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오판 금물...有備無患자세 가다듬을 때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팔레스타인 가지자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 하마스가 지난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했다.

유대교 안식일인 이날 오전 가자지구 하마스 포대에서 이스라엘을 향해 미사일 최소 5000발이 발사됐고, 하마스 및 이들과 연합한 가자지구의 또 다른 무장단체 ‘이슬라믹 자하드’ 대원 300여명이 오토바이와 트럭, 수상정, 패러글라이더 등을 타고 이스라엘 본토로 진입했다. 이들은 경찰서 등 관공서와 협동농장 키부츠 등은 물론, 야외 음악축제 행사장에도 들이닥쳐 쑥대밭을 만들었다.

1948년 건국 후 벌어진 아랍 진영과의 네 차례 전쟁(1~4차 중동전쟁)에서 승리를 거두고, 이후 벌어진 팔레스타인과의 크고 작은 무력충돌에서도 압도적 우위를 앞세워 진압했던 이스라엘은 이날 하마스의 공습으로 전례 없는 타격을 입었다.

이에 초강경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공식적으로 ‘전쟁’을 선언하고 “하마스의 역량을 파괴하고 이들의 근거지인 사악한 도시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리겠다”며 ‘궤멸적 복수’를 공언했다.

이스라엘이 즉각 보복 공격에 나서고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도 이스라엘 북부를 폭격하면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이 ‘신(新)중동전쟁‘ 수준으로 확전될 위험이 커졌다.

지난해 2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발한 ’우크라이나 사태‘도 1년 9개월째 계속되는 상황에서 ’중동의 화약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이 촉발되면서 가히 세계를 급속히 공포스런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밀어넣고 있는 모양새다.

미국을 필두로 상당수 유럽 국가 등 친이스라엘 세력에 맞서 아랍권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들은 팔레스타인 지지를 선언하거나 지지 시위를 벌이고 있다.

미국이 이란 등의 개입을 막기 위해 동지중해 이스라엘 인근 해역에 핵추진 항공모함과 전단(戰團)을 급파하자, 이번 전쟁의 배후로 지목되고 있는 이란은 공개적으로 복수를 다짐하며 대규모 지상군 투입에 나선 이스라엘에 “당장 (군사작전을) 안 멈추면 통제불능 상황이 닥칠 것”이라며 경고와 함께 ’개입‘을 시사했다.

바이든 미 대통령은 15일 CBS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는 완전히 제거돼야 한다”면서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점령은 큰 실수가 될 것”이라고 언급, ’중동전‘ 확산 우려에 전전긍긍하는 복잡한 속내를 드러냈다. 유럽에 이어 중동까지 2개의 전장이 될 경우, 엄청난 부담이 되기 때문.

지구촌이 이념과 민족, 종교, 영토 등을 둘러싸고 진영간 블록간 전례를 찾기 어려운 이전투구(泥田鬪狗)의 갈등과 분열상을 또다시 연출하고 있다.

한편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의 전쟁이 9일째를 맞은 15일(현지 시간) 양측에서 집계된 사망자 수가 4000명을 넘어섰다. 하마스가 통치하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날 저녁까지 집계된 누적 사망자가 2670명이라고 밝혔다.

이날까지 이스라엘 측이 집계한 사망자는 1500여명으로 양측의 사망자 수를 합하면 4100여명에 이른다. 하마스 세력을 뿌리뽑기 위해 지상군까지 투입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스라엘군이 연일 공습을 이어가면서 가자지구의 부상자는 9600여명으로 늘어났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의 지옥도(地獄圖)를 방불케 하는 현장이다.

문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장기화하고 있는 가운데, '중동의 화약고'인 팔레스타인에서 격렬한 전면전이 발생하면서 불똥이 세계 경제로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분위기다.

최근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무력 충돌로 국제 유가와 천연가스 가격이 급등했다.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직후만 하더라도 이번 사태가 중동 전체로 확전될 여지는 낮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나 최근 이스라엘 지상군의 가자지구 투입이 임박해지고, 주요 산유국인 이란마저 개입할 수 있다는 뜻을 밝히면서 글로벌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관측에 가격이 뛴 것이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이어 세계 경제에 또 하나의 전쟁 리스크(위기)가 덮친 것.

한국 경제에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당장 지난 9일 국제유가(국제 거래에서 매매되는 석유 가격)가 5% 가까이 급격하게 올라 조만간 배럴당 100달러를 넘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올해 들어 8월까지 한국의 원유(原油) 수입에서 중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69.5%에 이른다. 2021년 60% 밑으로 떨어졌다가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다시 중동 의존도가 높아졌는데, 중동까지 위기에 휩싸이면서 에너지 확보에 비상등이 켜진 상황. 안전자산 쏠림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이며 원-달러 환율이 1400원까지 오를 것이란 우려도 커졌다.

코로나19의 충격에서 회복하던 한국 경제는 지난해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진 이후 크게 휘청거렸다. 에너지와 곡물 가격이 올랐고, 물가도 요동쳤다. 미국 등 주요국의 급격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경제 둔화의 직격탄을 맞은 것. 글로벌 수요가 줄어 수출이 급감하며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 규모로 불어났고, 에너지 무기화에 따른 공급망 위기에 심각한 타격을 입었다.

