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현채 주필
▲ 박현채 주필
정부의 진료유지 명령에도 불구하고 의료현장에서 이탈한 전공의가 1만 명 선에 육박하면서 의료공백 사태가 종합병원만이 아닌 일반 병원급까지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젠 전문의 자격증을 딴 뒤 병원에 남아 1~년 세부 과정을 거치는 전임의들의 병원 이탈 조짐도 나타나고 있어 진료차질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 이로 인해 의료공백 사태가 장기화, 길게는 6개월까지 이어지지 않을 까 우려된다.
 
의사들은 국민의 생명을 책임지는 특수직이지만 의대 증원에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의사들이 당장 1분 1초가 급한 환자를 두고 떠나는 행위는 국민 공감을 얻기 어렵다. 국민들은 의사 부족으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전공의들이 오히려 의사 증원에 극력 반대하는 이율배반적 행동에 경악하고 있다. 미국과 일본 등 외국에선 의협이 먼저 전공의를 늘려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국세청이 작년에 공개한 의사 평균 소득은 2억 6900만 원이다. 2010년만 해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증 5위권이었는데 해마다 1000만원 이상 증가해 이제는 1위로 올라섰다. 의사들이 소득이 이처럼 높은데도 툭하면 환자를 볼모로 진료 거부를 하면서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면 국민들의 비판이 팽배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정부는 의사를 이길 수 없다',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처단해야 할 원수', "똥개도 자기 밥그릇을 지키려고 한다" 는 등의 거친 말이 의사단체 전임 집행부를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어 국민들의 거부감이 더 커지고 있는 형국이다. 열심히 본분을 다해 일하는 의사분들이 굉장히 많은데 의사단체가 공공의 적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의사들의 집단행동이 명분 없고, 희소가치에서 나오는 기득권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행동’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의료계 일부에서도 나온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과 교수는 지난 20일 TV 공개토론회에서 “2019년 2억원 남짓하던 종합병원 봉직의 연봉이 최근 3억~4억원까지 올랐다”며 “이는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의대 쏠림의 근본적인 원인은 의사 수입이 다른 직업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라며 “의대 증원을 통해 의사 수입을 적정 수준으로 낮추는 게 의대 쏠림 문제를 해결하는 근본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특히 “의협과 전공의들이 증원을 반대하는 실제 이유는 정부의 필수의료 정책에, 급여 항목에 비급여 항목을 끼워 진료하는 이른바 혼합진료를 금지하고, 미용·성형시장을 개방하는 등 비급여 진료로 돈 버는 것에 대한 규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며 “대학·종합병원에서 의사들이 다 빠져나가 비급여 진료 의원을 연다면 필수의료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의협이 광고를 통해 ‘의원의 환자가 줄었다’고 했는데 “비급여 진료를 늘려 수입을 늘리지 않았냐”고 반박했다.
 
우리나라 의사 1명이 한해 진료하는 평균 환자 수는 6113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많다. 의사 1명당 환자 수가 많은 만큼 2019년 기준 우리나라 1차 의료 진료시간은 평균 4.3분으로 OECD 평균의 4분의 1 수준으로 짧다. 2020년 기준 국내 의대 졸업자는 인구 10만 명당 7.2명으로, OECD 평균 13.6명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의대 증원은 의료 수요 증가는 물론이고 현재 직면하고 있는 필수의료·지역의료 붕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의협은 증원을 한다고 필수의료 문제가 극복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는데 그러면 증원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는가.
 
보건의료노조의 최근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 82%가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답했다. 지방 병원들은 의사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고, 환자들은 서울의 큰 병원으로 원정 진료를 다니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응급실에서 인력 부족으로 구급차를 타고 다니다 위험에 처하는 ‘응급실 뺑뺑이’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또한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의료 분야를 지원하는 의사는 줄고 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등 업무 부담이 적고 돈이 되는 분야에 편중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정부는 의사들이 원했던 수가 인상, 의료사고 부담 완화, 근무 여건 개선 등을 다 수용한 필수의료 패키지 정책을 이미 발표했다. 지역·필수의료 분야 수가 인상에 10조 원 이상을 투입하고, 보험과 공제 가입을 조건으로 환자가 동의할 경우 의료사고에 대한 기소를 면해주겠다고 했다. 건강보험 재정 악화를 우려하는 시민단체 반발에도 불구하고 의료계에 성의를 보인 것이다.

전공의들의 사직은 명분 없는 싸움이다. 2000년 이후 세 차례에 걸친 의사들의 진료 거부에 정부가 무기력하게 대응하면서 ‘정부는 의사들을 이길 수 없다’는 자만을 부추긴 것으로 분석된다. 정부가 선례를 반복하면 의료개혁은 물 건너간다. 지금은 정부와 의사들이 감정싸움을 그만두고 정부 대책의 허실을 놓고 진지하게 토론해야 할 때다. <박현채 투데이코리아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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