턱없는 물가안정 주장에 국민 분개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물가안정이 절실한 시점에 전기요금이 거듭 올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국민부담이 급증했다. 유난히 더위가 심하고도 길었던 올여름 냉방비용을 아끼느라 가계와 기업들이 절전에 고심해야 했다. 가계는 생필품 등 다른 소비지출까지 줄이고, 기업은 원가 절감에 나서다 보니 그 타격이 더욱 확산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올해 한국전력의 누적적자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킬로와트시(㎾h)당 51.6원 인상 요인이 있는 것으로 판단했으나 국민부담을 걱정해 인상 폭을 단계적으로 최소화해 조정하는 방안을 택했다. 한전은 적자누적으로 이미 200조원이 넘는 부채를 안고 있다. 2021년 2분기 이후 47조원이 넘는 적자가 쌓여 추가 요금 인상이 불가피한 처지다.
 
공기업의 맏형으로 재정기반이 비교적 탄탄했던 한전이 적자누적으로 부채 늪에 빠진 까닭은 국제에너지 가격의 급등과 탈원전 정책에 있다. 문재인 정부는 취임 직후 신규 원전 전면 중단 및 건설계획 백지화를 선언하고 월성 1호기를 경제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가동 중단시켰다. 원전 가동을 줄이는 대신 태양광과 풍력 발전을 늘리고 부족한 전력을 석탄, 가스발전을 통해 보충했다. 당연히 발전단가가 급등했다. 그래도 문 정부는 탈원전으로 인한 전기요금 인상부담은 없을 것이라는 주장을 거듭했다. 실패한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 요금 인상을 억지로 눌렀다. 퇴임을 앞두고 슬며시 전기요금을 조금 올렸으나 이미 망가진 한전 재무구조를 살리기에는 시기가 너무 늦었고 규모는 면피 수준에 불과했다.
 
문 전 대통령은 공공요금 중에서도 물가 파급력이 가장 큰 전기요금을 사실상 임기 내내 눌러놓았다가 그 부담을 현 정부로 몽땅 떠넘겼다. 얼마 전 9·19 평양공동선언 5주년 기념행사에 나와서는 안보와 경제 성적을 자화자찬하는 연설까지 했다. 그는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진 진보 정부에서 안보 성적도 경제 성적도 월등 좋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경제분야에서는 “수출, 무역수지 외환 보유고, 물가, 주가, 외국인 투자액 등 거의 모든 경제지표가 지금보다 좋았다”고 했다. 탈원전에서 드러난 허튼 논리를 물가에 그대로 적용해 국민에게 덤터기 씌운 정책 실패를 치적으로 둔갑시키는 수법이다. 규제강화와 임대차 3법 강행 등 부동산 정책 실패로 매매가와 전세까지 마구 치솟아 그 난리를 치렀는데도 물가가 안정됐다고 자랑했다. 다른 지표들도 미국의 양적완화 등 대외경제 여건에 따른 변동이지 누구 덕분이라고 내세우기는 낯뜨거운 수준이다.
 
이미 언론에서 신뢰도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한 집값 통계에 대해 감사원은 문 정부 5년간 최소 94차례 조작됐다고 밝혔다. 감사원은 고용동향등 다른 경제지표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이다.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과 관련,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 정재훈 전 한전 사장 등 문 정부의 고위 공직자들이 재판을 받고 있으며 김수현 전 청와대 사회수석비서관도 기소됐다. 문 정부는 임기가 한참 남은 통계청장을 교체하고 통계산정 방식을 변경, 각종 지표를 생산했다. 경제 통계는 문 정부 초기에 이미 국민의 신뢰를 잃어 조작 의혹이 끊이지 않았다. 힘으로 눌러 전기요금 인상을 거듭 미루는 식의 물가 관리와 이미 신뢰를 잃은 통계를 바탕으로 경제 성적이 뛰어났다는 전임 대통령의 주장은 국민을 바보로 여겨 우롱하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소주성부터 부동산까지 실패 거듭
 
구태여 지표를 들먹일 필요도 없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인상, 탈원전, 임대차 3법, 부동산 세금 중과 등 문 정부가 내세운 각종 정책은 모두 시장흐름에 역행해 부작용을 양산하는 실패를 거듭했을 뿐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시장기능을 염두에 두고 실효성을 검증한 게 아니라 이른바 진보좌파의 이념에 치우친 설익은 정책이라는 사실이다. 좌파 정책을 여과 없이 실험한 덕분에 자영업자와 일용직 근로자를 비롯한 경제적 약자들부터 피해를 보았고 경제 전반에 큰 부담을 주는 후유증을 불러왔다.
 
문 전 대통령은 한발 더 나아가 이른바 진보 정부가 경제 성적도 월등 좋다며 보수의 ‘조작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는 논리를 폈다. 대통령을 역임한 분이 신뢰를 잃은 일부 지표를 내세워 보수와 진보의 성적을 어설프게 일반화할 수 있는지 귀를 의심케 만드는 대목이다. 이념에 치우친 일부 비서진이 그런 의견을 주장할 수는 있겠으나 전직 대통령이 쉽게 수용할 말은 아니다. 우둔한 정치 권력이 정책을 어떻게 망치고 국민 분열을 부추기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정치부 기자로 오래 취재현장에 있었던 한 언론계 인사는 문 전 대통령을 가리켜 “청와대 비서실장은 몰라도 최고 통치권자 감은 아닌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언급했던 ‘깜냥’의 뜻을 곱씹게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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