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차기 대법원장 후보자로 지명된 조희대 전 대법관이 9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본관 현관에서 안철상 선임 대법관을 접견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조희대 신임 대법원장. 사진=뉴시스
지난해 사법부는 혼란의 한해였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지난 1988년 정기승 대법원장 후보자 이후 35년 만에 이균용 대법원장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되면서 초유의 사법수장 공백사태가 발생했으며, 헌법재판소장도 임명 절차가 지연되면서 일시적인 공백이 발생했었다.

다행히도 조희대 전 대법관이 74여일만에 대법원장으로 취임하면서 이러한 사법공백은 해결됐지만, 아직 가장 큰 문제는 해결될 기미 조차 보이지 않은채 오래된 관행처럼 남아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바로 ‘여론재판’이다.

최근 법조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가장 많이 나오는 이야기는 여론재판으로, 일부 판사들의 경우 자신이 심리한 재판이 신문이나 인터넷신문에 기사로 나오는 것 조차 부담스럽다고 토로하곤 한다.

이는 지난해 유력 정치인의 재판 결과에 반대하는 일부 인사들이 판사 개인의 SNS 발언을 두고 판결과 함께 문제 삼으면서 논란이 되었던 부분으로, 최근에도 주요 정치인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심리하던 판사가 사표를 제출하며 자신에게 제기된 ‘재판 고의 지연’ 의혹에 대해 “원님재판”이냐며 억울하다는 심정을 내비치기도 했다.
 
또 주요 인사들의 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있을 땐 구속 여부를 심리하는 판사가 과거엔 누구를 구속시켰고, 누구는 기각시켰다는 내용들이 정리되어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것도 공정한 재판을 방해할 수 있는 요인 중 하나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검찰이나 경찰 위주의 보도도 문제라는 비판으로도 이어진다.
 
죄의 유무는 검찰의 압수수색이나 소환조사가 아닌 법원의 재판을 통해서 밝혀지게 되지만, 현재의 보도들은 대부분 검찰에 포커스가 맞춰있어 소환조사나 압수수색이란 단어가 들어가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지었다는 착각을 하여금 만들게 하고 있다.
 
이는 헌법상 대원칙인 피고인이 유죄로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된다는 원칙과도 위배되는데, 주요 기업인들의 경우 이러한 원칙들은 정말 쉽게 무너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대표적으로 SPC그룹의 사례가 있다. 검찰의 SPC그룹 압수수색 관련 기사들은 수사 중인 사안에 ‘의혹’이란 단어가 붙여져 자극적으로 보도되고 있는데, 이는 본격적인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대중들로 하여금 SPC그룹이 ‘대단히 잘못한 기업’이라는 오해를 불러 올 수 있다는 비판이 지배적이다.
 
또한 검찰은 최근 허영인 SPC 회장을 오너 일가 증여세 회피를 목적으로 계열사 주식을 저가에 판 혐의로 징역 5년을 구형했는데, 이를 두고 법조계 일각에서는 배임죄의 경우 자신에게 이익이 아닌 손해가 나는 매각을 하는 경우 문제를 삼기 어렵다는 견해가 나온다.
 
특히 식품 등 유통기업들은 소비자가 직접 제품을 구매하다보니 기업의 이미지가 매출에 직결되는데, 충분한 취재나 확인 절차 없이 검찰이나 특정 인사들의 말만 자극적으로 받아쓰는 보도가 계속되면 소비자들로 하여금 혼동을 주고 이는 기업에 악영향을 준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배우 이선균도 비슷한 사례다. 이선균은 정식 입건이 되기 전 지난해 10월 19일 수사선상에 올랐다는 사실이 최초 보도된 후 범죄 혐의가 확인되지도 않았지만 자극적인 보도에 노출됐다.

이를 두고 봉준호 감독을 비롯한 문화예술인들은 최근 기자회견을 열어 “피의자 인권과 국민의 알권리 사이에서 원칙과 예외가 뒤바뀌는 일이 없도록 명확한 입법적 개선이 필요하다”며 국회에도 형사 사건 공개 금지와 인권 보호를 위해 관련 법령을 제·개정해달라고 요청한 상황이다.
 
물론 죄를 지은 것에 대한 수사를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로 아니다.

죄를 지으면 처벌 받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이를 위해선 검찰과 경찰의 수사도 필요하다. 또 검찰이나 경찰의 수사권을 제한하자는 취지도 절대로 아니다.

다만,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것과 같이 수사 과정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거나 자극적인 내용으로 얼룩진 검찰 관계자발 피의사실 공표는 멈추자는 것이다.

영국의 법학자인 윌리엄 블랙스톤은 10명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 명의 무고한 사람이 고통받으면 안 된다(it is better that ten guilty persons escape than that one innocent suffer)고 말하며 무죄추정의 원칙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현실은 무죄추정의 원칙이 제대로 이뤄지고 있는 지 부터가 의문인 상황이다. 국민의 알권리도 당연히 중요하지만, 여론을 너무 이용하는 일부 검찰과 경찰의 행태가 억울한 여러 사람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되묻고 싶다.

결국 수사의 본질적 내용을 수사동력 확보를 위해 여론몰이식으로 흘리는 행위는 이젠 근절되어야하는 악질적인 행태이며, 재판부도 여론과 감정의 잣대로 판결하는 것이 아닌 공정한 기준으로 판결하길 바란다.

또 정치권과 주요 인사들도 재판부의 판결을 두고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재판과 상관없는 판사 개인의 사생활을 운운하며 불복하는 일도 다시는 일어나지 않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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