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전기요금 인상 여부가 조만간 결정될 전망이다. 한국전력공사의 대규모 영업적자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무력충돌로 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나 내년 4월 총선과 연쇄적인 물가 앙등을 우려, 인상이 미뤄질 가능성도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현재 한전은 파산 직전이다. 한전은 올해 상반기에 8조45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 6월 말 기준으로 누적 적자는 47조 원, 부채는 201조4000억 원이나 된다. 하루에 이자만도 70여억 원을 내야 한다. 한전의 적자가 지금보다 더 커지면 회사채 추가 발행과 공사대금 지급이 어려워져 채권시장이 마비되고 전력산업 생태계가 붕괴될 수 있다.
 
한전은 올해 4월부터 7월까지 에너지값 하락과 전기요금 인상에 힘입어 역마진 구조에서 가까스로 벗어났다. 전기요금은 지난해 2분기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약 40% 가까이 인상됐다. 그러나 이후 국제유가가 오름세로 반전되면서 역마진 현상이 다시 나타났다. 대규모 적자 상태에서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가 다시 등장한 것이다. 최근 중동에서의 무력충돌이 자칫 제5차 중동전쟁으로 확전할 우려가 여전한데다 난방을 위한 전력 수요가 늘어나는 겨울철이 다가오고 있어 한전의 적자 폭 확대가 우려된다.
 
정부는 전기료가 원가에 못미치는 역마진 구조를 근원적으로 바꾸기 위해 2021년에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했다. 분기마다 에너지 가격 변동분을 전기요금에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표를 의식해 ‘국민 부담 증가’로 포장한 정치권 압력에 떠밀려 ‘예외적인 상황 발생 시 정부가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부대 조항을 적용, 연료비 급등으로 전력 구입가가 치솟는데도 의도적으로 이를 반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전기요금 인상을 반길 사람은 없다. 하지만 전기요금 현실화 외에는 대안이 없는 게 현실이다. 한전 설립 후 최초의 정치인 출신 낙하산인 김동철 신임 사장은 지난 달 취임하자마자 집무실에 ‘워룸(war room·위기 상황실)’ 문패를 달고 야전침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다. “위기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전까지 퇴근하지 않겠다”는 각오다. 김 사장은 '제2의 창사'를 각오로 통렬한 내부 반성과 사업 구조 재편을 준비 중이다.
 
물론 한전은 적자를 기록하면서도 해마다 임직원들의 임금을 큰 폭으로 인상했는가 하면 제대로 된 평가 없이 성과급을 지급한 적이 많다. 또한 자회사들과의 설비 등 일감 계약을 통해 적정수준 이상의 초과이익을 자회사들에게 안겨주는 등 방만경영을 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복마전이라는 오명까지 뒤집어 썼다. 하지만 방만 경영도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하겠지만 지금과 같은 한전의 위기는 전기요금을 원가보다 낮게 유지한 왜곡된 에너지 가격 구조와 탈원전 등 정부의 잘못된 정책의 탓이 더 크다.
 
에너지 효율 개선과 절약 문화 정착도 무척 중요하다 에너지 가격이 싸면 에너지를 아낄 필요가 없어져서 에너지 소비가 많아진다. 에너지 가격이 시장 원리에 따라 결정되면 건물 설계부터 조명 등에 이르기까지 에너지 효율 향상을 위한 지식과 기술이 축적되고 절약 산업이 발달한다. 요금 현실화는 통상 문제로 비화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미국 상무부는 지난 2월 말 한국산 철강제품이 전기요금을 통해 보조금을 받고 있다는 예비판정을 내렸다. 원가보다 값싼 전기요금을 보조금을 주는 것과 같다고 본 것이다.
 
앞으로 전기가 에너지 분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놓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은 에너지 총 사용분 중 전기 비중이 3분의 1 수준이다. 하지만 자동차의 경우 휘발유 경유 같은 내연기관에서 배터리와 수소연료전지 같은 동력으로 급속히 전환되는 등 에너지 중심이 석유나 가스에서 전력으로 전환되는 것이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전기요금 현실화와 그에 따른 에너지 소비량 감축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정치적 셈법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일이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차제에 우리나라도 주요 선진국에서처럼 전기요금을 다루는 독립적인 기구를 도입, 정권의 '정무적 부담'을 더는 방안도 검토해 봐야 한다.
 
추후에 전기요금을 다시 인하하는 한이 있더라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기형적 형태의 영업구조는 반드시 개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공기업인 한전의 손실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기에 더욱 그렇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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