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복지제도는 최빈층의 구제여야 한다"

스웨덴의 미르달과도 다른 장하준의 복지제도론

장하준은 미르달 상을 받은 학자다. 미르달은 1974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경제학자이며 스웨덴 복지제도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복지제도에 대해서 미르달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했다. 스웨덴이 복지제도를 할 수 없다면 세계 어떤 나라도 복지제도를 할 수 없을 거라고 이야기했다.

복지제도의 가장 큰 위험은 사람들이 일할 의지를 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을 하지 않아도 국가가 먹여 살려주는 데다가 일을 해서 돈을 벌더라도 그 중 큰 부분을 세금으로 내야 하기 때문이다. 즉 일을 하나 안하나 차이가 별로 크지 않기 때문에 일할 의지를 버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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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나르 미르달 (Gunnar Myrdal)>

미르달은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가장 작은 나라가 바로 스웨덴이라고 확신했다. 첫째 스웨덴 사람들의 청교도적 근로윤리가 누구보다 확고하기 때문이고, 둘째 스웨덴 사회가 상당히 동질적이기 때문에 세금을 내더라도 아까워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한마디로 스웨덴은 원래부터 부지런한 가족같은 국가이기 때문에 복지를 하던 세금을 높이던 관계없이 여전히 사람들이 열심히 일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러나 그토록 노동윤리가 철저했던 스웨덴 사람들조차도 복지제도 앞에서는 게을러져 갔다. 1970년대 이후의 성장률 둔화와 1990년대 초의 외환위기가 바로 그 증거다. 1990년대 이후의 고성장은 80년대 말부터 시작된 본격적 자유경제적 개혁의 산물이다. 장하준은 그런 사실조차도 본인의 의도에 맞게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해 버렸다.

불안전한 고용이 의대 법대 준비생을 늘렸다고?

장하준의 아전인수식의 사실 해석은 한국 학생들이 의대를 선호하는 이유를 찾는 과정에서도 나타난다. 그는 한국 학생들 중 의대 지원자가 많은 이유를 90년대말 외환위기 이후의 노동시장 유연화 때문인 것으로 몰아간다.

이 말은 얼마나 사실일까. 우선 성적 상위권 학생 중 의사 지망생 많은 현상이 과연 외환위기 이후에 특별히 나타난 현상인지부터가 의문이다. 필자가 대학에 들어간 것은 1975년이다. 고등학교는 1972년부터 1975년까지 다녔으니 장하준의 말대로라면 노동시장의 유연성과는 거리가 먼 시절이었다.

40년이나 된 과거사이지만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사실이 있다. 문과에서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은 서울대 사회계열(당시에는 법학과를 따로 뽑지 않았다), 이과 다니는 거의 모든 아이들에게 의대는 선망의 대상이었고, 가장 공부 잘하는 아이들 순으로 의대를 갔다.

대학을 가서도 문과생들은 사법고시, 행정고시, CPA 공부, 관세사 같은 공부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학교에서도 고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을 특별대우했다. 그러다 보니 나 같은 학생 조차도 행정고시 공부를 한다고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을 정도다.

의대 법대와 관련하여 21세기적 현상이라고 할 만한 것이 있기는 하다. 의학전문대학원과 법학전문대학원이다. 외환위기와 더불어 집권한 김대중 대통령 시절 의학전문대학원 제도가 생겨 2005년부터 학생을 모집했다. 당연히 대학에서도 이과계열 공부를 학생들이 많이 생겨났다.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2007년에 법이 통과되었으니 그 때부터 학생들은 로스쿨을 들어가기 위한 공부를 시작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의대 입학 준비와 변호사 판검사가 되기 위한 노력에 특별히 21세기적인 것이 있다면 이런 새로운 제도 때문이라고 보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게다가 고용의 불안정성은 기업에서만 나타난 현상이 아니다. 의사 역시 숫자가 늘면서 경쟁이 치열해지다 보니 부도에 몰리는 경우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의사면허만 따면 일생이 보장되는 시대는 지나간 것이다. 변호사 역시 마찬가지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도 앞길이 막막한 변호사들이 많다고 할 정도가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 때문에 의사나 변호사가 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말하는 것은 성급한 결론이다.

진정한 복지제도는 최빈층의 구제여야 한다

복지제도가 사람들을 혁신적으로 만들고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장하준 교수의 말은 틀렸거나 거짓이다. 복지제도는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성장률을 낮춘다. 이는 어느 나라에서나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 당연한 법칙마저 장하준 교수는 부인하려고 한다.

필자도 물론 복지제도에 반대하지 않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풍요를 누리는데 한쪽에서 굶어가는 사람이 있다면 분명 좋은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공짜로 사는 식의 복지는 곤란하다. 그것을 위해 희생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복지 제도의 철학은 자선에 바탕을 두어야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소년소녀 가장이나 무의탁 독거노인들, 장애우들, 이런 사람들 대상의 복지제도는 더우 강화할 필요가 있다. 소득의 가장 밑바닥을 끌어올려서 전체의 수준을 올리는 정책인 것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복지수혜자들의 근로의욕 감퇴가 따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대상자들을 스스로의 힘으로 살아가기 힘든 사람들로 한정을 짓자는 것이다.

사회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 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 복지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은 틀렸거나 또는 거짓이다.

김정호 자유기업원 원장은 1979년 연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거쳤다. 1990년 한국경제연구원, 1994년 청와대 국가경쟁력 강화기획단(간접자본반) 파견, 1996년 한국경제연구원 규제연구센터 실장을 거쳐 현재 자유기업원 원장, 성균관대학교 초빙교수, 서울대학교 겸임교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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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제자유지수 홈페이지는 http://www.heritage.org/Index/ 참조할 것
2) Economics 101: Learning From Sweden's Free Market Renaissance, http://www.youtube.com/watch?v=ENDE8ve35f0
3) Johan Norberg, Swedish Models; http://www.johannorberg.net/?page=articles&articleid=151
4) Johan Norberg, Swedish Models; http://www.johannorberg.net/?page=articles&articleid=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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