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 문화 확산이 식용 주장 압도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스포츠 기자로 한창 일할 무렵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SLOOC) 동향을 자주 취재했다. 대회 유치 이후 올림픽공원 내에 위원회 본부가 들어섰고 인근 식당에서 식사할 기회도 잦았다. 개발제한구역(그린벨트)에 인접한 곳이라서 대낮에도 개 짖는 소리가 들리는 사육 농가와 보신탕집들이 멀지 않은 곳에 드문드문 들어서 있었다. 사상 최대의 올림픽을 개최하겠다는 의욕이 한창 무르익을 무렵 프랑스 배우 출신의 동물보호 운동가 브리짓드 바르도가 “개고기 먹는 야만스러운 나라의 올림픽을 거부해야 한다” 주장해 전두환 정권과 체육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부와 서울시가 나서 시내 중심가에서 ‘보신탕’ 간판을 모두 내리게 하고 전업을 권했다. 그래도 변두리 그린벨트의 허름한 농가에서 하는 보신탕 영업까지 규제할 수는 없었다. 중심가에서도 ‘영양탕’이나 ‘사철탕’으로 간판을 바꿔 몰래 영업하는 식당이 나왔다. 담당 공무원 중에도 보신탕을 즐기는 분들이 많아 적당히 눈감아 주었다고 한다.
 
먹거리가 부족하던 시절 개고기는 영양을 보충하는 주요 공급원이었다. 보릿고개를 넘기 위해 풀뿌리까지 캐 먹던 시절 생존이 걸린 마지막 먹거리였고 종교적 박해나 가혹한 징세를 피해 산중으로 도피했던 백성들에게도 그러했다. 한방에서는 원기를 보호하고 정력에 좋다고 권고해 약용으로 찾는 수요가 적지 않았다. 요리법이 다양해 별미로 즐기는 미식가들이 많았다. 바르도가 세계 영화계에서 한때 BB라는 애칭으로 불리 정도로 인정을 받았었으나 국내에서는 ‘야만적인 나라’라는 그녀의 거친 공격 때문에 반발을 샀다. 정부는 축산물위생관리법에 따라 개고기의 가공 및 유통을 금지했지만 축산법 상 개를 가축으로 규정해 개고기 단속에 다소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지난 1월 개 식용금지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잡거나 유통하는 행위, 개 사육 시설을 만들거나 확장하는 것이 모두 금지됐다. 이를 위반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다만 기존 업체들이 사업을 정리할 유예기간을 두기 위해 실질적인 법 시행시기는 2027년으로 잡았다. 3년 후부터 식용을 목적으로 개를 키우거나 도살, 유통, 판매하는 행위를 모두 금지한다는 내용이다. 대한육견협회를 비롯한 관련 사업자들은 개 식용금지법에 즉각 반발했다. 정부의 보상 지원안을 놓고도 갈등을 벌이고 있다. 육견협회 측은 전국 개 농장에서 사육중인 개체수를 200만 마리 수준이라고 주장, 영업손실로 마리당 200만원씩 모두 4조원을 보상하라고 주장한다. 반면 정부는 개체수를 약 50만 마리로 추산한다. 그리고 마리당 보상은 없다는 입장이다.
 
2000년대 들어서까지 개 식용금지에 대한 반대 논쟁은 끊이지 않았다. ‘야만적’이라는 해외 비판에 대해 “개고기 식용은 우리의 고유문화이며 다른 나라가 간섭할 영역이 아니다”는 선언이 2001년 정치권과 문화계 학계에서 나왔다. 이른바 개고기 선언이다. 개 또한 소 돼지 닭 오리와 다르지 않은 가축이므로 먹지 못할 이유가 없으며 개인의 선택에 달렸다는 주장이다. 개고기를 위생적으로 유통 판매하도록 양성화해야 한다는 요구도 따랐다. 팽팽하게 맞섰던 찬반 논쟁은 이후 식용금지 쪽으로 빠르게 가닥을 잡아갔다. 1998년 6400여곳에 이르던 식용견 업소가 2022년 조사에서 16000곳으로 크게 줄었다. 같은 해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7%가 사회적 인식이 개 식용에 대해 부정적이라고 응답했고 13%만 개고기를 먹을 의향이 있다고 했다.
 
해외의 비판이나 국내 반발보다 국민의 인식 변화가 식용 반대로 대세를 이끌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개를 단순하게 사육하거나 애완견으로 키운다는 인식을 넘어 삶을 함께 하는 반려견으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 식용논쟁은 급격하게 금지로 기울기 시작했다. 반려견 가족이 급증하면서 법규가 금지하지 않아도 개 식용을 혐오하는 풍조가 자리 잡았다. 2022년 기준 개와 고양이 등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이 4가구 중 1가구꼴로 전국적으로는 600만 가구를 넘어섰다고 한다. 최근 G마켓에서 유모차의 자체 판매 실적을 분석한 결과 반려견을 태우고 다니는 ‘개모차’ 판매 비중이 57%로 유아용 43%를 제쳤다는 통계도 나왔다.
 
개 식용 금지는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도 이슈로 떠올라 여야 주요 후보들이 공약으로 제시한 사항이다. 대선 후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가 꾸준히 운동을 전개했고 사사건건 여당과 대립각을 세운 더불어민주당도 금지법에는 함께 손을 들어주었다. 워낙 민심이 강하게 식용금지로 돌아섰고 외국의 관심이 집중된 법안이라서 반대가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CNN과 BBC 등 외국 언론들은 한국 국회가 개고기 소비를 불법화한 ‘기념비적인 법안’을 초당적 지지로 통과시켰다며 반려동물 문화를 다양하게 소개했다.
 
사육 농장과 사업자들의 반발이 여전하지만 합의를 통해 원만한 보상과 지원책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미 대세로 자리한 문화를 거꾸로 돌려 어려웠던 시절 회상에 젖어 지낼 수는 없다. 반려견 문화가 확산하면서 아기 출산과 육아에 대한 관심까지 소홀해지는 일은 없기를 바랄 뿐이다. 반려견을 아끼는 마음에도 예절을 갖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성숙한 문화로 정착되기를 바란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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