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제품 가격은 그냥 놔두고 용량을 줄여 가격을 올린다, 가격과 용량은 손대지 않고 재료를 값싼 것으로 슬쩍 바꾼다. 가격 인상 폭은 높이지 않고 자주 인상한다.
 
이처럼 갖가지 수법으로 제품 가격을 인상해 소비자 부담을 늘리는 변칙 인플레이션이 서민 가계를 울린다. 이런 가격 인상 수법은 우리나라 뿐이 아니라 세계적인 현상이다.
 
사과 배 한 알을 사먹으려면 6~7000원을 내야 한다. 배추 한 포기에 5000원, 대파 한 단은 4000원이다. 작년 이맘때보다 50% 이상 올랐다. 과일 채소 값이 금값이다.
 
1월 말 기준 자장면 한 그릇 값은 평균 7069원(서울)으로 작년 동기 대비 23% 올랐다. 냉면은 16%, 김밥은 20%, 칼국수 값은 16% 올랐다(한국소비자원 참가격 사이트).
 
1월 기준 목욕탕 이용료는 29% , 세탁료는 27%, 숙박료는 17% 상승했다. 주 부식비는 물론 외식비 등 필수 지출 항목들의 가격이 이처럼 고공행진이다.
 
전기 가스 수도 등 공공요금 인상과 인건비 임대료 상승 등으로 온갖 생필품 가격이 천정부지다.
 
물가는 치솟는데 임금이 뒷받침 해주지 못하니 가계 주름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난 2년간 물가는 8.9% 뛰었는데 가계 소득은 6.9% 증가에 그쳐 실질소득이 2% 감소했다(통계청 고용노동부 통계). 가만히 앉아서 살림이 그만큼 가난해졌다.
 
이럴 때 일수록 저소득층이 더 힘들어 진다는 데 문제가 있다. 소득이 낮은 계층은 보통 소득 중 많은 부분을 음식료품비로 쓴다.
 
그런데 최근 농수산물 중심으로 물가가 급등하다 보니 서민 삶이 이만저만 힘든 게 아니다.
 
가계 지출 중 식료품비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지수는 지난해의 경우 소득 하위 20% 가구는 20.3%로 소득 상위 20% 가구의 11.8%에 비해 2배 가까이 높았다.
 
하위 소득계층일수록 식료품비 지출 비중이 늘다 보니 다른 곳에 쓸 여유가 줄어든다. 삶의 질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숨은 인플레, 꼼수 인플레, 탐욕 인플레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제품 가격을 올려 소비자 부담을 가중시키는 인플레이션 유발 행태도 다양하다.
 
* Shrink-flation(슈링크플레이션) : 제품 가격은 손대지 않고 용량을 줄여 가격 인상 효과를 가져오는 방법이다. 숨은 인플레이션이다.

날이 갈수록 쿠키와 비누는 작아지고, 휴지는 얇아지고, 음료수 병은 날씬해진다.
 
지난해 양반김 한봉지 용량이 5g에서 4.5g으로, S체다치즈 한봉지(20매) 중량이 400g에서 360g으로 줄었다. 제품 가격은 그대로다. 대표적인 슈링크플레이션이다.
 
학계에 잘 알려지 예. 지난 1988년 미국 커피 브랜드 촉풀오넛츠는 가루 커피 한 캔 용량을 16온스에서 13온스로 슬그머니 줄였다
.
한 캔 가격은 그대로지만 단위가격은 23% 올렸다. 용량 크기 글씨도 줄였다. 소비자들은 몰랐다. 업체 전략이 성공했다. 다른 커피회사들도 뒤따랐다.
 
슈링크플레이션이란 용어는 2009년 영국 출신 경제학자 피파 맘그렌이 창안했다. 이 수법은 이미 수년 전부터 미국 일본 유럽 등에서 뜨거운 이슈다.
 
꼼수 가격 인상에 많은 나라 소비자들이 분노한다. ‘소비자 기만’ ‘꼼수 가격인상’ 등이라며 슈링크플레이션에 대한 혐오증이 확산일로다. 잘 모른 체 당하고 나서 알게되면 더 기분 나쁘다.
 
