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성 떠올리는 중대재해법 부작용 심각

▲ 김성기 부회장
▲ 김성기 부회장
서울 청계천과 을지로, 동대문 등 일대는 개발연대 초기부터 작은 공장과 상가들이 들어서 고단한 도약을 꿈꾸던 곳이다. 공구상가와 주조·금형·용접 등 철공소가 청계천을 중심으로, 인쇄소가 을지로, 봉제공장이 동대문 일대에 몰려 도심의 작은 공장단지를 이루었다. 서울시가 도심재정비와 함께 2004년 청계천복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떠밀린 작은 공장이나 상가들은 송파구 가든파이브와 문래동 등으로 터전을 옮겼다. 아직 뒷골목에 인쇄소와 공장 등 일부가 남아 있지만 활력을 잃은 지 오래다.
 
작은 사업장들은 분산된 공정에 따라 일하면서 제조·수리·유통 등 기능별로 연결돼 나름대로 협업이 이뤄지는 게 특징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으로 분류하기도 어려울 정도인 영세사업장이 많아 납품과 수금, 인력관리 등 주요 업무를 사장인 사업주가 맡고 최소한의 기술직과 사무직 등 근로자로 꾸려가고 있다. 직원 5명 이하의 영세 업소가 대부분이고 그보다 규모가 있는 곳도 사업주가 직접 현장에서 뛰어야 일상 업무가 돌아가는 형편이다. 만약 사업주가 불의의 사고를 당해 쓰러지거나 형사상 책임으로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면 뒷일을 수습할 사람이 없어 당장 문을 닫아야 할 위기에 처한다. 이렇게 한 사업장이 위기에 빠지면 협업의 특성상 주변 연관 업소까지 바로 영향을 미치게 된다. 다른 업종에 비해 사고위험이 높은 중소 건설업체들은 “1000만원 짜리 공사 하다가 사망사고가 나면 10억원을 물어야 한다”며 “영세기업을 줄줄이 망하게 하는 법”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지난 1월 27일부터 근로자 5인 이상 50인 미만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까지 중대재해처벌법이 확대 시행됐다. 정부와 여당은 준비 부족을 들어 확대 시행을 2년 유예하도록 요청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끝내 거부했다. 5인 이상 사업장은 사망자가 1명 이상, 또는 부상자나 3개월 이상 치료를 요하는 질병자가 10명 이상 나오면 안전보건 의무를 위반한 사업주나 경영책임자, 법인을 처벌한다. 사망 사고가 발생하면 개인은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상 벌금을 병과하는데 지난달 확대 시행으로 83만7000여곳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 사업주가 처벌 대상에 추가로 포함됐다. 법인에게는 50억원 이하 벌금을 물리고 손해액 5배의 손해배상을 지우도록 했다.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는 2년 전부터 시행됐다.
 
정부와 여당은 50인 미만 사업장 확대 시행을 2년간 재유예하는 개정안을 냈고 경총을 비롯한 경제단체들은 이번에 연장이 이뤄지면 더 이상 연장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4월 총선을 앞두고 노동계 눈치를 보는 민주당은 이를 거부했다. 야당에서 주장했던 산업안전보건청 설립 요구를 여당이 수용하는 자세를 보였지만 민주당은 다시 걷어찼다.
 
코로나19 증후군 확산과 이어진 경제난으로 지난 몇 년간 중소기업과 영세사업장들은 중대재해처벌법에 대비할 여력이 거의 없었다. 50인 미만 사업장의 80% 이상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중소기업중앙회 등의 조사가 이를 말해준다. 영세한 기업들의 형편을 도외시한 확대 시행 부작용으로 인해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 실패를 떠올리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문 정부는 최저임금을 올려 근로자 소득을 높이면 생활에 보탬이 되고 소비 여력도 늘어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단순 논리에서 소주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인건비 상승 부담을 떠안게 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직원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되레 일자리가 줄어들고 실업이 늘면서 경제는 수렁에 빠지는 파장을 몰아왔다. 2018년 최저임금이 역대 최대인 16.4% 급등하면서 실업자가 20만명 이상 증가한 122만4000명에 달해 2000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징역형 1년’ 하한선이 사업주에 공포 안겨
 
중대재해법 확대 시행으로 인한 우려는 기업 현장에서 이미 감지되고 있다. 5인 이상 사업장들은 근로자 수를 줄여 처벌 수위를 낮추려 할 수도 있다. 이런 현상으로 인해 연간 1만1000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실질국내총생산(GDP)은 0.1% 1조2000억원 감소할 것이라는 분석보고서까지 나왔다. 기업인들은 사망 사고 발생시 ‘1년 이상 징역’으로 하한선을 둔 형량을 “예방보다 처벌을 중시하는 내용이므로 사업주가 공포감에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영세기업의 형편에서 보면 예상치 못한 사고로 중대재해가 발생, 사업주가 구속되면 당장 문을 닫아야 하는 처지에 몰린다. 사업주가 나서지 못하면 사고 뒷수습을 할 사람이 없고 자금을 마련하거나 수주와 가동을 끌어나갈 책임자도 없어지게 된다. 중대재해를 예방하겠다는 입법취지가 근로자와 사업주 모두에게 재앙으로 돌아올 위험을 안고 있다. 기존 산업안전보건법은 안전, 보건 등 관리체계를 마련하도록 의무를 두고 있으나 사망 사고 발생 시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으로 정해 형량 하한선을 명시한 조항은 없다. 여야는 과잉 처벌에 대한 기업인들의 우려를 받아들여 국회를 다시 열고 확대 시행 유예와 보완책 마련에 나서야 한다. 중소기업 반발에도 소주성 실패의 전철을 고집하면 야당에 씻을 수 없는 불신만 남기게 될 것이다. <투데이코리아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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