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보완, 교육환경·조직문화 개선에 진력할 때

▲ 류석호 교수
▲ 류석호 교수
2023년 계묘년(癸卯年) 한해 나라를 요동치게 했던 대표적 이슈 중 하나가 교권(敎權, 교사로서의 권위와 권리)문제가 아닐까 한다.

나라의 백년지계(百年之計)인 교육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온전히 작동하지 않는다면 현재는 말할 것도 없고 장차 국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때문에 공교육 현장에서 교육의 근간을 이루는 교사가 위축되지 않고 성심성의를 다해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와 함께 교사 존중 풍토 조성 등 교육환경을 개선하는 일이 시급하다.

우리의 교육현장은 참담한 상황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지난 7월 29일, 33도 땡볕에 전국 교사 3만명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인근에서 '서이초 교사 추모 및 교권 회복 촉구' 집회를 연 것이 오늘 한국 교육의 현주소를 웅변한다.

이들은 내리쬐는 땡볕과 아스팔트가 뿜어내는 열기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교육현장의 교권 침해 실태를 고발하고 대책을 요구했다.

앞서 11일 전 교내에서 숨진 서울 서이초 1학년 담임 A교사는 생전에 “금쪽이”, “가스라이팅으로 느껴진다”, “학부모가 개인 전화로 여러 번 연락해 소름 끼쳤다”는 말을 하며 고충을 털어놓았다.

교사들의 서이초 교사 추모 집회는 지난 7월 22일부터 9월 4일까지 전국적으로 40일 넘게 이어졌다.

올해 유독 학부모의 갑질과 민원, 제자의 폭행 등으로 인한 교사들의 피해가 잇따랐다.

서울 서이초 교사와 지난 7월 알려진 서울 상명대부속초 기간제교사, 경기도 의정부 고등학교 교사의 극단적 선택, 서울 양천구 초등학교 6학년생의 담임교사 폭행사건, 웹툰작가 주호민씨 교사 고소사건 등.

극단적 선택을 한 교사들은 학부모의 무리한 민원과 폭언·협박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다 끝내 압박감을 이기지 못했다.

모름지기 교육의 3박자는 교사와 학생, 학부모다. 교사는 수업을 연구하고 공동체 생활에서 마땅히 배워야 할 생활지도를 한다. 학생에게는 그것을 받아들이는 올바른 태도로 집중이 필요하며, 가정은 학생이 개인의 삶 속에서 배움이 연장될 수 있도록 학교 교육과 흐름을 같이 해 전반적으로 지도를 해야 한다는 것은 교육의 상식이자 원칙이다.

그렇지만 지금의 교육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최근 잇따른 학교 악성 민원과 교사의 교육 활동 침해 배경에 학생인권조례가 있다고 지적한다.

학생인권조례는 2010년 경기도가 처음으로 제정했으며, 현재 서울 광주 경기 전북 제주 등이 시행하고 있다. 학생의 권리만 나열하고 책임·의무에 대한 규정은 없어 ‘교실 붕괴’의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조례의 휴식권 조항은 학생이 수업 중 잠을 자도 교사가 깨우기 어려운 상황을 만들었고, 차별금지 조항은 교사가 특정 학생을 칭찬하면 다른 학생의 민원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됐다.

학생인권조례는 교사에 대한 신고·조사 요구권, 복장·두발 자유, 휴대전화 강제 수거 금지 등을 담고 있는데, 이는 진보 성향 교육감들이 2010년부터 추진한 정책이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15일 충남도의회가 ‘교권 추락’의 한 원인으로 꼽히는 학생인권조례를 전국 최초로 폐지했다는 사실이다.

교육부는 최근 교사·학생·학부모 모두의 책임과 권리를 동일하게 명시하는 내용의 개정안을 권고했다.

교육부는 특히 올해 불거진 교권 침해와 학교폭력 등 중대한 교육 현안에 대응하기 위해 관련 조직을 재편한다. 학부모 지원을 전담하는 부서도 11년 만에 되살린다. 지난 1일 교육부는 이 같은 조직개편안을 담은 '교육부와 그 소속 기관 직제 시행규칙 일부 개정령안'을 입법예고했다.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1월 1일 시행한다.

미국, 핀란드, 독일, 영국의 경우, 학생과 학부모가 교사에게 행패를 부리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교권을 보호하는 법적 장치가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런 나라들에서 교권을 침해한 학생·학부모에 대해 사용하는 각종 응징 수단은 한국 기준에서 볼 때엔 가혹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회원국 10만5000여 중학교 교사를 조사해 발표한 '교수·학습 국제 조사(TALIS) 2013'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중학교 교사 중 '교사가 된 걸 후회한다'고 답한 비율이 20%로 OECD 34개 회원국 중 1위를 차지한 것으로 나타난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교사를 존경한다"는 응답은 11%에 그쳐 한국은 21개 조사국 중 꼴찌를 기록했다.

지난 9월 21일 교원의 정당한 생활지도를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면책 조항을 담은 '교권 보호 4법'이 국회를 통과했다곤 하지만,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우리 사회가 왜 그간 교사들의 절규를 외면했는지 그 이유를 찾아내 바로잡는 근본적인 변화가 뒤따르지 않는 한 이런 유형의 비극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법에 교사의 교육활동권 보장 근거가 마련돼 있는 핀란드 사례가 참고할 만하다고 하겠다.

핀란드의 교육활동법에는 구체적으로 △다른 학생을 위협하거나 위협할 가능성이 있는 다급한 상황에서 교사가 학생에게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 △학생으로부터 위험한 물건을 강제 압수 및 위험 물건을 보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학생의 소지품 검사 권리(교사 2명 이상의 결정이 있을 때만 가능) △학생이 훼손하거나 더럽힌 학교 기물ㆍ환경을 스스로 복구할 의무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핀란드에서는 교사를 모욕한 16세에게 500유로(약 72만 원)의 벌금형이 선고되기도 했다.

우리나라도 학생이나 학부모의 과도한 수업 방해 행위를 교사가 통제ㆍ관리할 수 있는 ‘교사의 긴급행동권’을 법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는 게 교육 전문가의 조언이다. 부디 2024년 갑진년(甲辰年) 새해엔 힘과 행운을 상징하는 청룡(靑龍)의 기상으로 교육현장이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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