* Skimp-flation(스킴플레이션) : 인색하게 군다는 뜻의 skimp와 인플레이션의 합성어다. 기업이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고 값싼 원료로 대체해 실질적으로 가격을 올리는 행위다. 꼼수 가격 인상이다.

슈링크에 이어 등장한 스킴프플레이션은 제품의 질을 떨어뜨려 가격 인상을 꾀한다는 측면에서 슈링크플레이션보다 더 나쁘다는 지적이다.
 
영국 가디언은 작년 7원 유명 슈머마켓 체인의 스킴플레이션 실태를 폭로했다. 파스타 소스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 함량이 33%에서 26%로 슬그머니 줄고, 과카몰리의 아보카도 함량이 80%에서 77%로 소리 소문 없이 줄었다. 마요네즈의 계란 노른자 함량이나 두루마리 휴지 규격이 바뀐 경우도 있다.
 
* 가격 인상 빈도 조절 : 제품 가격은 그대로 두거나 인상 폭을 최소화하면서, 인상 빈도를 조절하는 방법. 예컨대 종전 같으면 1년에 한 번 가격을 조정하던 것을 두 번 하는 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식품 가격 유지 기간이 종전엔 9.1개월이었으나 최근에는 6.4개월로 단축됐다.
 
시리얼A의 경우 2018~2021년에는 1년에 한 번 가격을 조정했으나 2022~2023년에는 2번 인상했다.

같은 기간 라면B는 가격 조정이 1번에서 3번으로 빈번해졌다. 물론 가격 조정 폭은 종전과 같았다. 결국 소비자 부담이 모르는 사이 늘어난 것이다.
 
* Greed-flation(그리드플레이션) ; 대기업들이 소비자 후생은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가격을 올린다는 의미에서 ‘탐욕 인플레이션’이라고 부른다.

최근 일부 정부 당국자가 물가 상승의 주범으로 식품기업의 그리드플레이션을 지적하기도 했다.
 
* Egg-flation(에그플레이션) : 기후 변화나 전쟁, 국제 유통질서의 혼란 등에 의한 농산물 가격 상승이 전체적인 물가 상승을 선도한다는 측면에서 나온 용어다.
 
* Screw-flation(스크루플레이션) : 용량을 줄이거나 값싼 원료 투입 등에 의한 변칙적인 가격 인상이 이어지면서 소비자들이 겪는 고통을 일컫는다.
 
쥐어짠다는 screw와 인플레이션 합성어로, 물가 상승과 실질임금감소 등으로 서민층 가처분소득이 줄어 체감물가가 상승하는 현상을 뜻한다.
 
슈링크플레이션 혐오, 규제 움직임
 
앞서 적시한 슈링크 스킴프 등등의 인플레 유발 행위에 대한 혐오증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 일로다. 과연 기업들의 이런 가격 판매 정책이 법적으로 문제는 없는가.
 
크기나 무게보다 가격에 더 집중하는 소비자들의 심리를 이용, 가격 인상 없이 용량을 줄이거나 저렴한 원료를 투입하는 기업들의 판매 전략은 분명 소비자 기만 행위라고 볼 수있다.
 
그렇다고 불법인가. 대부분 국가는 상품 포장지에 가격 및 단위당 가격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100g 당 500원, 100ml 당 1000원 하는 식으로 표시를 의무화하고 있다.
 
따라서 기업들이 단위 가격 등을 명확히 표시한다면 합법이다. 슈링크나 스킴플레이션이 위법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소비자를 기만하는 꼼수 전략을 동원한다. 그래서 규제는 필요하다.
 
브라질은 제품 용량이 바뀌면 이를 포장에 명시토록 의무화했다. 일본은 ‘가격 인상 비망록’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제품 가격과 크기 등의 변화를 추적하는 플랫폼을 운영 중이다.
 
우리나라도 대책 마련에 나섰다. 올해 중 식품이나 생활화학제품 등의 경우 용량을 줄여 단위가격이 오르면 변경 내용을 3개월 이상 표시토록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소비자원의 ‘참가격 사이트’를 통해 슈링크플레이션 등을 확인할 수있도록 플렛폼을 개편한다는 계획이다.
 
아무튼 고물가 속에 갈수록 힘들어지는 서민 삶의 부담이 조금이나마 덜어질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 <일부 내용 ‘딥 다이브 뉴스레터’ 온라인기사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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