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최근 국가 행정전산망 장애로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올 스톱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지난 17일 오전 전국 시군구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업무에 이용하는 행정전산망에 장애가 발생한데 이어 오후에는 정부 민원 서비스인 ‘정부24’마저 중단돼 주민등록·초본과 인감중명 발급 및 전입 신고 등 온·오프라인 민원 창구가 사흘간 모두 막혔다.

이 전산망 장애로 신분증 진위 확인을 통해 사용자를 검증한 뒤 시스템 접촉을 가능하게 해 주는 기능에 문제가 생기면서 주요 금융기관의 계좌 개설과 대출 업무 등 신분증 확인이 필요한 각종 업무가 멈추고 법원 인터넷등기소의 일부 서비스도 중단됐다.
 
이로 인해 전국 곳곳에서 민원인들이 발길을 돌리는 등 많은 불편이 야기됐고 부동산 계약 차질과 금융거래 중단 등 경제적 피해가 속출했다. 온라인과 모바일 기기로 짜인 초(超)연결사회의 취약성이 여지없이 노출되면서 첨단 현대사회와 석기시대의 격차가 불과 종이 한 장 차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국민이 접속하는 시스템이 먹통이 된 사례는 한두 번이 아니다. 올해만도 국가기관의 전산망 불통이 세 번째다. 지난 3월에는 법원 전산망이 먹통됐고 6월에는 교육행정 정보 시스템인 나이스(NEIS)의 접속이 끊겨 교육현장에 큰 혼란이 초래됐다. 약 1년 전에는 국세청 통합 전산망에 문제가 발생, 2시간 이상 전국 세무서 업무가 중단됐고 2021년에는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 과정의 시스템 오류로 많은 이용자가 불편을 겪었다. 2018년에는 서울 KT 아현지사의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 서울과 경기도 일부 지역에서 KT를 통한 휴대전화, 유선전화, 초고속인터넷, IPTV 서비스가 이뤄지지 않았다.
 
시스템 오류나 화재, 단전 등으로 인한 사고는 아무리 철저하게 대비해도 미연에 방지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사고 발생시 신속한 복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번처럼 장애 발생 4일이 지나도록 명확한 원인을 밝혀내지 못하고 사고에 대비한 비상 매뉴얼 조차 없었다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정보통신기술 발달로 모든 행정이 디지털화하면서 온갖 데이터가 축적되고 있다. 개인과 기업, 공공기관이 통신 네트워크에 의존하지 않고는 단 한순간도 살아갈 수 없는 초연결사회가 된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을 바꿀 수 없다면 안전성을 높이는 것 외엔 다른 길이 없다. 자료관리 역량을 키우고 보안의식 강화와 오작동 대비책을 마련. 사고 이후 피해를 최소화하는 수밖에 없다.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의 전산망은 해커 등의 공격에 취약한 것으로 지적돼 왔다. 다행스럽게도 이번 사고는 해킹으로 인한 장애는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정보원 발표에 따르면 북한과 중국, 러시아 배후 해커 조직의 올 상반기 사이버 공격 탐지 건수는 작년 동기 대비 15% 증가한 137만 건이나 된다. 이 중 70%가량이 북한 연계 조직 소행이라고 한다. 북한은 초등학교 때부터 과학영재를 별도 관리해 해커로 키우고 있다. 해커집단이 무려 1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사이버 공격은 최근 들어 더욱 지능화, 고도화하고 있다. 특히 북한은 기밀 탈취를 넘어서 암호화폐망을 공격, 자산을 빼돌리고 세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의 사이버 공격은 과거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여러 차례 주도한 김영철 전 노동당 대남비서의 일선 복귀로 더 기승을 부리지 않을 까 우려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대형 사이버 도발로 사회 혼란을 유도할 가능성이 높다. 김영철은 2009년 7월 정부기관 전산망을 마비시킨 7·7 DDoS 공격, 2011년 농협 전산망 파괴 등을 주도한 인물이다.
 
이번 사고는 행정 전산망이 마비되면 어떤 불편과 혼란이 발생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천재지변 등 국가 비상사태가 아닌데도 공공기관의 민원서류 발급이 전면 중단됐다. 행정망이나 전력망·통신망 등 국가 기간망의 작동 불능은 국가 재난으로 이어진다. 이번보다 훨씬 더 큰 사고가 발생한다면 경제·사회 시스템 자체를 뒤흔드는 대혼란이 빚어질 것이 분명하다

초첨단 통신, 자율주행차, 인공지능 같은 문명의 이기가 아무리 발전한다 해도 안전하지 않다면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행정 전산망 전체에 대한 사전·사후 안전대책을 재점검, 재난 대응 체계를 좀 더 정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 전산망의 서버 이중화나 백업 관리 등 데이터 안정성과 보안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이고 신속한 복구 대응 체계를 마련해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철저한 원인 규명을 통해 향후 유사 사고 재발을 방지해야 하겠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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