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한 번도 경험하지 않은 소 전염병 '럼피스킨'병이 국내에 유입돼 빠르게 확산하는 등 올해 들어 가축전염병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청정국 지위 획득을 코앞에 두고 구제역이 다시 터지는가 하면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생 범위가 넓어지는 등 우리에게 익숙한 가축전염병들의 기세도 등등하다. 이는 국제교역 활성화 등으로 물적. 인적 교류가 많아진데다 기후변화, 도시화 등으로 가축 질병의 확산이 늘어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럼피스킨’병은 럼피(Lumpy·혹덩어리)와 스킨(Skin·피부)의 합성어다. 모기와 파리. 진드기 등 흡혈 곤충이나 분비물 접촉 등을 통해 소나 물소 등 소에만 전파되는 바이러스 질병이다. 다행스럽게도 사람에겐 옮기지 않는다. 이 병에 걸리면 고열과 함께 소의 몸에 지름 2~5㎝의 단단한 혹이 생긴다. 과도한 침 흘림과 유산과 불임을 유발하고, 젖소의 경우 우유 생산이 크게 줄어든다. 치사율은 10% 이하로 높지 않지만 전파력이 강하다.
 
이 병은 1929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처음 발생한 후 2012년 중동지역으로 확산됐고 러시아, 인도, 중앙아시아를 거쳐 2019년에는 중국, 2020년에는 대만과 베트남, 홍콩 등 아시아 극가들로 동진해 왔다. 이로 인해 국내 유입도 시간문제였다.
 
럼피스킨병은 국내 최초로 지난 20일 충남 서산시 소재 한우농장에서 발생했다. 잠복기가 최장 28일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병의 바이러스가 9월 중순쯤 국내에 유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방역 당국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모기 등 흡혈 곤충이 중국 등지에서 기류를 타고 넘어왔거나, 코로나19 이후 국제 교류가 증가하면서 선박 등을 통해 국내로 넘어왔을 개연성 등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역학조사를 하고 있다.
이 병은 첫 발생한지 불과 일주일만에 충남·북, 경기, 인천, 강원, 전북 등 6개 시·도 14개 시·군 빠르게 확산되면서 발생건수가 42건으로 늘어났다. 명품 한우의 고장인 강원도 횡성군에서도 '확진‘ 판정이 나와 이 지역 한우 사육 농가들에 비상이 걸렸다. 횡성한우는 2023 대한민국 소비자 신뢰 대표 브랜드 대상에서 지역특산물·한우 부문 대상을 16년 연속해서 받았고 2023 대한민국명가명품대상에서도 지역 명품브랜드 부문 대상을 9년 연속 수상했다.
 
정부는 럼피스킨병이 발생하는 즉시 해당 농장의 소들을 살처분하고 있다. 그러나 의심 사례에 대한 검사들이 진행되고 있고 일일 확진 건수가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어 확진 농가는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방역 당국은 보유 백신 54만마리분을 활용, 발생 인근 농장을 중심으로 예방 접종을 하고 있지만 이달까지 백신 400만 마리분을 추가 도입, 전국 모든 소 농장에 대한 접종을 11월 초까지 끝내기로 했다.
 
하지만 살처분과 이동제한으로 한우 도매가격이 급등하고 가축시장이 문을 닫는 등 벌써부터 럼피스킨병 유입 후폭풍이 거세게 일고 있다. 확산추세가 꺾이지 않고 장기화할 경우, 한우와 우유 소비 감소가 우려되는 등 피해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전 세계적인 고병원성 AI 유행으로 미국, 유럽, 일본 등지에서 농축산물 가격 상승이 물가 상승을 유발한다는 에그플레이션(agflation)이라는 신조어가 등장했듯이 가축 질병이 우리 삶에 미치는 악영향은 코로나19 못지않을 정도로 이처럼 크다.
 
가축전염병은 확산 방지가 최선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나드는 가축전염병은 한 나라의 노력만으로 대처하기가 어렵고 새로운 가축 질병은 유효한 치료에 한계가 있어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구제역과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등 우리에게 익숙한 다른 바이러스성 1종 가축전염병도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다. 소·돼지·양 등 발굽이 갈라진 우제류에 발생하는 구제역은 2019년 1월 이후 4년여 만인 지난 5월 다시 발생했다. ASF도 야생 멧돼지의 활동 범위가 넓어지면서 이달까지의 발생 건수가 이미 지난해 총계를 넘어섰다. 또한 철새가 대거 도래하는 겨울철에 대유행하는 고병원성 AI도 최근 일본에서 고병원성 AI 항원이 검출되면서 국내 유입 시기가 앞당겨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럼피스킨병은 인간에게는 전염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유통되는 소고기와 우유 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살처분 비용이나 피해농장주의 트라우마도 무시못할 사항이다. 또한 가뜩이나 높은 고물가로 영세민들의 신음 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지금, 축산물 가격이 더 이상 들썩이지 않도록 하는 수급 안정도 무척 중요하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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