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위, 확성기 사라진 그늘도 돌아보아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정부가 지난해 12월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 주도로 건설 현장에서 폭력을 앞세워 위세를 부리는 건폭(建暴)에 대해 집중 단속에 나선 지 1년이 지났다. 윤석열 대통령이 조직적 불법행위에 강력 대응하라고 지시하면서 ‘건폭과의 전쟁’이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노조 측에서는 ‘건폭 몰이’ 또는 ‘노조 때려잡기’라는 반발이 즉각 터져 나왔다. 정부는 법 대신 폭력과 시위가 날뛰는 현장을 반드시 평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조는 정당한 활동을 보장하라고 주장한다.
 
일본어에서 유래한 ‘노가다’나 ‘오야지’라는 말이 아직 공사판에서 널리 쓰이는 것처럼 건설 현장의 인력 운용과 임금 체계, 작업 내역은 지난 수십년 관행이나 구태에서 비롯된 부분이 적지 않다. 건폭을 강력 단속하겠다는 정부 발표에도 말보다 위력, 비합법적 행동이 앞서는 공사판 악습을 과연 단기간에 몰아낼 수 있을지 의구심부터 든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문재인 정부가 비합법적인 노조 활동을 사실상 묵인해주는 미온책으로 일관해 건폭의 폐해가 공사판 고질로 굳어지는 단계였다. 건설회사가 입주한 건물이나 공사 현장 부근은 행인들이 가급적 피해 다녀야 하는 곳으로 꼽혔다. 검붉은 깃발 뒤에서 울리는 날카로운 확성기 소리가 귀를 울렸고 시위 영향으로 차량 통행과 보행이 막히기 일쑤였다. 심지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산하 조직들이 나서 서로 타워크레인과 일감을 차지하겠다며 시위 경쟁을 벌였다.
 
정부가 건폭 단속을 강화하면서 최소한 고성능 확성기로 사업장 인근 시민을 괴롭히거나 인력 채용을 강요하는 시위는 거의 사라진 듯하다. 건설사의 현장 관계자들은 시위가 줄면서 노조가 인력 채용을 강요하는 사례와 갖가지 명목으로 뜯어가던 비용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정부가 지난 1년간 건폭을 집중단속해 4800여명을 입건했고 이중 검찰이 공동 공갈과 강요, 업무방해 등 혐의로 144명을 재판에 넘긴 결과 모두 유죄판결을 받았다. 국토부와 함께 경찰, 검찰, 고용노동부 등이 나서 단속한 결과다. 충북의 건설 현장에서는 조직폭력배들이 노조원들을 동원, 집회를 열겠다며 건설사를 협박해 8000여만원을 가로챈 사례도 드러났다. 민원 등을 통해 조직적으로 공사를 방해하는 현장이 아직 남아 있지만 종전에 비해 강도는 훨씬 약해졌다고 한다.
 
그러나 노조 반응은 평온하다는 느낌과 거리가 멀다. 정부가 건폭 몰이에 나선 이후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들이 겪는 부조리가 심해졌다고 주장한다. 하청 업체들이 ‘일을 하려면 노조를 탈퇴해야 한다’고 압력을 가하고 노조 소속이 아닌 노동자들의 일당을 깎기도 한다는 것이다. 종전에는 조합원들로 구성된 노조팀이 시공사 일감을 따내 안정적으로 일자리를 분배했는데 건폭 몰이로 노조가 후퇴하면서 간접 도급이 다시 성행, 고용 여건이 매우 불안해졌다는 반론이다. 하루 벌어 하루 사는 노동판에서 고용불안은 노동자 생계를 위협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하청 업체에서 일감을 따오는 재도급팀장은 부친을 뜻하는 일본말 ‘오야지’로 통할 정도로 노동자 생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재도급팀장은 노동자들을 원하는 하청 업체에 소개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감을 따내 기한 내 공사를 마치겠다는 식으로 몰아서 계약하고 노동자들을 알음알음 골라 쓴다. 재도급팀장의 결정에 따라 노동자 고용이 좌우되는 게 현실이다.
 
노조팀원이 재도급팀 소속 비노조원에 비해 고용과 처우에서 유리하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건설노조 가입 인원은 지난해 상반기 7만명을 넘어섰다가 건폭 단속 강화와 함께 꺾이는 추세로 돌아섰다고 한다. 노조원들을 꺼려 재도급팀에게 일을 넘기는 하청 업체가 증가한 영향으로 보인다. 재도급팀장 역할이 다시 커지면서 일감을 얻기 위해 노조를 떠나는 노동자가 늘고 일당이 깎이거나 제때 받지 못한다는 현장 보고가 많다. 폭력 행위를 겨냥한 단속이 아니라 노조 축출을 위한 총공세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폭력이 아닌 나눔과 화평 뜻 되새겨야

 
건폭 단속의 주된 목표는 불법행위에 있다. 노조를 앞세워 건설 현장에서 불법 시위를 벌여 일감을 차지하거나 업체를 협박, 금품을 뜯어내는 행위를 처벌하겠다는 것이다. 문 정부가 노조 눈치를 보며 미온적으로 대처해 곤욕을 치렀던 업체들은 건폭 단속을 당연히 지지했고 국민 여론도 매우 우호적이다. 그러나 단속이 지나쳐 합법적인 노조 활동까지 위축시키는 잘못은 없어야 한다. 건전한 노조 활동을 보장함으로써 불안한 고용 여건과 불법 재도급 실태 등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를 외면했다가는 더 심각한 화를 부를 우려가 크다. 공사판 노동자들이 처한 현실이 그만큼 절박하다.
 
이 기회에 노조를 내쫓아 기강을 확실히 잡고 건설 현장의 평화를 되찾겠다는 과욕은 부당 노동행위에 해당한다. 그동안 금품과 일자리에 미련을 두고 시위와 폭력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노조와 크게 다를 바 없는 욕심이다. 건폭과의 전쟁 1년을 맞으면서 어느덧 성탄절이 다가왔다. 증오와 폭력 대신 평강과 나눔의 기쁨을 함께 누리려는 큰 의미를 되새길 때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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