이런 상황에서 중동에서까지 전면전이 터져 ‘2개의 전쟁’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다면 한국 경제가 입을 피해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유가가 오를 경우 안 그래도 꿈틀대고 있는 국내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 에너지 수입액이 올라 무역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인플레이션 우려에 따른 미국의 고금리 장기화와 강(强)달러 현상에 따른 고환율도 가계와 기업의 부담을 높이고,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킬 수 있다. 정세 불안정으로 글로벌 무역이 위축되면 수출 반등을 기반으로 한 경제 회복 전략은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최근 ‘3고’(고환율·고물가·고금리) 리스크가 한국 경제를 옥죄면서 ‘상저하고(上底下高, 경기가 상반기에는 나쁘고 하반기에는 좋아지는 현상)’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중동에서 시작된 불안이 길어지는 것을 염두에 두고 최악의 사태에 대비해야 한다. 장단기 원유 수급 대책은 물론이고 에너지 수입원 다변화 전략, 금융 및 외환시장의 리스크, 수출 전략 등을 원점에서 철저하게 점검할 필요가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팔 전쟁은 한반도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 안보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에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지금 남 걱정을 할 때가 아니라는 강력한 ‘경고등’이 켜진 셈이다.

이번 이·팔 전쟁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의 대대적인 기습 공격을 받은 이스라엘 안팎에서 이를 미리 감지하지 못한 정보 당국에 대한 책임론이 불거졌다. ‘철통방어’를 자랑하던 이스라엘의 대공 방어 시스템 ‘아이언 돔(Iron Dome)’이 뚫린 데 대해서도 의구심이 제기됐다.

CNN 등 미국 언론들은 “이스라엘 정부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눈치채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9·11 테러에 버금가는 정보 당국의 대규모 실패”라고 했다. 이스라엘 해외 정보 수집 기관 ‘모사드(Mossad, 1949년 창설, 직원 수 약 7000명)’는 그동안 적국 첩보 수집과 대테러 능력에서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마스측 훈련장 중 2곳은 경계가 삼엄한 이스라엘 국경으로부터 채 2k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위치, 그동안 이곳에서 규모를 키우고 패러글라이딩과 로켓 공격이 가능한 무장 군인을 양성해 왔음에도 이스라엘측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밀한 휴민트(인적 정보)와 시킨트(신호 정보) 네트워크를 가동해온 이스라엘 정보 당국이 하마스에 허를 찔린 ‘정보 실패’는 충격적이다.

이번에 ‘종이 호랑이’꼴이 된 ‘아이언 돔’도 비판의 대상이 되긴 마찬가지.

이스라엘은 “아이언돔으로 로켓을 90% 이상 격추시킬 수 있다”고 공언해왔지만, 이번에 ‘홍수’같은 로켓포 5000여발 공격에 곳곳이 뚫렸다.

재작년 이스라엘은 수억 달러를 들여 감지 장치를 포함한 스마트 국경 시스템과 지하 벽을 구축했지만, 하마스가 불도저로 철조망을 허물고 전동 패러글라이더 등을 동원해 침투하자 무용지물이 됐다.

이번 사태는 하마스가 주도하는 로테크(Low Tech) 전쟁 방식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하이테크에 지나치게 의존했던 이스라엘의 방심과 교만이 주된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우선 교묘한 기만전술을 통해 이스라엘의 오판을 유도했다. 하마스는 물론 가자지구의 또 다른 무장단체인 이슬람 지하드까지 상당 기간 침묵하거나 이스라엘 공격을 자제하며 위장 평화 공세를 펼쳤다. 가자지구 노동자의 이스라엘파견 제안까지 받아들였으니 이스라엘 보안 당국이 방심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으로 은밀한 보안이다. 하마스는 휴대전화 대신 로테크 수단을 사용하는 등 철저한 통신 보안으로 디지털 감시와 도·감청을 회피하며 이스라엘의 정보 실패를 유도했다. 휴민트 대신 첨단기술에 의존하는 이스라엘의 허점을 파고든 계책이다. 또한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첨단 통신·감시망을 드론으로 가장 먼저 마비시켰다. 이스라엘은 11억 달러를 들여 가자지구 주위에 감시 카메라와 동작 감지 센서, 원격 조종 기관총 등을 갖춘 395㎞ 길이의 하이테크 울타리인 ‘철의 장벽’을 2019년 완공했는데 하마스는 이를 드론으로 공격하며 이스라엘군의 눈과 귀부터 마비시켰다.

생활 속의 값싼 로테크 기기를 군사용으로 전환해 활용한 점도 눈여겨 볼만한 대목. 하마스는 불도저와 행글라이더·땅굴 등을 통해 첨단 무인 장벽을 뚫고 이스라엘 키부츠와 음악 축제장으로 돌격했다. 자력갱생도 빼놓을 수 없다. 수천 발을 쏜 하마스의 로켓도 이스라엘이 과거 가자지구에 설치해준 수도관으로 발사관을, 국제 인도주의 기관 등에서 제공한 질소 비료에 함유된 질산암모늄으로 화약과 추진체를 각각 만들었을 가능성이 크다. 남들이 도와준 재료로 이스라엘군의 고도화된 군사기술을 무력화한 셈이다.

