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주인 없는 민영화 기업인 포스코 그룹이 차기 회장 자리를 놓고 무척 시끄럽다. 유일하게 포스코 지분을 5% 이상 보유한 대주주(지분율 6.71%)인 국민연금공단의 김태현 이사장이 최 정우 포스코홀딩스 회장의 3연임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한 지 엿새 만에 포스코 CEO후보추천위원회(후추위)가 최 회장을 차기 회장 후보에서 제외시킨데 이어 후추위 멤버 전원이 호화 외유성 출장 혐의로 고발돼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외풍이 심하다.
 
후추위는 지난 17일 18명의 차기 회장 후보를 확정한데 이어 24일에는 CEO후보추천자문단의 의견을 들은 뒤 이를 12명(내부 5명, 외부 7명)으로 압축했다. 후추위는 오는 31일 추가 심층 심사를 거쳐 후보자를 5명 내외로 재차 압축한 다음 2월 중 대면 심사를 통해 최종 1인을 선정하고, 이사회 의결을 거쳐 이를 주주총회에 상정할 계획이다.
 
포스코는 소유 지분이 분산돼 지배주주 이른바 ‘오너’가 없는 회사다. 포스코·KT·KT&G 등 공기업이었다가 민영화된 기업들과 KB·우리 등 금융지주사가 대표적인 소유분산 기업들이다. 이들 기업은 오너가 없는데다 CEO를 최종 선출할 권한을 가진 주주들이 이 이슈에 무관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보니 정권이 바뀔 때마다 회장직이 정치권의 전리품으로 여져져 왔다. 소유분산기업 CEO의 거취 결정이 있을 때마다 끊임없이 ‘관치’ 논란이 일어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정부가 아예 손을 놓는 것도 능사로 여겨지진 않는다. 기업 내부에서 성장한 ‘경영 엘리트’ 역시 나름의 이권 집단을 형성하려 하기 때문이다.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영달을 위해 회삿돈을 펑펑 써가며 셀프 연임에 안간힘을 쓴다. 대주주의 경영 독단을 견제하고 경영 투명성을 높이라고 앉힌 사외이사들이 과잉 호화 접대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셀프 연임을 노리는 CEO에게 매수돼 호의호식하는 것은 도덕적 해이일 뿐 아니라 배임행위로 지적된다. 그런데도 소액주주들의 집단행동이 활성화되지 않은 현실속에서는 CEO가 방만 경영을 하거나 비리를 저질러도 내부 견제가 잘 작동하지 않는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도입된 사외이사 제도는 시행 30년이 거의 다 돼가는데도 아직까지 경영진의 거수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오너가 있는 기업도 마찬가지지만 주인 없는 대기업에서 CEO가 사외이사를 ‘거수기’로 삼아 셀프 연임을 시도하는 것은 이미 관행이 돼 버렸다. 이러다 보니 사외이사 선정 과정에서부터 전문성보다 경영진과의 친소관계와 정권과의 인연이 작용한다.
 
포스코홀딩스 이사회는 최근 커다란 진통을 겪은 KT처럼 회장 승계를 둘러싸고 공정성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오자 지난 달에 나름의 개혁을 추진했다. 회장 후보 선출 구조를 개선, 현직 회장 우선 심사제를 폐지하고 이를 사외이사로 구성된 후추위가 대신하도록 했다. 또한 외부 인사로 구성된 회장 후보 인선자문단 제도도 도입했다.
 
그런데도 국민연금공단의 김 이사장이 지난달 “사외이사로 구성된 후추위가 주도하는 선임 절차의 공정성에 의문이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공정성 논란이 불거졌다. 급기야 지난 8일에는 후추위원 전원이 호화·외유성 해외출장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로 고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5박7일의 캐나다 이사회 기간 중 하루 숙박비가 175만 원이나 되는 최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실제 이사회는 단 하루만 열고, 나머지는 한끼 식사에 2500여만 원, 헬기 대여에 1억6000만 원을 쓰는 등 회삿돈으로 부당하게 초호화 관광과 골프 등을 즐긴 혐의를 받고 있다.
 
고발된 후추위 멤버들은 호화 이사회 출장에 유감을 표명하고 일부 인사들은 240만 원씩을 긴급히 게워내기도 했다. 그러나 후추위는 입장문을 통해 “지금은 새 회장 선출을 위한 엄정한 심사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중요한 시기”라며 “후추위의 신뢰도를 떨어뜨려 이득을 보려는 시도는 없는지 경계할 필요가 있다”는 소견을 피력, 외압 가능성을 시사하면서 자신들이 신임 회장을 뽑겠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했다.
 
소유분산기업은 대개 국가 기간산업체인 만큼 일반 사기업과 달리 국가 이익을 고려해서 운영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달리 국민연금이 사실상 정부 치하에 있어 국민연금이 주주권을 행사하면 경영 성과와는 무관하게 기업 지배구조의 틀 자체가 흔들린다. 또한 이사회 이사들이 CEO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경우가 많아 서로 봐주는 경향이 강하다. 게다가 사외이사가 감시에 소홀하더라도 사법부에선 잘 처벌하지 않는다.
 
오너든, 전문경영인이든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썩기 마련이다. 뒤늦었지만 이사회가 제 역할을 하도록 시스템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젠 경영진이 잘못된 경영을 했을 때 사외이사도 함께 처벌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미국에선 2001년 ‘엔론 대형 분식회계’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와 관련된 경영진은 물론 사외이사까지 강력한 처벌을 받았다.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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