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회 전경. 사진=투데이코리아
▲ 국회 전경. 사진=투데이코리아
야당이 고유가와 고금리 상황 속에서 정유사와 은행들이 최고 수익을 얻고 있다며 횡재세(초과이익세) 도입해야 된다고 주장하자, 정재계 안팎에서는 시장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라는 비판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특히 횡재세와 관련해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확정된 바가 없다고 잘라선 상황에서, 제1야당 대표가 직접 나서 다시 도입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시장에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절치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또한 국회에서도 우리나라 정유사의 경우 원유 생산·정제 등을 모두 수행하는 해외 메이저 정유사들과는 수익구조가 다르다고 분석하며, 횡재세 도입이 적합한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산업계 역시 호황일 때 돈 내놓으라고 하면 불황일 땐 오히려 정부가 나서서 도와줘야 된다는 격앙된 반응과 함께 일각에선 법인세를 내는 만큼 ‘이중과세’가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은행에 대한 횡재세 도입을 두고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자칫 재정 건전성이 흔들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실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8월 말 기준 국내은행의 원화대출 연체율은 0.43%로, 전년 동기 대비 0.19%p가량 상승한 상황이다.

이복현 금감원장도 올해 초 임원회의에서 “결산 검사를 통해 대손충당금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손실흡수능력을 확충하도록 유도할 계획”이라고 밝히며 불확실한 경기에 대응해 여유자금을 충분히 쌓을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이에 5대 금융지주가 올해 3분기까지 쌓은 충당금 규모는 8조6,840억원에 달한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161.6%(3조3,194억원)가량 늘어난 규모다.
 
하지만 충당금과 관리비 등이 늘어나면서 은행의 수익성 지표는 나빠졌다. 4대 은행의 자기자본이익률(ROE) 평균은 올해 상반기 10.79%로, 전년 동기 보다 1.41%p나 하락했다.
 
이러한 상황 속 ‘횡재세’ 도입이 현실화될 경우 은행의 손실흡수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이다.
 
국회도 은행에 횡재세를 부과하는 것을 두고 “국내에 진출한 외국계 금융회사의 해외 이전을 촉진시킬 수 있다”라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또 영국이나 이탈리아, 미국, EU 등에서도 에너지기업만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점도 문제점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가장 우려가 되는 부분은 에너지나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업종으로까지 재세 부과가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이다. 양경숙 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법인세법 개정안을 보면 주권상장법인에 대해 직전 3년 소득금액 20% 초과액에 법인세를 추가 납부하는 내용이 담겼다.

이를 두고 재계에서는 해당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는 경우 주요 대기업들에게도 횡재세를 부과할 수 있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된 것이란 지적을 내놓고 있다.

또한 정치권에서는 이복현 금감원장을 두고 관치금융이라고 주장했던 민주당이 은행에 대한 횡재세 도입이란 카드를 꺼낸 것을 두고 이율배반적이라는 강도 높은 비판도 쏟아지고 있다.

‘횡재세’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부각된 가운데, 전문가들은 시장 원리에 걸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연일 펼치고 있다. 일부 법조계 관계자는 이중과세를 직접적으로 규율하는 명문 규정이 헌법상엔 없지만, 헌법 23조 1항 재산권 보호 조항과 37조 2항 과잉금지 조항의 해석에 따라 위헌이 될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또 민주당이 ‘민생 정책’임을 강조하며 은행에 대한 횡재세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국회 정무위원회와 기재위원회의 검토보고서에선 은행에서 초과이익을 서금원에 출연할 경우 미소금융, 햇살론유스 등 서민 금융생활 지원사업이 활발해지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물론 은행이 막대한 이자 수익을 얻는 것을 두고 제1야당뿐만 아니라 금융당국까지 나서서 압박하는 것이 문제라는 시선도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최근 “은행이 금리 쪽으로만 수익을 내니 서민 고통과 대비해 사회적 기여가 필요하다는 얘기가 나온 것이고 횡재세도 그 맥락”이라고 밝혔고, 이복현 금감원장도 “은행이 반도체나 자동차만큼 다양한 혁신을 해서 60조원의 이자수익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은행 산업에 계신 분들도 현실적 판단을 해야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내었다.
 
또 대통령이 직접 은행의 이자 장사를 지적하며 ‘종노릇’, ‘갑질’이라고 언급한 것 역시 적절치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결국 은행권에서는 ‘그놈의 60조원’이라는 한탄과 함께 ‘그 돈을 다 내놔야지 끝난다’는 자조 섞인 농담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횡재세’가 아닌 은행권의 자발적인 상생금융을 늘려야 한다고 보고 있다. 또 금융당국이 전천후의 압박만 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해야 할 역할과 민간이 해야 될 역할을 분명히 갈라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현재 정부가 해야 하는 일까지 은행이 대신하는 스탠스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들의 주된 주장이다.
 
정유업계도 마찬가지다. ‘횡재세’ 도입 이전에 정유업계가 처한 현재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돈을 내고 원유를 사 오는 만큼 외부환경 변화에 따라 유가 변동에 민감해 정제마진이 하락하면 수익이 급락하고 있다. 실제 올해 상반기 정유사들은 정제마진 하락 등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2014년과 2020년 당시에도 정유사가 대규모로 적자를 기록했지만 정부가 보전해줬다는 사례는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국민들에게 정유사가 돈을 많이 번다고 횡재세를 물린다고 발표해봤자, 대다수의 국민들은 총선을 앞둔 ‘표퓰리즘 정책’이란 생각 밖에 안들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자면 횡재세 같은 이분법적인 법안이 아닌 대형마트 영업휴무일에 온라인 배송을 허용해주는 유통산업발전법이나 전기자동차와 수소차 등 미래 자동차 산업을 육성·지원하는 ‘미래 자동차 육성 특별법’, 드론이나 로봇이 택배 등을 운송할 수 있도록 하는 ‘생활물류 서비스 산업 발전법’ 개정안 등 민생과 밀접한 법안들이 조속히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도록 여당과 협조하는 것을 국민들은 절실히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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