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순직 논설주간
▲ 권순직 논설주간
정치권의 저질 문귀 현수막이 길거리에서 많이 사라져 한숨 놓았더니 이젠 귀가 더럽혀질 정도의 저급 막말이 난무한다.
 
한때 운동권 출신 정치인을 중심으로 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멘스고, 남이 하면 불륜) 행태가 국민들을 화나게 하더니, 이번 총선을 앞두고선 듣기 거북한 정치인들의 발언이 유권자들을 부끄럽게 하고 있다.
 
상대방을 비판하더라도 사실에 근거해 ‘위트와 유머’ ‘해학과 촌철살인’ ‘재치 있고 능란한 화법’으로 싸우는 품격 있는 정치인을 바란다는 건 사치일까.
 
여당이건 야당이건 할 것 없이 막말 대잔치는 그야말로 가관이다. 수년 전 발언까지 동원된 막말들은 정당의 공천 판세를 흔들어 놓기도 했다.
 
정치권 뒤흔든 설화(舌禍)

 
정봉주(민주당 –이하 존칭 생략)는 2017년 “DMZ에 들어가서 발목 지뢰를 밟은 사람들한테 목발 하나씩을 경품으로 주자”는 발언이 이번 공천 판세에 소환되어 곤욕을 치렀다.

북한이 몰래 설치한 지뢰를 밟아 우리 젊은 군인 두 명이 다리를 잃는 중상을 입은 사건을 이처럼 조롱 삼아 말했던 것이다.
 
양문석(민주)은 과거 칼럼에서 “노무현은 불량품” “낙향한 대통령으로 우아함을 즐기는 노무현씨에 참으로 역겨움을 느끼지 않을 수없다”는 막말이 드러나 비난 받고 있다.
 
류삼영(민주) 선거 캠프에선 상대 당 후보인 나경원을 겨냥, “냄비는 밟아야 제맛”이라는 홍보물이 유통되어 여성 비하라는 비판을 받았다.
 
조수진(민주)은 변호사로써 성범죄 가해자를 변호하면서 피해 어린이를 2차 가해했다 해서 공천에서 낙마했다.

현근택(민주)은 술자리에서 여성 비서진에 대한 성희롱 발언으로 물의를 빚었다.
 
도태우(국민)는 5.18광주민주화운동에 대해 “북한 개입 부분은 좀더 열린 마음으로 충실히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는 망언으로 비판받는다.
 
장예찬(국민)은 서울시민의 의식과 교양 수준을 “일본인의 발톱의 때”로 비교해 몰매를 맞았다.
 
황상무(청와대)는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MBC는 잘들어, 내가 정보사 나왔는데 1988년에 경제신문 기자가 허벅지에 칼 두방이 찔렸다”며 군사정권 시절 정보사 군인이 기자를 습격한 ‘정보사 회칼 테러’사건을 언급했다. 언론에 대한 협박이라는 비난을 피할 길이 없다.
 
최근에 회자된 막말은 주로 총선 공천 과정에서 불거진 것들이다. 명색이 대통령 후보였고 제1야당 당수인 이재명의 막말도 보통이 아니다.
 
그는 한 선거운동 모임에서 젊은 남성에게 “설마 2찍은 아니겠지”라며 웃는 장면이 공개된다. 지난 대선에서 2번 윤석열을 찍은 유권자를 비하하는 말이다.

이에 그치지 않고 며칠 뒤엔 “정치를 잘했고, 살만하면...열심히 2번(국민의힘)을 찍든지, 아니면 집에서 쉬시라”라고 했다. 정상의 지도급 정치인의 말이라고 생각하기 힘들다.
 
사실 이재명의 형수에 대한 도저히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어서 그의 언어 수준은 정평이 나있다.
 
과거 정치사(史)에서 막말이나 실언에 의한 설화(舌禍)도 심심치 않았다. 이젠 좀 나아져야 할 때도 됐는데 더 후진이다.
 
대통령을 폄하하는 멸칭(蔑稱)도 많았다. 노무현은 ‘개구리’ ‘놈현’, 이명박은 ‘쥐박’ , 박근혜는 ‘닭그네’, 문재인은 ‘문재앙’ ‘곰’(문을 뒤집은 말), 윤석열은 ‘윤도리도리’ ‘쩍벌’로 불리기도 했다.
 
왜 저급 막말에 집착할까
 
이처럼 저급한 막말이 정치권에서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이른바 개딸과 같은 강성 지지층에 어필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잠시 욕을 먹더라도 대중으로부터 관심을 끌겠다는 노이지 마켓팅이기도 하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자질이 부족하거나, 고급스러운 언어 구사 능력이 부족한 탓일 터이다.
 
신언서판(身言書判)이라 했다. 남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위치, 백성을 다스리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갖춰야 할 덕목이 바로 신언서판이라고 선인(先人)들은 가르쳐왔다.
 
인물이 훤해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身), 말을 가려 반듯하게 해야 한다(言), 글씨를 잘 쓰고(학문에 게으름이 없어야 한다.書), 사리판단이 바르고 명확해야 한다(判).
 
이같은 신언서판을 갖춘 인물이 우리의 국회의원 장관 대통령이기를 바라는 것이 과연 이 시대에 불가능한 욕심인가.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고 본다. 우리 유권자들이 현명하게, 냉정하게 판단하면 될 일이다. 자기가 지지하는 정치인이라 해서 저급한 막말로 인기를 끌려는 정치인에게 무조건 표를 찍으니까 정치 발전이 더딘 것이다.
 
이처럼 수준 낮은 정치인에게 환호해 놓고 우리 자식 손자들에게 뭘 가르치고 뭘 남겨주겠는가. 개선하는 일은 결국 우리 몫이다.
 
저작권자 © 투데이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