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의 가장 큰 무기, 초구 스트라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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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코리아=정세한 기자]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흔한 격언이 있다. 투수가 마운드 위에서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최소한 패하지 않는다. 에이스가 등판한 날이면 한 점을 뽑기도 쉽지 않다. 그만큼 투수가 어느 포지션 중에서도 경기의 승패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좋은 투수가 되기 위해 갖춰야 할 조건에는 정교한 제구력, 빠른 구속, 다양한 구종 등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이를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선결되야 할 과제가 바로 '초구 스트라이크'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아내는 능력 보유 여부가 뛰어난 투수와 그렇지 못한 투수로 나눌 수 있는 하나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투수와 포수의 거리는 불과 18.44m, 투수는 모두 27개의 아웃카운트를 잡기 위해 타자와 맞닥뜨려 이 짧은 거리에서 주어진 공 7개를 가지고 셀 수 없는 치열한 신경전을 펼친다.

이 대결에서 초구 승부는 승패를 좌우하는 열쇠가 된다. 투수나 타자 모두에게 있어 매우 중요하다. 초구 스트라이크 여부로 인해 누가 주도권을 쥐고 상대방을 제압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페르난도 아로요 전 롯데 투수코치는 ‘자신감 있게 스트라이크를 던져라, 이른바 박스 앤 하프 박스’ 이론으로 투수들을 지도해 큰 혁신을 불러온 적이 있다. 이는 간략히 말하면 홈플레이트를 3등분하여 가운데에서 바깥쪽으로 공략해 나가는 투구 이론이다.

아로요 코치가 초구부터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아낸 뒤 코너워크를 생각하라고 주문했던 것도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이 때문에 투수는 어떻게든 초구에 스트라이크를 던져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려 하는 반면 타자는 그것을 당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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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시즌 프로야구에서 8일까지 열린 380경기의 전체 성적과, 초구 스트라이크가 들어갔을 때와 볼이었을 때의 성적을 비교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초구 스트라이크 싸움에서 이미 승부의 반은 결정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타율, 출루율 그리고 장타율에서 모두 현격한 차이가 발생한다.

초구가 스트라이크일 경우에는 0.249(타율), 0.290(출루율), 0.352(장타율)로 저조한 성적을 보인 반면 초구가 볼일 경우에는 0.276(타율), 0.404(출루율), 0.405(장타율)로 리그 평균 성적보다 상향된 타격 성적을 찍었다. 그 중에서도 출루율은 무려 1할이 넘는 엄청난 편차를 보인다. 타율과 장타율도 각각 3푼, 5푼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타자 출루 허용에 있어서는 어마어마한 차이를 불러왔다.

이는 투수가 초구를 스트라이크 잡았을 때 생기는 여유와 반대로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 느끼는 중압감의 차이에 의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장타율의 차이는 볼 하나의 여유가 생긴 타자 입장에서 힘껏 노려칠 수 있는 ‘게스 히팅‘이 조금 더 용이한 상황으로 전개되기 때문으로 분석 가능하다.

이 자료만 보더라도 초구 스트라이크 여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쉽게 알 수 있다. 투수들이 초구 스트라이크에 예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서 나온다.

초구가 볼이 되어 타자가 주도권을 잡은 상황을 카운트별로 세분화 해보면 투수가 다음 공에서 얼마나 어려움을 겪었는지 여실히 나타난다. 초구가 볼일 경우 2구째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가운데로 몰리는 공을 던진 투수는 타자에게 여지없이 두들겨 맞았다. 초구 볼일 때 2구 타격 0.334 피안타율, 0.340 피출루율, 0.488 피장타율.

연달아 두 개의 볼을 던졌을 때는 가장 높은 피안타율 0.364를 기록했고 피장타율은 무려 6할에 근접한다. 투수가 볼 카운트가 불리해질수록 그만큼 타자가 편하게 타격에 임하게 된다.

