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규제혁파 위한 실행계획 서둘러야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윤석열 대통령이 부동산 정책의 일대 전환을 예고하는 대담한 구상을 발표했다. 최근 열린 ‘국민과 함께하는 민생토론회’에서 부동산 시장의 순기능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와 세제를 개혁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정부는 아울러 이를 뒷받침하는 ‘1·10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30년 넘은 노후 주택에 대해 안전진단을 먼저 통과하지 않더라도 재건축·재개발 추진을 허용하겠다는 방침이 우선 눈길을 끌었다. 이를 통해 사업 기간을 3년 정도 앞당겨 임기 내에 전국 100만 가구 이상의 재건축·재개발을 시작한다는 내용이다.
 
일산 신도시 아파트를 방문한 윤 대통령은 누수와 외풍, 주차난이 심각한 노후 주택을 다시 짓겠다는 주민 열망을 무슨 근거로 막느냐며 정부의 진정한 역할은 규제가 아닌 지원이라고 강조했다. 오랜만에 통치권자에게 직접 들어보는 정부 역할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과 논의였다. 주민들과의 토론에서 철폐해야 할 대표적인 규제로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에 대한 중과세를 지목했다. 그는 다주택자들을 집값 올리는 부도덕한 사람들로 몰아 징벌적 과세를 해 온 것은 매우 잘못된 정책이라며 중과세를 철폐하겠다고 선언했다. 중과한 세금이 결국 경제적 약자인 임차인에게 떠넘겨져 피해를 보게 된다고 지적했다. 부동산 문제를 정치와 이념에서 해방시켜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작동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지론이었다.
 
건설사의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부실과 1900조원에 육박하는 가계부채 규모, 주택거래 부진 등 어려운 여건을 감안해 1·10 대책에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한다 평가가 먼저 나왔다. 늘 그러하듯 건설업계의 반응이 발빠르게 움직였다. 주택시장이 침체기로 들어선 시점이라서 규제 완화가 집값을 자극할 위험은 그리 크지 않다는 분석이 따랐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이 부동산 안정화를 내세워 4월 총선을 앞두고 노골적으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며 ‘파렴치한 포퓰리즘 정책’이라 비난했다. 이번에 나온 대책들은 대부분 법 개정이 필요한 사항인데 야당과 소통 없이 즉흥적으로 발표했다고 지적했다.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에 거는 서울과 수도권 주민들의 뜨거운 기대와 주택경기에 미칠 영향 등 반응을 보면 윤 대통령 다짐이 오는 4월 총선과 무관하다고 선을 긋기는 어렵다. 4년 전 총선에서 근소한 표차로 지역구의 당락이 엇갈렸던 경험과 최근 여론조사 흐름이 이번 총선의 치열한 경합을 예고한다. 주민들의 기대 심리가 미칠 민감한 변화를 간과하기 어렵다. 그렇다고 정부 발표를 포퓰리즘으로 단정하기에는 정책 전환의 무게나 그 의미가 그리 간단치 않아 보인다. 포퓰리즘(populism)은 정치적 지지를 얻기 위해 현실성보다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행태를 의미한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1·10 대책은 규제 혁파를 통한 시장경제 원리 회복이라는 부동산 정책의 선회를 의미한다. 시장경제를 통한 경쟁과 효율성 추구를 단순한 인기 영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시장 기능 살릴 패러다임 변화 필요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를 폐지하겠다는 발언은 그동안 다주택 보유를 투기로 간주해 양도소득세와 취득세, 종합부동산세 등을 무겁게 물리고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몰았던 편협한 주택정책에서 벗어나 패러다임의 변화를 추구하겠다는 선언으로 들린다. 마치 해파리가 그물망에 덕지덕지 붙은 것처럼 중첩된 각종 규제와 징벌적 세제를 뜯어내고 인식 변화를 통해 합리적인 거래 질서와 세제를 도입하겠다는 의욕이다. 그러나 투기를 막아 무주택자에게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더해 주려면 다주택자를 시장에서 배제해야 마땅하다는 인식을 단시일에 바꾸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통치권자가 나서 변화를 촉구한다 해도 국민의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이 따라주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렵다.
 
그런 의미에서 야당 주장처럼 법 개정을 거쳐 다주택자 중과세 폐지를 정착시키기까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오피스텔과 다세대 등 소형 주택과 지방 미분양 아파트, 인구 감소 지역의 주택 등을 새로 사면 보유 주택 수에서 빼 세금혜택을 주기로 했다. 지방 미분양 주택 매입에 따른 세금혜택은 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가능하지만 인구 감소 지역 주택에 대한 혜택은 국회에서 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켜야 성사될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제시한 다주택자에 대한 중과세 폐지로 양도세와 취득세, 보유세까지 범위를 확대하려면 야당과의 협조를 통한 세법 개정은 물론 국민 인식 변화라는 큰 과제를 풀어야 가능하다.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이 모두 나서 정책 과제와 해법을 제시하고 일정 부분 야당의 협조까지 끌어내 국민 여론에 호소해야 한다.
 
국토교통부가 나서 다주택 규제를 제한적으로 완화하는 후속 대책을 내놓기는 했으나 국민 여론을 환기하고 세법 개정을 본격 추진하기 위한 여당과 범정부 차원의 움직임은 아직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우선 4월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해야 법 개정과 여론몰이가 이뤄질 수 있다는 안이한 판단인 것 같다. 마치 대통령이 나서 여론을 떠보고 정부는 뒷짐 지고 기다리는 모습이다. 주택시장 기능을 되살리겠다는 대통령 구상은 여론 추이를 기다리는 소극적 대응으로 성사될 과제가 아니다. 일거에 국면 전환이 가능한 무슨 비책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정부는 총선 결과가 나오기까지 손을 놓고 기다릴 게 아니라 정책 개발과 토론을 활성화하고 여당과 함께 여론을 설득할 논리를 부지런히 펼쳐야 한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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