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일본인납북자-테러國해제 연계처리설까지 솔솔

미국이 북한을 끈질기게 압박하고 있다. 당초 지난달 28일 부시 대통령이 라이스 국무부 장관에게 “중유 5만톤을 북한에 공급하라”고 할 때만 해도 미국이 이번 6자 회담의 빠른 결과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었다.

◆'북한 하기 나름' 채찍든 미국

미국이 핵 문제 해결을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관측은 다른 건에서도 나왔다. 당초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시리아에서 북한제 핵물질 증거를 잡았다는 영국언론의 보도가 그것이다. 이 보도에 따르면, 미국 관료들은 애초 이스라엘 정보기관이 제기한 시리아와 북한의 핵커넥션 자체에 의구심을 갖고 있었을 뿐 아니라, 막상 이스라엘측이 증거물을 들이댄 상황에서도 일이 커질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연출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 관료들은 이 일이 언론을 통해 공개된 이후에도 대북 제재라든지 비난에 인색했다. 워싱턴측이 6자 회담을 앞두고 있던 당시 상황에서 '시리아 커넥션'이 불거져 대북 협상이 경색국면에 접어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는 분석이 뒤따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사진설명=6자회담에서 미국의 대북 외교 기조가 '북한이 하기 나름'으로 변경됐다.>
그러나 이런 미국의 태도는 막상 6자 회담이 본격화되면서 달라졌다. 미국은 중유 지원과 테러 지원국 해제, 적성국 교역 규제법 적용의 배제 등 여러 당근을 제시했다. 그러나 그런 당근을 제시하면서도 미국은 상호주의를 내세웠다. 미국은 이런 여러 당근의 환상을 보여주면서도, 협상이 완료되는 시점까지 이런 조치의 구체적 프로그램을 명시하지 않았다.

이를 놓고 북한 외교관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6자 회담이 마무리되던 시점에 어느 북측 김계관 외무성 부상<우측 사진>은 “구체적 시한이 지정되지 않은 테러지원국 해체 방침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결국 막판 조율 끝에 6자 회담의 선언문은 '북핵 동결은 연말까지, 테러 지원국 해제는 동결 진행에 따라'로 해석하는 것으로 결론났다. 특정한 날짜를 끝내 지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런 사정은 북한 지도부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갔을 법하다. 북한이 애초 핵개발에 집착할 당시만 해도 전세계를 상대로 한 '벼랑 끝 외교전술'이 상당한 성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그러나 IAEA 탈퇴 이후 처음으로 북한은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협상 성적표를 받아 들었기 때문이다.

◆테러 지원국 해제 핵심은 '무역'

북한의 초라한 성적은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에 북한이 아쉬움을 느껴 매달리면서, 미국이 이런 북한의 약점을 간파, 협상에 최대한 이용, 협상에 활용하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럼 북한은 왜 테러지원국 문제 협의에 매달리는가? 이는 이른바 미국의 적성국 무역제한법의 적용을 배제하는가와도 밀접하게 연관된다. 테러지원국 지정을 푸는 것과 무역제한법 대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논리적으로는 연관 관계가 미약하지만, 같은 과정(프로세스) 하에서 처리되는 문제가 된다. 즉 무역 재제를 더이상은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된 북한이 무역재제 해제 등 일련의 문제를 푸는 과정에서 '평화체제(종전선언)-테러지원국 해제-무역재제에서의 해방'을 같이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긴 기근과 특히 이번 여름 홍수로 만성 쌀부족 상황이 극에 달했다는 일부 대북소식통들의 전언과도 일치하는 대목이어서 특히 주목된다.

◆미국, 일본 납북자 문제도 쥐락펴락한다?

더욱이 이런 사정은 일부 외신에서 미국이 북한의 테러 지원국 해제를 놓고 일본인 납북자 귀환 등 가시적 성과를 별도로 요구했다는 이른바, '별도로 이어지는 양해사항들(a series of side understandings)'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 인터넷판이 4일 북미간 이면합의들이 있다는 설, 즉 북한은 연말까지 영변핵시설을 불능화하고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하면, 그 보답으로 미국은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위한 과정을 개시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 교감이 양쪽 사이에 있다는 분석을 실었다.

또, 당초 납북자 문제 해결전에는 북한의 테러지원국 명단삭제에 반대한다며 완강한 입장을 보였던 일본 정부가 '별개의 연속된 양해사항들'에서 미국과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와 일본인 납북자 해결을 연계했기 때문에 입장을 바꿨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 경우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북한이 테러지원국 해제에 목을 매느라 미국이 원하는 핵 불능화 외에도 다른 카드를 하나 더 내밀었다는 이야기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이 현재 굉장히 어려운 사정에 처해 있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결국 그간의 벼랑끝 전술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됐음을 방증한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결국 이번 6자 회담 직후 남북정상회담에서 북한이 서울측에 내민 각종 개방안도 이런 일련과정에 서 있는 것이며, 이는 북한이 어느 쪽이든 실효성 있는 지원을 해 주는 쪽으로 따를 것임을 의미한다.

북한과의 대화 주도권을 잡는 것은 중대한 지원을 해 주는 쪽이 될 수 밖에 없다는 것. 이번 노무현 대통령이 북에 제시한 합의안이 북한을 만족시켰는지에 따라, 북미간 대화가 북핵 관계의 주요라인이 될지, 남북 대화가 북핵 관계의 중심선이 될지 결정될지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두 정상간 협의안에서 북한이 막상 당장 필요한 대규모 에너지원 지원이나 쌀지원은 일언반구도 없이 경협안이 주를 이룬 것으로 볼 때, 미국의 대북 협상 주도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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