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문 취재국장
▲ 김태문 취재국장
2000년대 중반 이전까지 정부와 그룹 홍보실 직원들의 주요 임무 중 하나는 ‘가판신문(초판신문)’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오후 6시를 넘긴 시간이면 서울 세종대로 사거리나 동아일보 사옥 앞은 가판신문을 보려는 ‘홍보맨’들로 북적였다. 내일의 가판신문을 입수해 자신들과 관련된 기사가 있는지를 미리 확인하고 상부에 보고해야 했기 때문이다. 조직에 악영향을 미치거나 비판적인 기사를 사전에 확인해 ‘신문지상’에서 제외시키는 일은 홍보 담당자들에게는 핵심 임무였다. 홍보맨들 사이에서 전해져오는 이른바 ‘가판당직’이 얘기다.
 
남들은 퇴근해야 할 시간에 사무실로 복귀해 가판신문에서 확인된 ‘나쁜 기사’를 상부에 보고해야 하는 홍보맨들의 심정은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 비판적인 기사나 특히 오너의 사생활과 관련된 기사가 실렸다면 그 심정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을 것이다. 홍보맨들의 퇴근길 명암을 ‘기자의 펜’이 좌지우지하던 시절이었다. 더구나 이들에게는 ‘천당의 날’보다는 ‘지옥의 날’들이 더 많았을 것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신문은 한두 개가 아니었고, 대개는 기자들이 좋은 기사보다는 비판적인 기사를 쓰기 마련인 까닭이다.
 
‘지옥의 날’에 홍보맨들은 새벽 가정 배달판 신문이 나올 때까지 ‘초비상 상태’로 밤을 새워야 했다. 비판적인 기사를 신문지상에서 없애거나 논조가 조금이라도 바뀌게 해야 했기 때문이다. 가판신문은 내일 신문의 내용을 하루 전 볼 수 있다는 매력?을 지녔지만 그 매력은 언론과 관공서·기업들이 벌이는 ‘거래의 매개체’가 되기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쨌든 홍보맨들은 누구보다 ‘가판신문’에 울고 웃었다.
 
물론 홍보맨들의 ‘가판신문 애환’은 인터넷이 활성화되지 않던 시절 얘기다. 가판신문은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2000년대 중반 사실상 사라졌다는 게 중론이다. 그러나 가판신문은 공식적으로 없어졌을지 모르지만 ‘홍보맨들의 애환’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가판당직’이 이젠 인터넷으로 옮겨왔을 뿐이다. ‘인터넷 가판당직’이라고 할 만하다.
 
기자가 20여 년 전의 ‘가판신문’과 ‘가판당직’ 얘기를 꺼낸 건 올해도 한 달을 채 못 남긴 상황에서 그동안 만난 수많은 홍보직원들의 얼굴이 아른거리기 때문이다. 기자는 이들의 얼굴과 목소리에서 ‘인터넷 가판당직’의 애환을 언뜻 엿볼 수 있었다. 이들에겐 전쟁터와 같다. 처음 한 개의 화살이 날아온 후 곧이어 우수수 떨어지는 식의 현 ‘인터넷 가판신문’ 환경은 어쩌면 홍보맨들에게는 더 가혹한 ‘언론 생태’일 것이다. 2000년대 중반 이전의 ‘가판신문’ 시절보다는 더하면 더 했지 덜 하지는 않을 것 같다. 가판신문 당시의 홍보맨들은 하루에 한 번 ‘가판당직’을 섰지만 ‘인터넷 가판’ 시대의 홍보 직원들은 수시로 가판당직을 서고 있는 셈이다.
 
홍보실 업무는 ‘잘해야 본전’이라는 말이 있다. 무엇보다 ‘인터넷 가판’ 시대에 관공서와 기업 조직 내에서부터 홍보팀을 바라보는 인식이 달라져야 한다. 기자들의 취재 시 홍보팀의 관련 자료 요청에 대해 제때 대응하지 못해 자칫하면 홍보팀이 언론과 조직에 낀 상태가 되게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정확하고 시의적절한 정보 제공은 홍보팀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게 하고, 이로써 조직의 홍보 효과는 배가 된다.
 
홍보팀을 사랑하는 조직은 밖에서도 사랑받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홍보맨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1년간 정말 고생 많았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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