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민석 기자
▲ 진민석 기자
우리가 잊고 있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본모습이 서서히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고 있다.

전쟁통 속 잠잠했던 공포 정치가 재차 다가오는 대선을 앞두고 다시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2021년 러시아의 침공으로 시작된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은 러시아에게서 많은 것을, 당시의 예측과는 정반대로 앗아갔다.

지난해 말 기밀 해제된 미 정보당국의 보고서에 따르면, 이번 전쟁으로 러시아는 약 39만명의 사상자라는 거대한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심지어 우크라이나군 작전참모는 양국의 전면전 돌입 이후 러시아 당국이 39만8140명이라는 병력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이 밖에도 6400여대의 탱크를 비롯해 방공시스템 671대, 비행기 332대, 헬기 325대, 드론 7371대, 보트 24대 등을 파괴당하는 등 큰 손실을 보았다고도 덧붙였다.

그러나 이번 전쟁이 러시아에서 앗아간 것 중 어쩌면 가장 큰 부분은 바로 푸틴 대통령이 권력을 제멋대로 사용하게 할 수 없게끔 한 것이다.

러-우 전쟁으로 인한 막대한 손실에 대한 국내적 압박과 더불어 국제사회의 부정적 여론이 푸틴 대통령의 공포 정치를 잠시나마 막게 한 근원적 이유로 꼽힌다.
 
그러나 이도 잠시, 내달 15일부터 열리는 러시아 대선을 약 한 달가량 앞둔 현재,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욕구를 공포 정치를 통해 발산하고 있다.

그 시작은 자신의 ‘최대 정적’으로 불렸던 알렉세이 나발니에 대한 죽음으로부터 전개됐다.

지난 16일(현지시간) 나발니는 러시아 최북단 시베리아 지역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제3 교도소에서 산책 직후 건강 이상을 호소하다 결국 삶을 마감했다.

다만 이미 한 차례 푸틴 대통령에 의해 독살될 뻔했던 나발니이기에, 자연스레 그의 죽음에 대한 음모론을 스멀스멀 불거졌다.

특히 부검 시 그의 몸에서 발견된 멍자국이 옛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이른바 ‘원-펀치’ 기술로 생긴 상처와 흡사하다는 주장마저 제기됐다.

장시간 추위에 방치한 후 혈액 순환을 늦춰 몸에 해를 가하는 방식인 ‘원-펀치’ 기술로 인해 나발니가 사실상 러시아 당국의 손에 숨을 거뒀다는 것이다.

문제는 대선을 코 앞둔 푸틴 대통령의 공포 정치는 이에 멈추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신의 최대 정적이 사라진 지금, 그는 나발니의 가족들로까지 마수(魔手)를 뻗치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 20일 나발니의 친동생 올레그 나발니에 대한 두 번째 수배령을 내렸지만, 구체적인 혐의를 밝히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러시아 내무부 측은 경찰이 올레그에 대한 새로운 형사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고만 언급했다.

올레그 나발리는 지난 2021년 자신의 형 나발니의 석방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인 뒤 코로나19 방역 조치 위반 혐의로 유죄 판결과 집행유예 1년을 선고 받았지만, 이듬해 러시아 법원이 올레그가 집행유예 기간 제한 사항을 지키지 않았다는 명목으로 형 집행 전환을 요구하면서 그에 대한 수배 명령이 떨어졌다.

이같이 러시아 당국이 나발니와 그의 가족을 표적으로 삼는 가장 큰 이유가 푸틴 대통령의 연임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최대 정적’은 사망했으나 푸틴 대통령의 대선 승리는 아직 불투명하다.

특히 헌법 개정을 시작으로 ‘최대 정적’의 사망까지 발생하면서 3선 연임에 콧노래를 불렀을 푸틴 대통령의 생각은 오판이란 지적이 나온다.

나발니의 부인 율리아 나발나야가 남편의 뜻을 이어 반정부 투쟁에 나서겠다고 천명하면서다.

푸틴 대통령이 자신의 남편을 죽였다며 지지를 호소한 나발나야는 막후 지원군에서 투사로, 남편의 유지를 이어 반(反) 푸틴 세력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대선이 치러지는 내달 17일 정오에 일제히 투표소에 나오는 ‘정오 시위’를 제안하면서 시위도 징역형을 받는 나라에서 불만을 표시할 가장 안전한 방법으로 항의하자고 촉구했다.

나발니 사망을 두고 의문사로 규정한 국제사회의 비판 여론도 푸틴 대통령의 연임에 불확실성 한 스푼 넣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나발니의 죽음이 푸틴과 그의 깡패들이 한 어떤 행동에 따른 결과라는 데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이어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과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 고위대표 또한 “나발니는 자국민의 반대를 두려워하는 푸틴 대통령과 그의 정권에 의해 서서히 살해당했다”고 직언했다.

옥중 투쟁 중 대한민국이 힘들게 쌓아 올린 민주화를 언급하기도 하며 러시아의 희망찬 앞날을 바라봤던 나발니는 숨을 거뒀다.

다만, 그가 꿈꿔온 ‘독재 종식’이라는 투쟁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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