출신 인도인들이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자 인도의 국부(國父) 판디트 자와할랄 네루 초대 총리가 인도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IIT 설립을 주도했다. 신생 독립국가로 1인당 국민소득이 81달러이던 1962년 인도우주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런 분위기가 인도의 IT 기술 및 우주과학 기술을 끌어올린 디딤돌이 됐다는 평가다. 실제 미국의 구글 애플 직원 중 30% 이상이 인도계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스탠다드앤드푸어스(S&P)는 2031년까지 인도의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6.7%에 이를 것이라며 곧 ‘인도의 시간(India’s Moment)‘이 온다고 예고하기도 했다. 젊은 인구·첨단 산업 등 ‘거대한 시장’ 인도와의 교류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이유다.

세계를 놀라게 한 ‘인디언 파워(Indian power)’의 실체를 보자.

리시 수낵 영국 총리 이전에도 글로벌 정·재계에는 이미 수많은 인도계가 자리 잡고 있다. 정계에서는 미국의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을 비롯해 니키 헤일리 전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 보비 진덜 전 루이지애나 주지사 등이 모두 인도계다. 이밖에 포르투갈 안토니우 코스타 총리 역시 인도인 아버지를 뒀고, 인도양 섬나라 모리셔스의 프라빈드 주그노트 총리도 인도계다.

산업계에서도 인디언 파워는 막강하다. 구글(순다르 피차이), 마이크로소프트(사티아 나델라), IBM(아르빈드 크리슈나), 어도비(샨타누 나라옌) 등 미국 실리콘밸리 빅테크들을 비롯해 스타벅스(랙스먼 내러시먼), 샤넬(리나 나이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의 최고경영자(CEO) 자리를 인도계가 꿰차고 있다. 2006년부터 12년간 펩시를 이끈 인드라 누이 전 CEO도 인도계 경영자로 유명하다.

다수의 인도인이 서방 세계에서 거물급 인사로 거듭날 수 있었던 배경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은 유창한 영어 구사 능력과 높은 학력 수준, 그리고 특유의 생존력이다.

한편 전통적으로 비동맹정책을 표방해 온 인도는 실리주의 외교로 국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최근 미·중 갈등 국면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 와중에서 인도가 보인 행보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물론 인도의 미래가 밝기만 한 것은 아니다. 정치적, 경제적으로 깊게 스며들어 있는 부패, 비효율적인 관료주의, 수백 년간 이어져 온 문화적 편견이나 차별, 경악할 수준의 빈부 격차, 힌두교 근본주의 유행 속 고조되는 사회 불안 등은 인도 발전의 큰 걸림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는 약진의 가능성이 더 높다.

지난달 23일 인도가 무인 달 탐사선 찬드라얀 3호를 세계 최초로 달 남극에 안착시키는 데 성공한 지 10일 만에 첫 태양 관측용 인공위성을 쏘아 올렸다. 인도인의 자신감을 크게 끌어올린 쾌거다.

지난 2일 태양 관측용 '아디티아 L1'(Aditya L1) 인공위성을 인도 남부 안드라프라데시주 스리하리코타 우주기지에서 발사한 것. 인도의 첫 태양 관측 미션으로, 성공하면 아시아 국가로선 처음이다.

일찍이 ‘0’의 개념, ‘십진법’ 등 수학은 물론 천문학 자연철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낸 인도가 영국 식민지배에서1947년 해방된지 70여년 만에 거대한 용틀임을 시작한 모양새다.

올해로 인도와 수교 5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입장에서 8번째 교역대상국이자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1,300여개 기업이 진출한 인도는 기회의 땅이자, 앞으로 우의와 협력을 더욱 강화해 나가야 마땅한 최고의 파트너 국가이다.

아무튼 이번 인도 여행은 다양하고 풍성한 문화와 전통을 엿봄과 동시에 ‘다이나믹 인디아(Dynamic India)’의 자신감과 저력을 확인한 뜻깊은 기회였다.

1,300년 전 신라 승려 혜초(慧超)가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 723~727년 여행기록)을 썼고, ‘비폭력·무저항주의’의 아이콘 마하트마 간디, ‘동방의 등불‘로 유명한 시성(詩聖) 타고르를 낳은 그 인도 땅을 드디어 밟아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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