허점을 노린 기습 시기도 특기할만 하다. 하마스가 공격에 나선 지난 7일은 유대 명절 주간인 ‘수코트’가 끝난 직후이자 유대안식일(샤바트)이었다. 이로 인해 하마스의 기습을 받은 일부 키부츠에선 이스라엘군이 출동하는 데 12~20시간이나 걸리기도 했다. 이와 함께 집중 공격을 통해 아이언돔을 무력화시켰다. 방어 용량을 넘는 다량의 로켓을 한꺼번에 쏘면 아이언돔의 방어 능력에 일시적으로 구멍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간파해 이를 활용한 것.

육·해·공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두들기는 재래식 전술에 최첨단 방어시스템이 무너졌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가장 큰 원인은 분쟁 장기화로 인한 안이함과 평화무드에 빠져 경각심이 무뎌진데다 동맹국의 경고를 무시한 오만과 방심, 오판, 그리고 국론 분열이라 할 것이다. 특히 모사드 등 이스라엘 정보기관은 하마스의 기습 공격을 사전에 전혀 감지하지 못해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다.

부패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네타냐후 총리는 앞서 사익(私益)을 위해 국내외의 거센 반대에도 사법부를 무력화해 야당과 시민 사회단체 등의 거센 반발과 대규모 시위를 촉발시키는 등 온 나라를 ‘내전상태’에 빠뜨려 국민적 신뢰를 크게 상실한 상태다. 정치적 분열이 정보에 ‘벽(壁)’을 초래한 배경이란 전문가들의 해석이 나온 다. 이런 마당에 안보마저 구멍이 뚫리면서 집권 후 최대 위기에 봉착한 양상이다.

이를 우리의 경우에 대입해보자.

우리 군 역시 최전방 경계 작전에 로봇 등 유·무인 복합 체계를 적용하고 있다. 하지만 화력면에서 하마스와 비교도 되지 않은 북한군이 유사시 전선 전역에 걸쳐 파상 공세를 퍼부을 경우, 최전방 지역은 물론 수도권 방어도 벅찰 수 있다.

가장 위협적인 것은 20만명 규모의 특수부대다. 이들이 레이더에 안 잡히는 저공 침투기를 이용해 우리 후방을 교란할 경우 마땅한 대책이 없다.

현존 최고의 방공 시스템으로 꼽히는 ‘아이언돔’이 뚫린 것도 우리가 긴장해야 할 부분이다. 이스라엘 전역에 10포대가 배치됐다는 아이언돔은 동시 요격할 수 있는 로켓·미사일이 수백 발 수준이다.

하마스는 5000발이 넘는 로켓을 쏘아댔다.

북한의 장사정포 수백 문이 수도권을 겨누고 있고, 최근 들어 위력이 훨씬 강력한 신형 탄도미사일과 방사포까지 배치되고 있다.

북이 이것을 동시다발적으로 퍼부을 경우 현재 한미연합군의 미사일 방어시스템으로 막아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는 것이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게다가 2018년 문재인 정부가 체결한 ‘9.19 남북 군사합의’는 우리 군의 대북 감시·방어 능력을 크게 제약하고 있다.

지난해 북한은 “국가 핵 무력 완성”을 선언하며 핵 선제 사용을 법제화한 데 이어 지난달 ‘핵무기 고도화’를 헌법에 명시했다.

지난 8월 김정은은 우리 계룡대 타격을 상정한 훈련에서 “남반부 영토 점령”을 강조했다. “(대한민국의) 군사 지휘거점과 군항·비행장, 혼란 사태를 연발시킬 수 있는 핵심요소들에 대한 동시다발적 초강도 타격을 가해야 한다”는 구체적 지시도 내렸다.

이스라엘을 공격한 하마스보다 더 많은 종류의 미사일을 보유한 데다 막강한 비정규전 병력을 가진 북한이 각종 무기로 동시다발적인 공격을 가해온다면 방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스라엘 사태’는 전쟁은 언제든지 예고 없이 일어날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어느 때 보다 호전적인 북한이 이번 사태에 고무돼 하마스를 따라할까 우려스럽다. 김정은의 일거수일투족과 북한군의 동향을 면밀히 감시하며 배전의 경각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군과 정보 당국은 신뢰를 주지 못하고, 여야 정치권은 민생과 안보는 도외시한채 온통 정쟁(政爭)에만 빠져 있는 모습이다. 세계 정세는 날이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북한은 대결 태세를 강화하고 있는데 우리의 상황인식은 안이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철저한 안보의식 강화와 국방력·한미동맹의 강화가 아닐까 한다. ‘이스라엘 사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를 가다듬어야 할 때다.

“전쟁을 불사하고 나라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각오와 준비 태세가 전쟁을 억제하고, 전쟁이 벌어져도 이긴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에 대비하라.”-베제티우스(로마의 전략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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