투수와 타자간 머리 싸움이 극에 달하는 볼 카운트에서는 더욱 재미있는 결과가 도출된다. 0-1, 1-1, 2-1에서는 공 하나에 따라 일시적으로 어느 투수나 류현진이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모든 타자가 이대호가 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반면, 투스트라이크, 투스라이크 원볼 등 투수가 유리한 상황에서는 타자들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이 고스란히 기록으로 전해진다. 투스트라이크 이후 승부에서는 피안타율이 2할이 채 되지 않는 0.191로 투수가 절대적인 우세를 보였다.

현재 국내 프로야구에서 투수 부문 상위권에 고루 올라있는 선수들의 기록을 살펴보면 초구 스트라이크의 중요성을 새삼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LG의 에이스 좌완 벤자민 주키치는 초구 스크라이크 비율이 67%에 달한다. 왜 그의 투구는 안정적으로 비춰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음으로 롯데 좌완 쉐인 유먼이 뒤를 이었다. 피안타율 전체 2위(0.208)인 유먼은 66%의 수치를 보였다. 한국 최고의 투수 류현진도 60% 이상의 비율로 초구부터 일격을 가했고 윤석민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롯데 최대성은 65%의 높은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을 보이면서도 드물게 성적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이는 부진의 원인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최대성이 등판하면 대부분의 타자들이 초구를 노리고 타석에 임했다. 인플레이 상황, 초구 타격 허용률에 있어서 최대성(21%)과 비슷한 수치를 보여주는 투수는 아무도 없을 정도다. 이것은 초구 스트라이크 여부보다 직구 일변도의 단순한 투구가 타자의 노림수에 걸려든 결과로 봐야 한다.

하지만 투수가 초구부터 과감하게 찌르지 못하는 고민도 없지는 않다. 과거에는 타자들이 공 하나라도 더 지켜보면서 투수가 공을 더 던지도록 유도하는 소극적인 야구를 펼쳤지만 최근에는 상황과 무관하게 치겠다는 적극적인 사고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초구부터 공략하는 작전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올 시즌 8개 팀 타자들의 전체 초구 공략 비율은 28%이다. 특히, 공격적인 야구를 추구했던 전임 로이스터 감독의 영향을 받은 롯데 타자들은 대부분 초구 공략을 즐긴다.

올 시즌 프로야구 타자들의 리그 전체 타율은 0.260이지만, 초구를 공략했을 때 평균 타율은 0.315에 달한다. 장타율도 0.469로 평균을 훨씬 상회한다. 더구나 이것은 초구가 볼이 된 이후의 타율(0.276) 보다도 훨씬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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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구가 스트라이크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고 여겨 타자들이 이를 역으로 이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기록으로 보면 투수 입장에서는 차라리 초구를 볼로 던지는 편이 더 나아 보일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투수는 초구 스트라이크를 포기할 수는 없다. 초구를 던져서 안타를 맞지 않고 스트라이크를 잡았을 경우에 생기는 이점이 너무나도 크기 때문이다.

초구가 스트라이크 되어야 다음 투구에 타자를 유인구로 현혹하며 더욱 효과적으로 상대할 수 있다. 1할7푼여가 넘는 피OPS 편차는 투수로서는 도저히 떨쳐버릴 수 없는 유혹이다. 게다가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이 높을수록 이닝 소화력에 있어서도 큰 차이를 보이기 때문에 투구수를 조절하는 차원에서도 반드시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투수는 설사 안타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마운드에 올라서는 순간 항상 공격적인 투구를 마음에 그리며 대담하게 투구를 해야 한다. 그래야만 승리를 쟁취할 수 있다. 많은 안타와 실점을 허용하거나 슬럼프에 빠진 투수들의 경기를 지켜보면 하나 같이 초반부터 도망가는 투구를 일삼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제 아무리 뛰어난 구종과 구위를 보유한 투수라도 볼카운트가 불리하면 공의 위력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이는 이미 승부에 있어 타자에게 지고 들어가는 것이다.

<데이터 출처 : ISTA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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